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가 멸망하고 중세가 시작되기 전. 서양은 이를 헬레니즘 시기라 부른다. 도시국가를 기반으로 시민 개개인이 자신들의 사회와 정치적인 운명을 결정하던 시대가 끝이 났다. 이제 개인은 강대한 로마제국에 흡수됨에 따라 사회에 관한 문제들을 사색하는 데 관심을 잃었다. 역사가 그들의 통제 밖의 일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개인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실천 철학이었다. 이 때 대두된 철학 학파 중의 하나가 스토아학파다. 스토아학파는 불가피한 사건에 대한 자신들의 반응을 조절하는 데 힘썼다.
어찌해 볼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앞에서 개인의 관심은 자신이 어찌해볼 수 있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성찰하는 방향으로 옮겨진다. 혹자는 이것이 사회를 개혁할 수 없는 자들의 무능력의 표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대 담론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도 자신에게 닥쳐온 삶의 사태를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능을 수없이 보았다. 학창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민주화를 위해 데모를 하고 핏대를 세웠던 사람이 가장이 되어서는 그 누구보다 더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이고 폭력적이 된 사람들을 보았다. 공적인 관계에서 민주화에는 공감을 하나 자신의 삶의 사적 영역에서는 민주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인 것이다.
오늘 소개할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바로 이러한 지점을 지적한다. 에픽테토스는 BC50년경 로마 동쪽의 변경지방인 프리기아에서 노예였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한데다가 다리까지 절었다. 그야말로 난감한 흑수저 태생이다. 그러나 다행히 관대한 주인은 그의 총명함을 아껴 로마로 유학을 보낸다. 로마에서 유명한 스토아철학자인 무소니우스 루푸스의 제자가 되어 공부를 하게 된다. 이후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어 평생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에픽테토스는 직접 한 줄의 책도 쓰지 않았다. 그의 제자 아리아노스가 스승의 가르침과 말씀을 <대화록>으로 남겼다. 총 8권이라고 하나 현재는 4권만이 전한다. 이 4권의 <대화록>을 축약한 것이 <엥케이리디온>이다. 위 책은 바로 이 <엥케이디리온>을 번역한 것이다.
에픽테토스의 평생의 주제는 자유와 노예였다. 이것은 그의 태생적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노예로 태어난 그가 평생 갈망했던 것이 바로 이 ‘자유’였다. 그가 말하는 자유란 정치적 사회적 자유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칙상 가지고 있는 ‘정신적 자유’를 말한다. 노예는 이런 정신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자들을 일컫는다.
자유를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달려 있지 않는 것의 구별’이다. 에픽테토스는 육체, 소유물, 평판, 지위는 개인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닌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이고, 자신의 관념이나 욕망은 각 개인이 내면에서 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역이어서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았다. 우리가 죽음은 피할 수 없으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피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아무런 욕심을 내지 않고 그저 초연히 바라볼 수 있다면 인간의 최고의 경지인 ‘평정(apatheia)’에 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는 결코 무능의 영역이 아니라 대단한 유능을 발휘해야 이를 수 있는 경지다. 이는 노자에게서 발견되는 ‘무위의 위’ 경지이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을 심란하게 하는 것은 그 일들 자체가 아니라, 그 일들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다. 이를테면 죽음은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소크라테스에게도 역시 그렇게 여겨졌을 것이지만, 죽음에 관한 믿음, 즉 두렵다는 것, 바로 이것이 두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