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PE DIEM!-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의미

필사하며 나누며

by Eli

* 이 매거진은 "따스한 필사" 모임에서 제공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fragancia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암탉은 좀처럼 가만히 있지 않는다. 성실해서인지 아니면 그저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찾고 긁고 움직인다. 그렇지만 암탉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몇 시간이고 느긋하게 쉴 줄도 안다. 암탉은 그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매 순간을 온전히 만끽한다. 그리고 온몸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라고.
- 새들이 전하는 짧은 철학, ( 필리프 J, 뒤부아 엘리즈 루소 ) -


질문 : '카르페 디엠'이란 말은 도전인가요? 위로인가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라고"


"카르페 디엠!"

이 말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아마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가 나오고부터일 것이다. 나는 이영화를 1990년-91년 사이에(기억이 희미하다) 성대 앞 혜화동 로터리 부근에 있던 작은 영화관에서 당시 연애 중이던 남편과 함께 보았다. 상류층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엔 키팅 선생이 있었고 그는 질풍노도에 있던 아이들의 절망과 갈등, 불안을 꿰뚫고 성공보다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가르친다. 그 메시지가 "카르페 디엠!"이다. 스승을 캡틴이라 부르며 카르페 디엠의 의미를 받아들인 아이들도 있었고 자신들을 통제하는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단순한 저항을 넘어선 카르페 디엠을 받아들인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다른 삶을 살아갔을까? 영화를 본 우리는 소주를 마시며 건배 대신 "카르페 디엠"을 외쳤다. 우리가 외친 그 구호는 어떤 의미였을까. '지금 이 순간을 위하여'였을까, 아니면 그저 영화의 여운이었을까.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카르페 디엠 콰암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 내일을 가능한 한 믿지 말고 오늘을 붙잡아라.) 이 말은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남긴 말이다. 'Carpe'는 라틴어 'carpere'에서 왔는데 carpere는 ' 따다, 거두다, 붙잡다, 잘라내다'라는 뜻이다. 직역해서 풀어보면 "지금 이 순간을 거두라", 또는 "붙잡아라", "시간이라는 열매를 따라"는 목소리로 내게 들린다. 흔히 알고 있는 '오늘만 즐기자'와는 다른 의미다. 영화를 본 우리가 외친 구호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하여!"였으니 "카르페 디엠"의 의미는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쪽에 가까운 것 같다.


'순간을 살아가라'는 것은 지금을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인데 '오늘만 즐기자'라는 것은 충동적인 선택을 부추기는 소비적이고 쾌락지향적인 구호다. 소비지향적인 선택은 삶을 소모시킨다. "오늘을 붙잡고 순간의 열매를 따라"는 의미와는 사뭇 다르게 구별된다. "그때 그랬더라면", " 시간을 되돌린다면" 하는 소망은 공허하고 오지 않은 미래는 불확실하다. 인간은 미래를 통제할 수도 과거를 지울 수도 없고 더더욱 시간을 붙잡을 수도 없다. 다만 주어진 시간을 살뿐이다. 주어진 그 시간이 얼마동안인지도 모른다. 하루인지 한 달인지, 1 년인지 80 년인지.


그러나 오늘 아침에 눈을 뜬 나는 적어도 오늘은 살 것이다. 아니 오늘 중 오전 동안은, 아니 오전의 어느 한순간은 살아갈 것이다. 하나의 점이 선이 되고 선은 사각형으로, 원으로 그 형태를 바꾼다. 모든 선과 형태는 하나의 점에서 시작한다. 주어진 내 인생이 사각형이나 삼각형, 혹은 원이라면 주어진 하루는 선이고 그 하루에 수없이 많은 순간은 점이다. 나는 그 점인 순간에 존재할 뿐이다. 이렇게 불확실하고 유한한 존재가 나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황진이의 노래처럼 시간을 베어내어 이불속에 고이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 "어바웃 타임"의 팀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것은 시적 소망이며 영화적 상상일 뿐 우리에겐 시간을 제어할 힘이 없다. 지나간 과거는 후회와 미련 가득한 기억이고 미래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는 것, 예측이 어렵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오직 내가 마주 보고 의식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어느 한순간이다.순간조차도 깜박할 사이에 저 멀리 흘러가 버린다.


호라티우스와 키팅 선생은 젊은이들에게 "오늘을 마구 즐겨라"라고 외친 것이 아니라 시간의 무심함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품위 있는 태도를 말한 것이 아닐까. 지난 과거에 묶이지 말고 불확실한 내일을 두려워 말고 헛되이 기대하지도 말고 지금을 의식하며 살아라. 지금 이 순간은 찰나일 수도 있고 영원의 시간일 수도 있으니 알맹이를 보고 그 열매를 붙잡아라. "그때 했더라면 혹은 다음이 있겠지"가 아닌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허무하거나 공허함이 아닌 존재 가득한 현재를 볼 줄 알고 순간, 지금 살아있음의 의미를 사는 것이 삶의 올바른 지혜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을까. 또 한 번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명대사가 기억난다.

"오늘을 살아가세요."


그렇다면 오늘을 산다는 것은 뭘까. 그것은 최대한 행복해지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다음"에 대한 기대를 갖는 것은 카르페 디엠이 아니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관점이 오히려 오늘을 살게 한다. 생의 마지막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이 이것이다. 오늘이 주어진 것을 행운으로 여기는 것, 이것은 새로운 도전이면서 동시에 위로다. 하루라는 유한함을 극복하려 하기에 도전이고 그 하루를 충만히 살 수 있기에 위로다. 그러므로 오늘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대한 행복해져야 한다. 나는 이것이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나의 의무이자 권리, 소망이자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행복해지겠다는 소망과 지향은 주변을 빛으로 밝힌다. 내가 순간을 살며 행복하면 주변도 그렇게 변화된다. 나는 가족의 행복이나 내 이웃을 위해 내가 먼저 행복해지길 주저하지 않는다. 내 행복의 추구는 나의 안위만 위하는 이기적인 선택과는 다르다.


오늘 주어진 시간에 행복해지는 것은 쉽지 않다. 행복은 늘 다른 것에 치여 유예되는 1순위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행복해지는 것도 쉽지 않은데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려 한다. 선택지가 많으면 오히려 선택은 어렵다. 무엇이 소중한지에 대한 우선순위를 잘못 정하기도 한다. 끝내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과 하나가 되려고 한다. 하나가 되지 말고 각자 행복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자식의 행, 불행이 곧 내 것이라며 자식을 통해 내 행복을 미루면 자식의 행복이 보장되는가. 내 행복을 쥐고 있는 그 자식은 또 어떤 짐을 지게 되는가. 내 부모님이 그랬듯이 낳고 키우는 동안 맛본 희로애락으로 충분한데 우리는 그들이 영원한 기쁨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자식이지만 부모님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또 부모로서 나의 행복은 자식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는 것이고 내 부모와 자식들은 나의 행복을 바란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오늘 행복해야 하고 그런 선택을 살아야 한다. 이것은 신의 섭리이기도 하다. 하늘은 우리가 행복해지라고 창조하셨다. 하늘의 모습으로 빚어진 우리는 고귀한 존재이기에 그 품위를 잃지 않고 최대한 행복해지는 것이 신의 뜻이다. 생각과 취향이 다르다고 불화하며 그 아까운 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너무 힘들고 고단하다. 그런 시간을 산다는 것은 안타깝고 무의미하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오늘 할 일을 한다는 것이다. 오늘을 이루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나만의 의미로 삶을 채우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면 눈곱도 떼기 전에 우리 집 개와 아침 산책을 나간다.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사랑의 의무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와 우리 집 개는 아침을 먹고 나는 우유를 탄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일정을 확인하고 앞산을 바라본다. 집 앞에 우뚝한 산을 바라보는 것은 나에겐 기도이다. 간단한 식사를 하고 일기를 쓰고 필사를 한 후 뒷밭을 일구고 친구들과 즐겁게 수영을 한다. 수영 후 돌아와선 집안을 돌보고 잠시 쉬었다가 줌으로 하는 국어 수업을 마치면 하루가 저문다. 자기 전 볼일을 보고 들어온 개가 만족스럽게 내 발밑에 엎드려 잠이 들면 나는 평화롭다. 읽던 책을 마저 읽고 글을 쓰거나 그리던 그림을 이어 그린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의 도시락을 싸놓고 집안을 둘러보고 잠자리에 든다. 때로는 늦도록 영화를 보거나 바느질을 하기도 한다. 모든 일들은 의미 가득한 일이다. 평소와 다른 일들이 간간이 끼어들긴 하지만 대체로 이 루틴대로 산다. 나는 쉬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놀고 놀면서 집안을 돌보고 나 자신과 가족을 돌본다. 때로는 짧고 때로는 긴 하루를 산다. 순간을 살기도 하고 오늘만 살기도 한다. 순간에 살아있기도 하고 순간을 놓치기도 하면서 하루를 지나간다. 지난 과거는 모르겠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더더욱 모른다. 카르페 디엠! 순간에 머물라! 그래서 내가 살 수 있는 때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매 순간을 온전히 만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