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스케치 그리고 쓰다
날이 좋아 빨래를 내다 널고 화분들을 볕 잘 드는 창가에 내놓았다. 굳이 창가에 둔 것은 변덕 심한 날씨에 혹여 추워지기라도 하면 창을 열고 들여놓을 수 있고 안에서는 꽃을 볼 수 있어서다.
남편은 이맘때 봄바람이 든다. 하늘거리는 원피스가 입고 싶은 것은 나의 봄바람이고 남편은 꽃을 실어 나르는 것으로 그의 봄바람을 해소한다. 산책을 나가면 숲에 홀로 피어있는 찔레꽃이나 복사꽃, 라일락, 철쭉 등을 꺾어다 여기저기 꽂아두는데 집안은 온통 이 꽃 저 꽃으로 알록달록 해진다. 어느 날은 그 정도가 심해서 지저분하고 정신이 없다. 그러면 나는 슬며시 향 진한 라일락을 마당 테이블에 내다 놓거나 꽃을 정리해 큰 화병에 한꺼번에 꽂아놓는다. 그러다 꽃들이 마음을 부추기면 그는 결국 휭하니 나가 작은 화분의 꽃들을 사 온다. 다 어디에 두려고? 대답이 없다. 사 온 걸 어쩌겠는가. 비어있는 화분에 옮겨 심고 물을 준 후 들여다본다. 놔둘 데 없다고 타박하면서도 꽃이 예쁘니 또 어쩌겠는가.
따뜻한 기운 더 많이 받으라고 내놓았는데 꽃 덕분에 창가는 예뻐지고 사람 또한 즐거워졌다. 빨래를 널다가도 들여다보고 차 한 잔 들고 나가 또 들여다본다. 언제 뒤따라 나왔는지 남편은 잘 사 왔지? 당신 좋아할 줄 알았어, 한다. 아, 이제 알겠다. 남편이 꽃을 실어 나르는 이유를. 나는 꽃을 들여다보고 그는 그런 나를 뒤에서 보고 있었구나!
반나절이 또 그렇게 흘러갔다. 사는 게 뭐라고.... 가진 게 많지 않아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이런 것들이다. 숲에 가서 하늘을 가린 전나무를 본다든지, 노을 지는 하늘을 어두워질 때까지 바라본다든지, 일정한 호흡으로 긴 시간 수영을 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도 있다. 아무도 모르게 상처받은 날, 자전거를 타며 시원하게 바람을 맞거나 눈물 나게 아름다운 리스트의 피아노 전곡을 듣거나. 방법은 많다. 꽃화분이 열지어 있는 창밖으로 흐르는 피아노곡을 까치나 참새들과 함께 들으면서 나는 가장 풍요로운 사람이 된다.
화분이 놓인 창가가 예뻐서 펜을 꺼냈다. 요즘은 만년필 특유의 사각거림에 끌려 만년필 드로잉을 자주 한다. 창에 비친 앞산의 실루엣과 하늘이 선명하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스멀스멀 올라오는 욕심과 불안이 특유의 탄성력으로 다시 떠오르다가 사라졌다. 찰박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수영할 때 일어나는 몰입의 자유를 느꼈다. 남편에게 보이니 벽돌이 예쁘다 한다. 벽돌이? 그럴 땐 잘 그렸다~ 하는 겁니다. 그 소리 들으려고 남에게 보이는 거니깐~. ㅎㅎ 그래? 자~알 그렸소. ㅋ 고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