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스케치 그리고 쓰다
갑자기 진행된 여행이었다. 밥을 얻어먹으러 갔다가 여행이야기가 나왔고 제주도에서 한 달살이를 하고 싶다는 내 말에 친구들은 그럼 가지, 뭐, 했다. 남해든 구례 언저리든 제주도든 한달살이를 하고 싶다는 것이 평소 내 바람이었고 친구들이 맞장구를 쳐준 것이다. 어... 진짜 가는 거야? 정신 차려 보니 우리는 항공권 예매를 끝내고 숙소를 검색하고 있었다. 마시려던 커피가 채 식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편들은? 아,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나라를 구했나 보다. 남편들은 하나같이 선선히 잘 다녀오라고 했다.) 다음 날 숙소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는 문자가 날아왔고 날이 저물기 전에 숙소가 정해졌다. 아, 이렇게 쉬운 것이었나. 그동안 다음에 가지, 뭐, 하며 미뤄온 것이 허무할 정도였다. 5박 6일의 제주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무도 시킨 사람은 없었지만 우리는 각자 자기 역할을 알아서 했다. 나는 일정을 짜고 M 씨는 각종 예약을 진행하고 H 씨는 여행 중 운전을, 여행 경험이 많은 S 씨는 돌아가는 모양을 두루 보며 적절한 조율을 해 주었다.
나는 제주도 지도를 그려놓고 지형부터 익혔다. 어디가 어딘지 알아야 동선을 짤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일 먼저 제주도 내 수영장을 검색했다. 우린 모두 수친자들이므로 매일 수영을 해야 한다. 의외로 수영장은 많았고 이용료도 매우 저렴했다. 보편적으로 하는 제주도 관광은 지양했다. 무슨 폭포나 주상절리를 보러 가는 것도 좋지만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해안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와 스쿠터 라이딩, 바다에서의 스노클링 같은 것 말이다. 여기에 숲 산책과 로컬 맛집을 포함한 GPT의 최종안이 나왔고 출발일은 성큼 다가왔다.
첫날은 여행 중 가장 힘든 날이었다. 어쩌다 보니 아침 6시 비행기여서 우리는 새벽 3시 반에 출발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4시 반. 여유 있다고 생각했다. 뒤에 일어날 일은 알지 못하고.
M 씨의 어머니께서 여행에 합류하면서 김치를 가져가시겠다고 했다. 화물을 피하려고 작은 여행 가방과 소지품 가방 두 개씩만 지참하기로 했는데 화물이 생긴 것이다. 어? 예정에 없던 건데... 하지만 우리를 위해 준비한 음식이니 화물로 부치기로 했다. 이른 시간이라 공항은 썰렁했고 시간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 우리는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수화물 창구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당황했다. 이러다 늦는 거 아닌가. 살짝 불안해진 우리는 M 씨 혼자서 수화물을 부치고 나머지는 탑승 창구에 먼저 가 있기로 했다. 검색대를 통과하며 시계를 보니 5시 20분. 어? 시간이 빠듯하겠는 걸. 탑승 창구에 도착하니 5시 30분. 탑승 시간은 5시 40분, 출발은 6시인데 M 씨는 여전히 검색대란다. 초조하게 M 씨를 기다리며 탑승을 미루고 있는데 몇몇 승객들이 늦었다며 달려와 터미널로 뛰어 들어갔다. 시간은 45분. 아, 비행기 못 타겠다. 쎄한 기분이 뒷골을 타고 흘렀다.
탑승 시간이 넘었는데도 타지 않는 우리들을 직원들이 불러댔다. 우리는 일행 중 한 명이 이러저러해서 지금 검색대를 통과하고 있으니 좀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고 직원 중 한 명이 직접 가서 데려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시계를 보니 5시 50분. 탑승해야 할 시간은 이미 지났고 이륙 시간은 10 분 후였다. 나는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며 M 씨와 둘이 남아 다음 비행기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초조하게 기다리던 S 씨가 M 씨를 부르며 저만큼 뛰어나갔다. 멀리서 M 씨가 달려오고 있었고 S 씨는 달려오는 M 씨의 가방을 받아 헉헉대며 탑승하니 시간은 5시 59분. 출발 1분 전이었다.
그러나 6시에 출발할 비행기는 6시 24분에 이륙했다. 짐만 싣고 비행기는 타지 않은 일부 승객들이 짐을 빼겠다고 한 이유 때문이었다. 허, 참 그럴 수도 있구나, 생각하는데 몇몇 승객들이 거칠고 무례하게 승무원에게 항의했다. 항의하는 데에도 지켜야 할 것이 있거늘 도대체 왜들 목소리가 그리 큰 것인지....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아버렸다. 제주에 도착하니 7시 24분. 하늘은 조금 흐렸지만 날씨는 괜찮았다.
"하이, 제주! 오랜만이야. "
(2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