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꽃을 기다리는 이유.

어떤 꽃은 기억 속에서 먼저 핀다.

by fragancia


* 이 매거진은 Eli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우리가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나라로부터 나그네가 보내 주는 꽃다발처럼, 아주 오래전에 내가 지나온 봄날 꽃향기를 그대 젊음에서 맡게 해 주게나. 앵초, 민들레, 금잔화와 함께 오게나. 발자크의 식물군에 나오는, 순수한 사랑의 꽃다발을 만든 꿩의비름과 함께 와 주게나. 부활절 아침의 꽃 데이지와 함께 오게나. 그리고 부활절의 우박 섞인 마지막 눈송이가 아직 녹지 않았을 때, 그대의 고모할머니 댁 오솔길에 향기를 풍기기 시작한 정원의 불두화와 함께 와 주게나. 솔로몬 왕에게 어울리는 백합의 영광스러운 비단옷을 입고, 제비꽃의 다채로운 빛깔과 함께 와 주게나. 특히 마지막 서리로 아직은 싸늘하지만, 오늘 아침부터 문에서 기다리는 두 마리 나비를 위해서 예루살렘의 첫 장미꽃을 피우려는 산들바람과 함께 와 주게나.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마르셀 프루스트)


Q. 이 계절 기다려지는 꽃이 있나요?




찻사발 안에서 대나무 차선이 빠르게 흔들릴 때, 미세한 거품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처음에는 듬성듬성 흩어져 있던 것들이 어느 순간 고르게 퍼지며 얇은 층을 이루었다. 연한 녹색 위에 얹힌 그 거품은 부드러워 보였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작고 고운 입자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차선이 사발의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잦아들 즈음, 표면은 하나의 결로 정리되었다.


“대추꽃을 본 적이 있나요? 당나라 때 잔 위에 뜬 차의 거품을, 잘고 가벼운 대추꽃이 못 위를 떠다니는 모습에 비유했다고 하죠.”


강사님의 말씀에 나는 찻사발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대추꽃.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눈앞의 색과 질감은 뒤로 물러나고 전혀 다른 계절이 스며들었다. 말차의 향 대신, 흙냄새와 햇볕 냄새가 먼저 떠올랐다.




나는 대추꽃을 본 적이 없다. 어릴 적, 대추를 말라비틀어진 갈색 열매로만 알고 있었다. 제사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윤기 없이 쭈글쭈글한 그것이 대추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손에 쥐어도 가볍고, 먹으면 단맛보다 먼저 마른 질감이 느껴지던 것. 그래서 대추는 나에게 계절이 끝난 뒤에야 남는, 조금은 쓸쓸한 열매였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본 대추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할아버지 댁 뒤뜰에 서 있던 커다란 대추나무에는, 푸른빛을 띠면서도 군데군데 갈색 점이 박힌 단단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컸고, 매끈했다. 손으로 만지면 단단했고, 햇빛을 받은 표면은 은은하게 빛났다.


그 나무 아래에는 늘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는 조용한 분이셨. 손주들이 찾아가도 길게 반기거나 웃음을 보이기보다는, 그저 잠깐 고개를 끄덕이시는 정도였다. 대신 나무로 다가가 조용히 대추를 따기 시작하셨다. 굵은 가지를 한 손으로 붙잡고, 다른 손으로 열매를 하나씩 떼어내셨다. 그 동작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마치 이미 정해진 리듬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 아래에서 괜히 서성이다가, 떨어질 듯 말 듯 매달린 대추 하나를 올려다보곤 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조용히 그 열매를 따서 내 손에 쥐어주셨다. 말 대신 건네지는 대추는 미지근한 온도를 품고 있었다. 양손 가득 대추를 쥐어주실 때면, 그걸 다 먹지도 못하면서 괜히 더 받아 들고 있었다. 손 안에서 단단하게 부딪히던 감촉과, 씹을 때 느껴지던 묘한 단맛. 완전히 익지 않은 대추는 밍밍했지만, 그 맛마저도 이상하게 좋았다. 입안에서 오래 굴리다 삼키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그때 나는, 나무에 꽃이 피는 순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열매만을 보았고, 그것을 따주는 사람만을 보았다. 그 사이에 있었을 시간들은 자연스럽게 건너뛰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세월호 사고가 있은 지 사흘 뒤, 주무시듯 조용히 떠나셨다. 텔레비전에서는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었다. 세상이 크게 흔들리던 그 봄, 나는 한 사람의 부재를 아주 개인적인 방식으로 배웠다. 누군가가 사라진 자리는, 생각보다 분명하게 남는다는 것을.


대추꽃을 본 적은 없다. 찾아보면 알 수 있을 테지만,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다. 내게 대추꽃은 어떤 정확한 모양이라기보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기억에 더 가깝다. 아마도 아주 작은 연둣빛으로 눈에 잘 띄지 않게 피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져버렸을 것이다.


말차를 배우면서, 나는 대추꽃을 기다리게 되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꽃을 기다린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그 꽃이 피는 시간 속에는 분명 내가 지나온 어떤 장면들이 함께 들어 있을 것 같아서다.


누군가의 손, 건네지던 온기, 그리고 이미 지나가버린 봄날의 공기까지.


다시 강사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차선을 들어 올린다. 이미 사라지기 시작한 것 위에, 또 다른 거품을 얹기 위해서. 어차피 오래 남지 않을 것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잠깐의 형태를 조금 더 또렷하게 보기 위해서.

아마도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어떤 계절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끝내 돌아갈 수는 없지만, 한 번쯤은—그 계절이 우리를 다시 지나가 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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