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집에는 3대의 냉장고가 있다. 냉장고 2대 김치냉장고 1대. 그 냉장고는 빈틈이 별로 없다.
나의 집에는 2대다 냉장고 한 대, 김치 냉장고 한 대.
그러나 이 두 냉장고도 어머니가 주기적으로 채우시니 실상 어머니는 5대의 냉장고를 쓰시는 셈이다.
그나마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어서 우리 집 냉장고는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냉장고 없는 삶이란.... 아마 우주가 무너지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우주가 무너지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
일본 언론인 출신 백수 이나기카 에미코가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니멀한 백수생활을 즐기고 있는 분이다.
일본에서는 동일본 대지진이 모든 것을 삼킨 것을 본 이후 물질문명에 대한 집단 각성이 일어나 미니멀리스트가 된 사람이 많다. 에미코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그런데 에미코는 미니멀리즘이 소유물에만 집중하는 것에 의문을 품고 먹는 것에도 미니멀리즘을 적용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책의 일부를 읽어보겠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물건들을 사들이며 욕구를 채워왔다. 그 결과, 집안은 치우지 못한 물건들로 넘쳐나고, 그 물건들이 우리의 공간과 정신까지 잠식해 나갔다. 미니멀리즘은 그에 대한 반성이었다. 사람들은 진정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제대로 판단하게 되었고 심플하게 살아가는 풍요로움에 공감하며 행동에 나섰다. 산더미처럼 많은 옷들, 식기들, 집기류 들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인데.
그런데.. 그 와중에 ‘음식’ 만은 잊힌 게 아닐까
그건 아마도 심플한 식생활이 빈곤한 삶을 의미한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결코 아니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 이란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소비 사회에서 맛있는 음식이란 바로, 손님이 선택하고 돈을 지불할 만한 음식을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첫인상이 강렬하고 경쟁하듯 과해질 수밖에 없다.
그 과잉된 세계를 우리는 맛있는 음식이라 불러온 게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음식이 아니라 정보를 먹는다. 정말 맛있는지 여부를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을 먹는다는 데서 기쁨을 얻는다.
에미코는 과감히 냉장고를 버리고 간소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밥 국 반찬 3개 정도의 소박한 밥상은 빈곤이 아닌 풍요로운 삶을 그녀에게 선사했다.
냉장고가 없으니 갓 지은 밥을 자주 해 먹어야 했고, 제철에 나오는 신선한 음식재료를 이용해 간단한 음식을 해 먹어야 했다.
식단이 단순해지니 미감과 여러 감각들이 살아났다. 밥 지을 때 나는 소리와 기포를 관찰할고 밥 씹을 때 나는 단맛의 기쁨을 알게 된 것이다.
간단한 식단이 그녀의 미니멀라이프를 더욱 풍요롭게 한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는 에미코처럼 냉장고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고백하자면 나는 김치를 좋아하는 대식가이다.
냉장고에서 숙성된 맛있는 김치를 아직은 포기할 준비가 안되었다.
대신 소박한 밥상을 준비한다. 돌솥에 직접 밥을 짓고, 시래깃국을 끊이고 김치와 간단한 반찬을 준비한다.
우리의 몸은 여러 가지가 섞인 음식을 소화해 내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단순한 식재료로 단순하게 먹는 것이 소화기에도 그리고 면역계에도 도움이 된다.
이것에 관해서는 미국의 유명한 건강 컨설턴터 하비 다이아몬드의 말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병을 달고 살았고 베트남전 참전 후 고엽제 후유증으로 죽음 직전까지 갔던 하비는 자신이 건강을 되찾은 방법이었던 간단한 식단을 제안한다.
야채와 과일 주스를 먹을 것, 이것이 그가 제안하는 간단한 식단인 모노 다이어트다.
방법은 쉽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낮 12시까지는 오직 과일이나 야채 주스를 마시고 주기적으로 날을 잡아서 과일 혹은 야채 주스만을 마시라고 한다.
살을 좀 빼고 싶거나 면역체계를 정화하고 싶다면 3~4일 날을 잡아 과일과 야채 주스만 마시라고 말한다.
그러면 소화기도 쉴 수 있고 면역계가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나도 몇 년 전에 5일 동안 주스만 마신 적이 있다. 대식가인 나에겐 커다란 도전이었다.
그때 살은 3kg 정도 빠졌고, 몸에 빈발하던 염증이 사라졌던 기억이 있다.
같이 했던 분은 평소에 심하던 두통이 없어졌다고도 했다.
그러나 두 번 다시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 밥의 유혹이 너무 강한 곳이다.
그래서 차선으로 한 달에 3~4번 정도 날을 잡아 신선한 과일과 야채만 먹는다.
어제가 바로 그날이었다. 어제는 옛 직장에 가서 오랜만에 업무를 도와주던 날이었다. 12시간을 일했다, 과일만 먹고. 그럼에도 컨디션은 평소보다 훨씬 좋다.
이나기카 에미코나 하비 다이아몬드는 소박하고 단순한 식단이 우리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역할에 대해 말을 하고 있다.
특별한 질병이 있거나 특수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는 적용되는 방법은 아닐지라도 깊이 숙고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