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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윤씨 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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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Apr 07. 2023

놀면 안 됩니까?

<윤씨 잡문>


마트 계산대 앞에서 지갑을 뒤적이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건드렸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아는 분이었습니다. 상투적인 인사말을 나누는데 요즘도 학생들을 가르치냐고 물으셨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놀고 있다고 하니 그분은 인상을 찌푸리며 훈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선 사람들 보기 민망해 서둘러 계산을 하고 주차장으로 나온 나는 장바구니를 든 채 그분의 훈계를 들었습니다. '이제 겨우 60인데 뭐 벌써부터 일을 하지 않고 노는 거냐. 배가 부른 거 아니냐. 일 할 수 있는 데 논다는 것은 인생에 대한 교만이다. 돈이 있어도 일을 해야 몸과 마음이 늙지 않는다.' 반론의 여지를 떠나 자신의 의견이나 태도에 확신을 가진 사람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뭐 이렇게까지 생각을 해주다니 겁나게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돌아서 오는 길에 후폭풍이 밀려오더군요.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그분의 말들을 내 다른 자아가 그대로 흡수해 나를 질타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 누군가 내게 한 '놀아서 참 좋겠구나.'하는 말도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마음이 다시 요동을 쳤습니다


노니까 좋니?(응, 좋아.) 다시 일을 해야 하나?(아니 하지 마) 무슨 일을 하지?(하긴 뭘 해!) 학원은 나이 때문에 안 되고(하지 말라고) 서빙?(???) 주방 설거지?(!!!!!) 노인 돌봄?(자격증 없잖아) 아이 봐주기?(아서라) 편의점 알바?(마서라) 과외를 모집해 볼까?(흠...) '빠앙~'하는 뒷차의 경적에 정신이 듭니다.


 by 푸른 소나무


재밌는 것은 이 글을 쓰기 전에 편성준 작가님의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읽고 있었습니다.(브런치엔 제 스스로 선생님이라 여기는 분들이 많은데 편작가님은 그중 한 분이십니다. 물론 그분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십니다.) 이런 대목이 있더군요.


 '회사를 그만두고 비 오는 날 혼자서 책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 마침 비가 온다. 책을 읽는다.'


 구절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려운 문장도 아니고 통찰이 담긴 글도 아닌데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날이 흐려지고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나 역시 학원을 그만두고 책 읽고 글 쓰고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는데 30년 가까이 밥벌이하던 학원강사를 그만둔 요즘 책을 읽다가 '마침' 비가 내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집니다. 불미스럽게 일을 그만두긴 했지만 바라던 일이 내게도 이루어지는 날이 있구나 싶어 약간 멍해졌습니다.


국어 강사로 살던 시간은 애증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학생들의 성장을 보며 가르친다는 보람을 느꼈고 선생님 감사하다며  빼곡하게 적힌 편지를 받았을 땐 내가 일을 잘한다는 자부심과 기쁨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딸이 대학에 무사히 갔다며 유명 레스토랑 테이블을 그대로 옮겨와 대접한 어머님도 계셨습니다. 그날의 스테이크와 파스타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커서 뭐가 될까 싶었던 아이가 의젓하고 멋진 청년이 되어 결혼한다며 찾아왔을 땐 내 직업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일개 학원 선생인 주제에 금쪽같은 아이를 야단쳤다며 사과하라는 금쪽같지 않은 학부모가 다녀간 날은 술을 마셨습니다. 자신보다 더 인기가 많다고 나를 질투하며 찌질한 꼬투리를 잡아 내쫓으려던 원장. S대 나오면 다 최악이 된다는 일반화의 오류를 확인해 준 그는 진짜 최악이었습니다. 수능이 끝나는 날 사표를 집어던지고 나와 추운 밤거리를 목적도 없이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교육의 ''도 없이 자본주의 사상만 가지고 있던 원장과 그 부인, 설문 조사 잘 써 줄 테니 햄버거를 쏘라던 부자 동네 학생들, 공연히 와서 기웃대며 트집 잡던 교육청 공무원, 숙제가 많아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잃었으니 책임지라던 엄마, 자신이 S대 출신이라며 학원을 뒤집어 놓고 가던 아버지. (아, 그놈의 S대 출신들. 안 그런 분도 계시리라 믿습니다. )


노동의 현장은 신성하지 않았고 경박과 갑질, 무례가 자주 연출되었습니다. 사교육이지만 엄연한 교육자로 서려고 했던 나는 교육이 추구하는 배움과 예의가 실종되고 시험을 위한 매너리즘만 남은 교실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지켜야 되는 가치들은 혼자서만 지킨다고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자기 계발서엔 이렇게 말하고 있더군요. 자신이 잘하는 일에 집중해라. 내겐 공허한 말이었습니다.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나의 경력이 되었지만 그 일을 잘 해 낸 나는 내내 그 일을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사하지 못한다고 질타를 기도 습니다만 어쩌겠습니까. 가 잘하는 일을 좋아할 수 없어서 괴로워했다는 것이 나의 비극이었다는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일선에서 물러서기는 아무런 가치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쓸모없는 시간이 삶을 쓸모 있게 만들어주는 아이러니는 늘 유예되는 진리다."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너무 일찍 일을 그만두고 논다며 훈계했던 그분은 그동안 제가 느낀 고단함과 지난함에 대해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분이 보기에 나는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인데 그분과 길바닥에서 갑론을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러나 그분 보기에 쓸모없는 시간이 내 삶을 쓸모 있게 한다는 것, 피폐했던 나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  아침에 눈을 뜨면 활기찬 하루를 기대하기 보다 이 삶을 어떻게 끝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이제 조금 명랑해졌는데 그분은 이런 나를 모르고 한 말일테니 웃으며 용서를 해야겠지요. (에잇, @%#&##~~)


"나는 인간의 선의 없이도 희망 없이도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흘려 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이것이 내가 바라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놉니다. 책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 난생 처음 태백산에 오르고 숲을 걷고 강아지와 산책하고 매일 수영을 합니다. 최선을 다해 니다. 한가한 시간을 바라고 누리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했던 때를 기억하며 이제 주어진 사치를 최대한 누리려고 열심히 놉니다. 자비없는 삶이 언제든 이 시간을 거두어들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 소중하게 눈물나게 느끼면서 니다. 


그러니 남들이 하는 말이야 본인들 입으로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지만 스스로 꾸짖지는 말아야겠습니다. 노는 것과 바꾼 나의 기회비용이 어떤 이에겐 말 안되는 한심함 혹은 어리석음일지라도 뭐 어쩌겠습니까. 나를 향한 걱정이 포장된 비난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깝게 여기지도 않으렵니다. 그 사람 눈에 비친 나의 어리석음은 내 것이 아니고 그의 것이니 남의 것을  어쩌겠습니까. 그 밖의 여남은 일들이야 내가 어쩌겠습니까.


내일은 강가에 나가 핫도그에 커피를 곁들이며 이 눈물나게 감사한 시간을 음미해야겠습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비가 내리는 시절은 아주 짧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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