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스케치 그리고 쓰다
어쩌면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 온 여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판포포구에서의 스노클링이었다. M 씨의 어머니는 70 중반이고 우리도 60 대니 무리한 모험은 하지 않기로 했다.
제주에서 스노클링을 할 수 있는 장소는 많다. 애월의 판포포구, 월령 포구, 중문 쪽의 쇠소깍, 소천지, 동쪽의 김녕과 함덕 해수욕장, 코난 비치 등 많다. 판포포구는 바닥의 하얀 모래가 훤히 보일 정도로 맑고 깊이도 적당했으며 물살이 세지 않아 비교적 안전했다. 다양한 형태로 즐길 수 있는 스노클링 포인트는 많으니 적절한 장소를 골라 물때를 확인하고 가야 한다. 제주 바다 물때표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보통 만조 1시간 전이 좋다고 한다. 판포포구 주변에 스노클 장비를 대여해 주고 물놀이 후 샤워할 수 있는 곳도 있어서 우리는 미리 예약을 했다.
예약한 장비 대여업체에 가서 다이빙 수트와 오리발, 스노클을 착용하고 바다로 향했다. 아직 5월의 바다라 물이 차서 그런지 북적이지는 않았지만 수영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며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보는 이가 다 즐거웠다. 막상 물에 들어가려니 겁이 났지만 바닥의 흰모래가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아서 용기가 났다.
"들어간다~~. 풍덩~"
"윽~~ 짜!"
바닷물은 짜도 너무 짰다. 눈이 따가웠다. 게다가 수트의 부력이 너무 좋아서 물 위에 둥둥 떴다. 잠수를 시도했으나 가라앉지 않았고 수영도 되지 않았다. S 씨는 결국 수트를 벗어버렸다. 오히려 편하고 자유롭다고 했다. 수영하는 모습을 보니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다. 나도 H씨도 착용하던 오리발을 벗으니 수트의 부력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수영에 익숙한 사람은 굳이 수트가 필요 없었다.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초급자가 아니라면 일반 수영복이나 래시가드를 입고 오리발을 착용하길 권한다. 장비 대여업체에서 빌린 스노클도 시야가 좋지 않았고 물이 들어왔다. 본인의 장비를 챙겨 오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치어들이 우르르 모여 다니다가 해초 있는 곳으로 들어가길래 따라가 보았더니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어슬렁 거려서 깜짝 놀랐다. 물고기들은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와글와글 몰려있었다. 남의 터전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용히 놀고 나갈게. 잘 숨어 있으렴.
머리를 들어보니 친구들이 있는 곳과 제법 멀어졌다. 언제 이렇게 왔지? 바다나 강은 물살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이 약해 보여도 무시하면 안 된다.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헤엄쳐 가면서도 직선거리로 가기 어려웠다. 이런, 수영과 다이빙, 물고기들하고 놀다 보니 도끼 자루가 썩고 있구나!
장비 대여 업체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대여업체 직원이 우리를 향해 엄지 척을 보인다.
"너무 멋지세요. 보통 어머니 연세의 손님들은 뒤에서 구경만 하시고 물에 안 들어가시거든요. 이렇게 장비를 착용하고 물에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 짱이예요.!"
한다. 뭐 이까이 껄 가지고.
스노클링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우리는 또 다른 여행을 계획했다. 개인 장비를 챙겨서 제대로 다시 오기로. 또 오자고? 언제? 8월에 오자. 오우케이. 이 사람들 거절이 없다. 벙글거리며 사는 게 별 거냐, 한다. 세상의 근심 따위 상관없다는 우리들을 보고 강여사님은 빙긋이 웃으셨다. 그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그, 저 철없는 것들, 아니면 노는데 진심인 60대 동생들이 귀여워서였을까. 둘 다가 아닐는지.....
마지막 밤. 숙소 근처 동네는 한적했다. 포구 바로 앞에 알전구로 장식한 생맥주 집에서 맥주 한 잔을 하고 쉬었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다.
"뉴스 안 보고 안 들으니 살 거 같네."
끄덕크덕.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에필로그>
"여행은 몰랐던 자신의 뒷모습을 마주하며 다시 돌아올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것이며 자기만의 우주를 넓혀가는 일이다(여행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 손미나)"
되돌아갈 일상의 소중함 뿐만 아니라 매일 만나는 사람들의 품성을 다시 발견한 이번 여행은 우리 모두의 우주를 넓힐 수 있었다. 자신의 취향이나 기호를 고집하지 않고 지켜보면서 주변을 살펴주는 친구들의 뒷모습은 고맙고 귀했다. 여행 중 대부분의 운전을 맡아 한 H 씨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그을렸지만 미소가 빛났고 언니들의 타박을 오해 없이 웃으며 받아 준 M 씨, 그 너그러움에 감사한다. 연장자인 강여사님을 누구보다 먼저 살피고 배려한 S 씨, 늘 앞서 생각하는 깊이에 박수를 보낸다. 조용히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살펴주신 강여사님. 연장자라고 권위를 부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뒤로 빠지겠다며 불편하게 하지도 않았다. 모두 여행에서 새롭게 만난 스승들이었고 지향해야 할 내 뒷모습이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두봉 주교님의 말씀을 나는 자주 기억한다.
"나는 기쁘게 살고 있어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뭉클해지며 눈물이 났다. 왜 그랬을까. 내가 기쁘게 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견디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했고 견디는 것이 서글픈 삶은 쓸쓸했다. 사실 존재한다는 것은 순간이 아닌가. 잘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작은 순간들을 기쁘고 다정하게 쓰는 것이다. 그러면 일상은 빛이 나고 바로 내가 사는 순간이 일상이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순간을 살아가고 싶다. 신체는 늙어가고 있지만 "신체의 노화 역시 태도에 달려 있다.( 인생의 태도, 웨인 다이어)"는 것을 친구들과 더불어 확인했다. 전에 살지 못하던 순간을 나는 처음인 듯 바라본다.
함께 한 친구들과 강여사님, 나의 부재를 흔쾌히 허락한 가족들, 저녁마다 현관에서 엄마를 기다려 준 투투, 읽어주신 구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