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스케치 그리고 쓰다
두 번째 숙소로 향하면서 수월봉 일대와 돌문화공원에 들르기로 했다. 화산섬 제주에 왔으면 적어도 제주의 정체는 보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수월봉 일대는 지질트레일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자전거 라이딩의 한 루트이기도 하다. 수십만 년 전 화산 활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하나이다. 해안선을 따라 화산재 지층이 켜켜이 쌓여있는 퇴적구조는 바로 제주의 형성 역사이고 제주의 얼굴이다.
절벽 아래 조성된 길을 따라 지질트레일이 펼쳐져 있는데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라 그런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름 모를 노란 꽃들이 무리 지어 피었고 잎들은 모두 도톰한 것이 제주 바람의 영향인 것 같았다. 거뭇거뭇 바다에 잠긴 현무암에 옥빛 파도가 일렁였다. 비통한 지난 역사는 이곳에서도 보였다. 과거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벙커로 사용한 흔적이 보였는데 지질 트레일 맨 아래층에 동굴로 남아 있었다. 족히 예닐곱 개는 되었고 어떤 벙커는 매우 커서 1개 소대가 상주할 수 있을 만큼 크고 넓었다. 벙커들이 처음엔 몹시 언짢고 슬펐지만 그 역시 피할 수 없는 지질트레일의 역사이고 일부라고 생각했다.
절벽 위로 올라가면 지질트레일 일대의 바다를 볼 수 있는데 관광객을 실은 여객선 한 척이 지질트레일을 보려고 절벽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저만큼 바다 한가운데서 어떤 사람이(사람으로 보였다) 수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접영을. 어머, 저 사람 위험하게 저 바다에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뭐가? 저기 어떤 사람이 접영을 하고 있어. 뭐? 어머, 저게 뭐야. 사람이 아니고 돌고래잖아. 뭐? 우와, 돌고래네. 심 봤다!! 우리가 운이 좋다니까. 우와~~ 돌고래 한 무리가 하얀 파랑을 일으키며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어딘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처럼 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돌고래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들떠 버렸다. 복권을 사세. ㅋㅋㅋ 그러세. 뭐? 사람이 접영을 해? ㅋㅋㅋㅋㅋ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ㅋㅋㅋ 뭐... 그렇게 보였네. ㅎㅎㅎㅎㅎ
돌문화공원은 돌을 빼놓을 수 없는 제주의 생태공원이자 박물관이다. 2006년에 문을 열었고 2020년에야 지금의 공원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돌문화공원은 교육적으로도 훌륭한 장소였다. 각종 돌 조형물과 거석을 배치한 공원은 오름 앞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 자체가 하나의 자연이었다. 인위적인 것들을 최대한 배제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하늘 연못이라는 인공 연못 주변으로 인스타용 인생샷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지만 우리는 웃으며 지나갔다. 넓은 잔디 마당과 계절마다 달리하는 꽃들을 조성해 놓아서 산책하기에도 그만이다. 눈 가는 곳마다 수국이 한창이었다.
제주의 형성을 보여주는 돌문화공원 내 박물관의 구성도 좋았다.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여러 형태의 돌들과 지형을 소개, 전시했고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제주의 곶자왈 모습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내국인과 외국 관광객 모두에게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날 우리는 무료 관람의 행운을 누렸는데 5주가 있는 달의 수요일엔 전 관람객에게 무료로 개방한다고 했다. 마침 방문한 날이 5주 차 수요일이었다. 이런 행운이 있나. 돌고래를 보고 행운을 기원하며 산 복권은 모두 꽝이었지만 돌문화공원에서는 행운을 누렸다. 인생에서 한 방은 역시 없다. 소소한 입장료 무료라는 행운이면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옮겨간 숙소에서 흑돼지 바비큐를 해서 먹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정말 안 먹는다. 보통 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으로 5명이 먹었는데도 남았다. 여행 6일 동안 우리가 소비한 햇반도 4개뿐, 6개를 샀지만 2개가 남아 고스란히 가져와야 했다. 여행 중 우리가 먹은 것이라곤 아침으로 먹은 누룽지와 가져온 밑반찬, 물회 한 그릇, 김치찌개 조금, 동문 시장에서 산 음식 몇 가지뿐이다. 점심은 대부분 외식이었고 커피는 가져간 원두를 갈아 마셨으며 나갈 땐 텀블러에 담아갔으니 맛집 기행을 중요하게 여기는 누군가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런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 우리의 여행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또한 이 여행의 특징이었다.
표선면 체육센터에서 수영을 한 후 다음 날 스노클링을 위해 간단히 먹고 쉬었다.
(마지막 5부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