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심리학과 종교

칼 융의 분석 심리학

by 나살린


이 글은 융이 1937년에 테리 강좌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총 3장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융은 임상의사로서 형이상학이나 철학적 고찰이 아닌 경험적 고찰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종교라는 현상이 지극히 심리적 측면을 가지고 있어서 신학적 논증이나 신앙의 유무에 대해 논하는 것을 피하고 경험적인 입장에서 서서 고찰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는 책 전반에 걸쳐 '경험', '실용'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하나의 현상인 것이다.





1장 <무의식의 자율성>에서는 임상심리학의 근본문제와 임상심리학과 종교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관계에 대하여 서론적인 설명을 하고

2장 <도그마와 자연적 상징>에서는 무의식 가운데에 순수한 종교적인 기능이 존재하고 있는 지를 확증하는 여러 사실들을 논하고

3장 <자연적 상징의 역사와 심리>에서는 무의식 과정 가운데에 나타나게 되는 종교적 상징의 문제를 논한다.


1장과 2장의 내용이 3장에서 절정을 이루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솔직히 3장을 읽는 게 쉽지는 않다. 연금술과 기독교의 상징을 말하는 부분에서는 책을 덮고 싶었다. 그러나 고비를 넘어서자 원형과 상징, 니체와 짜라투스트라, 괴테와 파우스트, 현대인의 잃어버린 신과 만다라 등에 대한 설명은 아주 강렬한 시선을 보여주었다.




칼 융의 환자가 그린 만다라


융이 말하는 상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만다라이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꿈속에서 혹은 종교적 상징에서 4라는 수와 원의 상징은 임상 치료에서 큰 역할을 한다. 어떤 경우는 원과 4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예로 든 것이 사각이 나타나는데 한가운데 분수가 있는 정방형의 광장이나 정원과 같은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이를 만다라라고 표현한다.

만다라에는 신은 원으로 상징되어 있고 또 여신 (이것은 또 대지 혹은 심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은 사각형으로 상징되고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겠지만 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공석으로 되어 있다.

현대의 만다라는 현대인의 정신적 상황이 부지불식간에 자기를 고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적 만다라에는 신도 없고 신에 대한 굴종이나 신과의 화해를 표시하는 어떤 것도 들어 있지 않다. 하나의 전체로서의 인간이 신을 대신하여 그 자리를 점령하고 있다.


또한 만다라에 의해서 형성된 체험은 더 이상 신의 상을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특이한 현상이 보인다. 이 사람들은 신의 모습이 외계로부터 철수되어 지금은 반대로 개인의 내부를 향해 투사가 된 결과 인격의 팽창 및 해체의 위기에 빠져 있는 자들이다. 따라서 중심이 원이나 사각형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은 방어벽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나라는 중심에 대한 오롯한 집중을 표시하는 동시에 그것을 엄호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상태를 자아 중심이라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자아 중심과는 정반대로 인격을 팽창과 해체를 피하기에서 필요한 자기 통제를 하기 때문이다.


제안된 영역은 성역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곳, 신사의 경내이거나 어떤 고립된 신성한 장소 같은 것을 의미하고 있다. 성역의 주인은 원래 신이었다. 현대인의 만다라 가 사용되고 있는 상징이 의미하는 바로 는 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자신이자 혹은 최소한 그의 영혼이 갇힌 수인이거나 만다라가 지닌 보호를 받는 주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립적인 존재로서의 신의 관념이 이제 더 이상 수용되지 않는 경우 이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우리가 알고자 한다면 무의식의 정신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의식은 이 경우 신격화된 인간 혹은 신적인 인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인간은 감금 은닉 보호되고 있는데, 대개의 경우에는 비인격화되어서 하나의 추상적인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퇴행 현상이 아니라 심리 과정의 참된 연속이라고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우주 자체는 태고 이래로 그 모습을 바꾸고 있지 않지만 우리의 의식은 독자적인 변화를 겪어 왔다.

사실상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자기가 투영한 환상의 홍수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만약 이러한 투영 물을 모두 제거시킬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 자신 가운데 들어 있는 상당한 정도의 그림자를 의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갈등을 부과한 인간일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해결을 요하는 하나의 중대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그는 다른 사람이 이런 짓을 했거나 저런 짓을 했다고 핑계할 수 없고 잘못한 것은 모두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없으며 싸움을 건 것도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무엇이나 자기 자신 가운데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고 그리고 만약 그가 자신의 그림자를 처리하는 법을 알고 있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세상을 위해 어떤 실제적인 일을 한 것이 된다.




융은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책을 마무리 짓는다.


인간은 누구라도 궁극의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체험한 한에 있어서의 진리를 믿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만약 이런 체험을 한 인생이 자기를 위해서나 또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더 건전하고 더욱 아름답고 더욱 완전하고 의미 있는 것이 된다면 이 경우 우리는 안심하고 이것은 <신의 은총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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