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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Dec 22. 2018

2. 왜 이제 와서 유학을?

어디 나왔는지는 중요하지만 몇 살에 거길 나왔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다

회사를 뜨기로 마음먹은 이후, 금융시장 내의 다른 회사를 알아본 것도 사실이다. 업계 자체에 회의를 느낀 것은 맞으나, 언제나 남의 집 잔디는 더 푸르러 보이듯 다른 회사는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잠시지만 아예 중국 회사에 들어가는 것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내 마음은 점점 유학으로 기울어져 갔다. 


유학을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외국 학위가 갖고 있는 특유의 지위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명문으로 여겨지는 대학을 나와 어느 정도 그 혜택을 보며 살아왔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그 학위만 가지고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지게 되었다. 주변에 외국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그 학위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전에 가지고 있던 위치보다 한 단계 도약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커리어의 중간 시점에 외국 학위를 하나 추가하면 그러한 장벽을 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 발단은 유학이 한국에서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나중에 생각이 발전되는 과정에서는 결국 해외에 정착하는 길을 원하게 되었다). 두 번째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이게 더 끌렸다고 할 수 있는데, 한국/아시아를 벗어나 좀 더 큰 물에서 놀아 보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항상 해외를 동경해 왔다. 이 당시에는 이미 중국에서도 살아 봤으니 이제 세상의 중심부인 (최소한 지금 시점에서는) 서구사회에서 한 번 살아 보고 싶었다. 큰 물에서 노는 것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발이라도 담가 보고 돌아와야 나의 갈증이 채워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반면 그동안 유학을 망설이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학비, 생활비 등 직접적인 비용과 유학으로 인한 기회비용이었다. 유학에 드는 비용은 대부분 크고 명확한 데 반해 유학으로 인한 이득은 매우 불확실하고, 실제로 있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커서 나중에라도 비용을 능가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실 커리어 초반에 후배가 미국 비즈니스 스쿨로 유학을 가는 것을 보고 나도 잠시 유학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모아놓은 돈도 거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겁이 났고 그러한 사실이 인지에 영향을 주어서인지 유학으로 인한 이익은 더 불확실하고 작아 보였다. 섣불리 넘볼 수 없었기 때문에 더 냉소적으로 유학의 실효성을 부정하는 심리가 발동했다고나 할까. 이를테면 ‘유학 간다고 뭔가 대단한 것을 배우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런 돈을 들일 바에야 차라리 CFA 같은 금융 자격증 공부를 하고 말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실제로 나는 CFA 자격증을 획득했고 나이도 그만큼 더 먹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유학에 대한 필요 또는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돈도 조금 모아 놓아서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이 돈을 유학에 쏟아부으면 나는 30대 후반에 와서 모아 놓은 돈 하나 없는 개털이 되겠지만, 돈이야 좋은 직장 잡아 다시 벌면 되지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책임질 식구가 없는 싱글이었던 것이 이런 낭만적이고 무책임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배경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유학을 일찍 가지 않고 열심히 사는 동안 나의 스펙이 조금 좋아지기도 했다. 금융 관련 자격증뿐 아니라 한국을 벗어나 중국에서 현지법인을 맡아서 운영하는 흔치 않은 경험도 쌓았고 이것이 다른 ‘평범한’ 커리어를 가진 한국 사람들과 비교해 조금 더 대학원 입학 사정관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내가 유학을 최종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 몇 가지 장면들이 있다. 첫째, 당시에 다니던 회사와 협업 관계에 있던 증권사의 상무님과 상해에서의 일정을 함께 마치고 황푸강의 아경이 내려다 보이는 바에 앉아 커리어에 대한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경력도 좀 되었고, 금융 자격증들도 이미 땄는데 커리어에서 앞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뭘 하면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그분의 조심스러운 대답이 유학이었다. ‘어느 정도 올라가고 나면, 국제적 안목을 갖추었다고 보이는 것, 즉 외국 학위가 필요한 것 같더라. 업무적으로 직접적으로 필요한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다.’라는 것이 그분의 말씀이었다. “CFA도 있는데, MBA 같은 것이 굳이 필요한가요?”라고 재차 물었는데 대답은 같았다. 나는 그저 유학을 가서 배우는 것들이 지식의 관점에서 새로운 것이 있을까라는 다소 좁은 관점에서 질문을 던지고 있었지만, 그분의 대답은 실제로 어떤 지식을 배워 왔느냐와는 무관하게, 유학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인식적인 차이에 대해 관한 것이었다.


둘째, 상해에서 유명 비즈니스 스쿨 졸업생 분을 만나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저는 이미 나이가 많은데, 유학을 가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까요?”가 나의 주요 질문이었다. 그분의 대답은 명쾌했다. “네가 좋은 학교를 나오면, 네가 거길 나왔다는 사실은 평생 따라다니며 도움을 주겠지만 네가 몇 살에 거길 나왔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럼 나는 왜 나이가 많은 것 때문에 위축되었을까. 나이를 많이 먹고 유학을 가면 어린 친구들에 비해 졸업 후 취업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울 수 있고 그렇게 될 경우 인생 꼬이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이건 실제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취업 확률을 높일 수 있을 만한 ‘좋은 학교'에 가지 못한다면 유학을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셋째는 좀 더 개인적이고 오래된 장면이다. 나는 원래부터 영어는 곧잘 하고 외국어/외국문화에 흥미가 있는 학생이었다. 군대에 갈 때도 쉽지만은 않은 영어시험을 통과하여 통역병으로 선발되어 복무했는데, 부대에서 부대장 이하 간부 몇 명이서 해외에 나갈 일이 생겼다. 내가 통역병이었기 때문에 나를 데려가겠다는 결재가 올라갔고 나는 사병으로는 흔치 않은 기회인지라 기대감에 차 있었다. 그런데 결재 라인에 있던 중령이 나를 불렀다. 나에게 ‘너 외국서 살다 왔냐? 아니면 유학생이야?’라고 물었는데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자 ‘외국서 살지도 않은 애를 어떻게 통역으로 보내' 라며 결재를 간단히 반려했다. 나는 당당히 자격시험을 통과해서 통역병으로 들어왔고 평소에 같이 일하던 소령은 나를 잘 알기에 결재를 올렸는데 나를 모르는 누군가는 그러한 것은 전혀 보지 않은 채 그저 나를 외국에 살았는지, 외국 학위가 있는지만으로 판단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은 일회성이 아니었고, 사회에 나와서도 비슷한 버전으로 여러 번 반복되었다. 마치 내가 아무리 똑똑해도 주요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면 명문대생들이 누리는 어떤 무형의 지위를 누리기 힘든 것처럼, 내가 유학을 가지 않으면 절대로 유학생들이 누리는 특유의 지위는 누릴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유학 가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일찍이 유학을 갔더라면 아마 괜찮았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며 아쉬워하곤 했었는데, 그보다 나이가 더 들고 나서야 비로소 지금 가는 것도 고려할 만한 옵션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이유들로 인해 나는 조금 (많이) 늦은 시점에 유학 도전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무슨 공부를 하러 갈 것인가? 나는 지난 수년간 금융맨이었다. 그런데 금융맨이 되기 이전 학창 시절에는 사실 외교관을 꿈꾸던 적이 있었다. 딱히 외교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국제무대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깨달았다. 이제 뭘 하지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과거의 내가 꿈꾸던 것들이 떠올랐고 거기에 내가 수년간 쌓아 온 금융 커리어를 믹스하니 국제금융기구에 가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국제금융기구 하면 떠오르는 IMF나 World Bank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주 어렴풋이 만 알고 있었다. 전자는 국가의 금융위기 도래 시 단기 자금을 대여하고 후자는 개도국의 개발 자금을 지원하는 곳이라는 것 정도. 하지만 뭔가 보람 있고 멋진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며 페이나 복지가 괜찮은 편이라고 들었던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이 두 곳 말고도 EBRD, IDB, ADB 등 꽤 많은 지역개발은행들이 있었다. 이런 쪽을 가려면 어느 학교로 유학을 가면 좋을까. 아무래도 정책/행정 (Public Policy/Administration) 대학원이나 국제문제 (International Studies/Affairs) 대학원을 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하버드의 행정대학원 이름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의 마음은 벌써부터 학교 홈페이지를 검색하고 있었다. 내가 하버드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라기 보다는... 원래 계획은 거창하게 세워야 맛이고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계획을 세울 때가 가장 즐겁지 않은가. 하지만 여의도와 상해에서 자산운용을 하던 나를 갑자기 하버드 행정대학원에서 뽑아주지 않을 확률이 높아 보였기 때문에 ‘백업 플랜’으로 MBA 과정도 서너 학교 정도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너 학교로 제한한 이유는, 앞에서 이야기했다시피 내가 나이가 많기 때문에 이름 있는 탑 스쿨이 아니면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유학을 갈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건대 이는 지나치게 한국적인 관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유학의 가장 큰 역할은 나의 관점을 넓혀 준 것과 기회의 문을 열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반드시 탑 스쿨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GMAT 공부와 TOEFL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는 중국 상해에서 현지법인 운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시간을 갖기가 다소 수월했다. TOEFL은 처음 도전했는데 평소에 영어실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던 터라 큰 어려움 없이 준비할 수 있었다. GMAT은 한국 특유의 학원 시스템과 인터넷 강의라는 것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훌륭한 한국 동영상 강의를 중국에서 인터넷으로 볼 수 있었고, 도움을 마다하지 않은 강사 분과 전화/이메일을 통해 시험 전체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와 노하우도 얻을 수 있었다. 몇 개월 후, 시험 결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GMAT은 한 번에, TOEFL은 두 번째 도전에서 원하는 수준의 고득점을 얻게 되었다. 그 전에도 미국 CPA나 CFA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적이 있지만 나는 미국 시험이 체질에 잘 맞는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 시험들처럼 주어진 내용을 빠짐없이 달달 외워야 하거나, 출제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하거나 채점자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게 답안을 쓰거나 할 필요가 없이 미국 시험은 그저 솔직 담백하게 물어보는 문제에 대해 알면 아는 대로 풀고 모르면 그냥 찍으면 된다. 나 같이 다면적인 사고가 힘들고 한 번에 하나씩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좀 더 편안했다. 시험 결과가 잘 나온 데 지나치게 고무되어 ‘나는 역시 한국에서는 misfit이구나, 진작에 미국으로 유학을 오거나 애초에 미국에서 태어났어야 하는데’라고까지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Fast forward 해서 현재는, 내가 한국 사회와 여러 가지 안 맞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은 나도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깨닫고는 한다). 이제 다음 스텝은 지원하고자 하는 학교들에 대해 조사하고, 그들에 맞춰 에세이를 쓰고 지원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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