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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Dec 28. 2018

3. 국제금융기구 설명회와 쓸쓸한 귀갓길

국제금융기구와 나의 거리는, 내 기대와는 달리, 아주 멀다는 것을 깨닫다

유학 준비와 동시에, 다양한 국제금융기구 웹사이트의 채용 페이지를 훑어보면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나의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다 마침 기획재정부에서 주최하는 국제금융기구 설명회 소식을 알게 되었다. 행사 이전에 미리 한국인 채용 가능성이 있는 일부 포지션을 미리 오픈하여 지원서를 받고, 사전 인터뷰 대상자로 선발되면 설명회 당일에 해당 기구의 HR 담당자와 인터뷰 기회가 주어진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이쪽 기회를 보던 중이라 해당 내용만 읽어도 가벼운 기대 및 흥분감이 느껴졌다. (머릿속으로 설레발치는 데는 누구보다 빠른 개인적 성향 덕분이다) 당시 나는 중국에 있었기 때문에 다음번 본사 출장 일정을 설명회 일정과 잘 맞게 배치하는 작업부터 들어갔다. 


사람이 자기 세계에 빠져 있으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입장에서 보는 나의 이력서는 이랬다 ‘4대 회계법인의 금융팀 출신으로 소규모지만 헤지펀드 운용사에서 포트폴리오 관리를 했으며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현지법인을 운영하는 등 팀 관리 능력도 보였고 CFA 등 국제 자격증들을 보유한 글로벌 인재’ 따라서 이 정도면 그래도 국제금융기구 설명회에서 사전 면접은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과는 생각과 달랐다. 지금 뒤돌아보면 내 이력서는 이렇게 보였을 것이다 ‘일단 국제개발과 관련된 경력이나 활동이 전혀 없고 회사도 글로벌 회계법인에 잠깐 다닌 것 외에는 뭐하는 곳인지 알 수도 없는 곳에서 길게 경력을 쌓은 데다 탑 스쿨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외 학사/석사 학위조차 없는 로컬 인력’. 


그러나 당시엔 누가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아 몰랐다. 그래서 더욱 용감하게 설명회에 찾아갔고, 의례적인 연설 몇 회가 지나간 후 나는 인터뷰어인 HR 담당자를 찾아 대화를 시도했다. ‘저는 이러이러한 사람인데 안타깝게도 이번 사전 인터뷰 대상자에 선발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쪽에 정말 관심이 많은데 혹시 인터뷰 캔슬이 발생하거나 일정 이후 시간이 되신다면 잠시 미니 인터뷰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의 요청이 진솔해 보였는지 인터뷰어는 고맙게도 동의해 주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내가 적극적으로 내 길을 개척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다행히 인터뷰어의 일정이 일찍 끝나 나에게도 실제 인터뷰 기회가 돌아왔다. 인터뷰는 감사인사와 덕담이 오가는 훈훈한 분위기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분위기는 금방 차갑게 식고 말았다.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하자 인터뷰어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퀀트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이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지금 국제기구 설명회에 와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너무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물론 정보를 얻으러 설명회에 간 것은 맞지만 그래도 인터뷰를 하려면 최소 국제기구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나서 내 경력과 접점을 찾아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저 내 경력을 내 업계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읊었던 것이다. 긴 침묵과 영혼 없는 추가 질문만이 이어졌다. 유일하게 긍정적이었던 언급은 ‘봉사 활동 경력이 있네요. 좋네요’였다. 그나마 유학 준비를 위해 급조한 (조작은 아니고, 중국에서 급하게 봉사 활동에 몇 차례 참여했다) 내용이었다. 인터뷰 자체가 한 편의 블랙 코미디같이 느껴졌다. 이윽고 인터뷰를 너무 빨리 끝내기가 민망했는지, HR 담당자는 설명회에 같이 온 현업 종사자에게 급히 바통을 넘겼다. 아마도 현업 종사자니 좀 더 내 경력을 잘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인터뷰어는 IFC (World Bank Group의 민간부문 투자 조직)의 투자전문가였는데 첫 질문이 이랬다. “딜 소싱 같은 거 해 봤어요?” 자산운용 업계에 있던 나는 저게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모두들 민간부문에서 금융투자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IB/PE나 Infra/PF 같은 분야는 Investment Management (자산운용)과는 다루는 자산도, 투자분석 방식과 용어도 완전히 다르다. 나는 국제금융기구의 투자 관련 조직의 기본적인 업무나 관련 용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을 하겠다고 그 자리에 와 있는 꼴이었다. 내가 대답을 잘 못 하자 이 사람의 나에 대한 관심도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학교는... 한국 xx대 나왔고 대학원도 xx대… 음...” 이러면서 나에게는 유학이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이미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는 것이 이 날의 유일한 위안이었던 것 같다). 내 이력서를 보며 다른 할 말을 찾지 못하고 혼자 중얼거리던 담당자는 이윽고 눈이 감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 그는 나를 앞에 앉혀 놓고 졸고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피곤한 스케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대 굴욕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곧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행사장을 나왔다. “네, 관심 감사합니다. 행운을 빌어요”라고 말을 들었지만 의례적인 말인 것이 너무도 명확했다. 


설명회를 찾을 때에는 큰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들어왔던 것 같은데, 나갈 때의 기분은 정말 최악이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 이 쪽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고 계속 생각해 왔었는데, 설명회 참석 이후 마치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꿈 깨세요’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기본적인 정보 파악 없이 순진하게 걸어 들어온 나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고, 퇴사하기로 마음은 먹었는데 그럼 이제 뭘 해야 하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생각했던 나와 현실의 내가 이렇게 다른데, 유학이라도 제대로 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돌아오는 길의 풍경이 기억난다. 당시 설명회는 숙명여대에서 열렸고, 나는 걸어서 남영역에 와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당시 남영역의 다소 남루한 듯한 풍경이 내 기분과 잘 맞아떨어졌다. 마치 ‘어제까지 너는 미국이나 유럽의 국제기구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삶을 꿈꾸었겠지. 하지만 네가 속한 곳은 여기야.’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감상에 젖을 만큼 나의 멘탈은 좋지 않았다.


Fast forward 해서 보면, 나는 결국 퇴사를 했고, 유학을 갔으며 국제기구에 들어왔다. 돌이켜 보면 이 날의 교훈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한다. 아무리 현실이 나를 강하게 후려치는 날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전진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목표가 가까이 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 대신 깨질 준비는 앞으로도 많이 해야 하고 시간도 생각보다 많이 걸릴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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