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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Feb 14. 2019

21. 국제개발의 필드 다이어리 - Part 2

내가 출장 다닌 FCV 4개국에서의 업무와 단상

DRC (콩고 민주공화국)


1. 국제개발 일을 하는 덕분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처음으로 발을 딛게 되었다 (북부 아프리카는 중동과 같은 문화/지역권으로 묶이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프리카'는 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로 불린다). FCV 국가들에 출장 가기 전에는 항상 보안 교육을 받는다. 아이티 때도 받았지만 DRC는 느낌이 달랐다. 일단 수도 Kinshasa의 지도를 보여 주며 지난 6개월간 어디에서 어떤 강력 사건이 발생했는지 브리핑을 했는데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의 탈옥 사건, 시내 슈퍼마켓에서의 총기 난사 사건 등 위험한 사건들이 자주 발생해서 ‘의례적으로 하는 보안 브리핑'으로 치부하기에는 좀 겁나는 브리핑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자 팀 리더는 자기가 예전에 브라질에서 어떻게 강도를 당했는지 무용담을 신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달러로 현금을 조금 휴대하는 것이 좋다는 말도 했다. 혹시라도 강도에 잡히는 상황이 되면 줄 돈이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프리카에서는 돈을 주면 해결되는 상황이 많아 다행이고, 진짜 위험한 것은 중남미의 치안이 좋지 않은 국가들인데, 거기는 잡히면 훨씬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다 시간이 다 되었고, 팀 리더는 떠나며 말했다 “그럼 여행 잘하고 Kinshasa에서 봅시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와이프한테 하지는 않았다.


2. DRC는 중앙아프리카에 위치한 큰 규모의 국가인데, Inga라는 큰 호수를 끼고 있어 상당한 수력발전 잠재력이 있다. 하지만 많은 개도국들이 그렇듯 전력생산이 턱없이 부족하고, 중앙 전력회사가 그런 프로젝트를 감당할 만큼 재정적으로 여유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나는 중앙 전력회사의 장기 전력공급 계획(가장 경제적으로 전력공급 목표를 달성하려면 언제 어디에 어떤 발전소를 지어야 하는지)을 짜 주고 그런 계획이 전력회사의 재무상황에 비추어 가능한지, 그렇지 않다면 전력회사의 재무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모델의 결론은, 당연히도 수력발전소 위주의 계획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초기의 인프라 투자 비용이 크지만 이후 연료비가 들지 않는 데다 화석연료를 쓰지 않는 부분에서는 친환경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수력발전소 자체뿐 아니라 대규모의 송전, 배전선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자금이 많이 필요했다. ‘그러니 비싼 자금 쓰지 말고 우리 자금을 쓰세요!’라고 조언하려고 했는데 웬걸, 이미 중국 수출입은행에서 거의 공짜로 자금을 받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중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아프리카에 저리로 자금을 제공하면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실제로 그렇구나라는 사실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3. 국영 전력회사는 재무상황이 좋지 않아서 전기요금을 올리거나, 전기요금 수금을 잘해야 했다. 전기요금 인상은 정부의 지지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의 성숙도가 낮은 개도국에서는 특히 민감한 문제다. 전기요금 수금의 어려움은 많은 개도국들의 공통적인 문제다. 전기 공급이 충분히 되지도 않지만 그나마 있는 소비자들이 미터기를 조작하거나 아예 전기를 훔치는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처음에 나는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아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전기를 훔친다니, 대체 어떻게 훔친다는 것인가? 전기회사의 전력망에 전선을 무허가로 연결해서 전기를 빼오는 것이다. 엔지니어에게 돈을 얼마 쥐어주면 알아서 이렇게 전기를 훔쳐서 집에다 연결해 준다고 한다. 개도국의 상황은 때때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범위를 넘어선다.


4. 주로 차 안에서 이동 중에 바라본 DRC의 수도 Kinshasa는, 한 마디로 사는 것이 정말 힘들어 보이는 곳이었다. 엄청나게 저개발 상대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는 물론 매연을 내뿜는 미니버스에 빼곡하게 들어차 이동하고 있는 대도시의 스트레스까지 느껴졌다. 아이티처럼 날씨가 쨍하지도 않아서 더욱 우울하게 느껴졌다. 이동 중에 슈퍼마켓에 들렀는데 물건에 가격표가 없었고 대신 코드번호가 적혀 있었다. 극심한 인플레 때문에 가격이 계속 바뀌어서 아예 코드번호를 부여하고 코드마다 매일 바뀌는 가격표를 적용하는 것이다. 재무 모델을 짤 때 이 나라의 최근 2-3년간 인플레이션이 말도 안 되는 수준 (70%, 50%)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게 현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감이 오지 않았는데, 바로 이렇게 나타나고 있었다. 

출장 중에는 식대 명목으로 하루 일당(Per diem)이 나오는데 나라의 물가 수준에 따라 다르다. 보통 저소득 국가/도시일수록 물가도 저렴하기 때문에 일당도 적게 나오는데 Kinshasa의 일당은 놀랍게도 서울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이나라는 자국 경제 기반이 너무 약해서 기본적인 것들 조차 수입에 의존하고, 그러다 보니 우리 같은 외국인들이 접하는 물가는 국제 수준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매우 가난한 현지인들의 경제와 선진국 수준의 물가인 외국인들의 경제가 공존하는 것이다. 실제로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외국인들을 위한 이탈리안, 프렌치, 스패니쉬 레스토랑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는데 가격도 미국 수준이었고 음식 수준도 대단히 훌륭했다. 한국의 60년대에 한남동 유엔빌리지 같은 곳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Kinshasa 거리의 풍경


5. 이 나라는 호텔이나 전력회사 등 어디를 가든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군 출신이자 이전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하는 젊은 대통령의 사진이었는데 그 모습이 우리나라의 과거 또는 북한의 현재 (그리고 중국의 과거이자... 다시 현재?) 모습을 연상시켰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회사의 현지 사무소 입구에 현지화의 일환인지 우리 그룹 총재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는 것이다. 국제기구 총재의 사진이 저런 식으로 벽에 걸려 있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 들어가면서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총재는 과연 저 사실을 알까 궁금했는데, 아무튼 총재 본인이나 우리 기구 본부 사람이 그러라고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현지 직원들이 자기들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알아서 충성하는' 취지에서 그렇게 만들어 놓았을 텐데, 자기 사회의 논리에 너무 익숙해서 그런 행동이 국제사회의 기준으로는 조금 이상해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면 생각은 했더라도 그냥 자기들 식으로 하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6.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들었는데, DRC는 사람들이 특히 패션에 신경을 많이 쓰는 곳이라고 했다. 이런 가난과 사회 불안정 속에서 무슨 패션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듣고 나서 돌아보니 정말 젊은 남자들은 딱 붙는 재킷과 화려한 셔츠 등을 많이 입고 여자들도 꽤나 신경 쓴 듯한 옷들을 많이 입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 중에 나라가 가난하고 불안하면 사람들이 패션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사람의 욕구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회 불안정도 오랜 기간 지속되면 그것 자체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생활환경이 되고 그 환경 안에서 사람은 더 현재를 즐기려고 좀 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가치들을 추구하려고 할 수 있다 (레바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레바논의 뷰티 산업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레바논 사람들이 내일이 없는 것처럼 파티를 즐기는 이유가 사회 불안정의 반복으로 최대한 현재를 즐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라는 해석을 했었다). 게다가 패션이라는 것은 사실 가장 저렴하게 자신을 표현하거나 과시할 수 있는 (자동차나 집 같은 물건에 비해) 아이템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 곳에서는 패션에 더욱 신경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 출장을 가면 보통 우리 회사 자동차 (보통 보안 기능이 다소 강화되었다고 하는 도요타의 SUV를 탄다)를 타고 이동했는데 DRC에서는 해당 차량 보급이 잘 안 되었는지 현지 일반 렌터카와 운전사를 고용해서 다녔다. 저녁 먹으러 식당까지 몇 차례 이동했었는데 군인들이 주둔하는 포인트에서 두 번이나 차량 검문을 받았다. 나는 불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뒷좌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고, 운전기사와 앞좌석에 탄 회사 동료가 군인들과 뭐라고 대화를 했다. 마치 영화 ‘택시운전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는데 차이점은 우리는 숨기는 것이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색 중 차를 내려서 수색이 끝날 때까지 대기해야 했다는 것이다. 회사 동료는 아마도 돈 달라는 의도였을 것이라며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당한 경험 이야기를 했다. 의도가 어땠는지는 모르나 군인들은 차량 매트를 몇 번 뒤집어 보더니 이내 우리를 보내줬다. 

열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나와 한 명의 동료가 먼저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재미있는 것은 (아니, 사실 짜증났다) 이 나라를 떠나는 외국인에게 50불의 출국 요금(?)을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입국 시 비자를 판매하거나 환경보호 요금 등의 명목으로 외국인들에게 수금하는 나라는 봤어도 나가는 외국인에게 나가려면 돈을 내라며 수금하는 국가는 처음이었다. 동료는 열흘 간의 바쁜 일정으로 피곤한 데다 차 수색 등으로 약간 이 나라에 질렸는지 썩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들도 우리가 어떻게든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아는 거지.” 


DRC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TEMBO(코끼리) 맥주. 붉은색의 앰버 (Viennese Lager) 맥주였는데 진중하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은, 한마디로 훌륭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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