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란

색연필 그림일기

by Eli

욕실 타일 벽에 거미가 붙어 있다. 제법 큰 거미라 놀랐지만 해가 되지 않는다니 그냥 두었다. 샤워를 끝내고 바닥에 뭉친 머리카락을 집어 버리려는데 뭐지? 알 수 없는 검은 점 하나.

샤워기를 끄고 들여다보니 거미다.

.......

나는 저를 염려하여 쫓아내거나 죽이지 않고 모른 척 내버려 두었는데 어찌 죽어버린 것일까.

왜 주검들은 그 모습이 가엾은 것일까.

연약하고 무력하며 떠난 집처럼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모습.

백석의 시 <수라>가 생각났다.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중략 )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생각해 본다.

욕실은 좁은 공간이라 샤워기의 물이 튀었을 것이다. 샤워를 하는 동안 물은 계속 튀었을 것이고 거미는 그 물에 쓸려 바닥으로 떨어져 떨어지는 물까지 맞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밖으로 내보냈어야 했나?

자비를 베푼답시고 못 본 체해 준 것이 나의 배려였는데 거미가 당할 큰 재앙은 생각지 못했다. 거미에게 품은 나의 배려는 그저 알량하고 속 깊지 못한 마음이었을 뿐. 측은지심을 가졌다고 배려를 다 한 것은 아니다.

<수라>의 화자처럼 말이다.

이제는 한 점이 되어버린 저 주검을 어찌 다루어야 하나......




* 배려 : 마음을 쓰며 여러 가지로 살펴 도움을 주는 것.


마음을 쓰기 위해선 대상을 살펴야 한다. 대상을 살피다 보면 그 대상이 나에게 들어오고 그 대상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대상의 여러가지를 살피게 되고 필요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할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