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재희 Feb 12. 2019

20. 국제개발의 필드 다이어리 - Part 1

내가 출장 다닌 FCV 4개국에서의 업무와 단상

개발은행은 개발 도상국에 사회 각 분야의 발전에 필요한 장기 자금을 저리로 빌려주는 일을 한다. 개발도상국에는 중진국에서 후진국 사이에 있는 나라들과 후진국에서 최빈국 사이에 있는 나라들이 있는데 두 번째 그룹에 속한 나라들 중 많은 수가 FCV (Fragility, Conflict and Violence) 국가들이다. 나는 정치, 경제, 자연적 상황으로 인해 취약하고 위험성이 특히 높은 이들 FCV 국가들의 프로젝트 위주로 일하게 되었다. 이들 국가로 출장을 갈 경우 단점 중 하나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다는 것이다. 항상 회사 차량을 통해서만 이동하게 되어 있고 개인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현지 보안 요원들의 교육을 받는다. 회사-호텔 생활만 반복하다 보니 그 나라에 대해 실제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워낙 새로운 나라이다 보니 이동 중에, 또 현지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들도 꽤 많다.


이들 국가의 공통적인 첫인상은 정말 ‘못 사는' 나라들이라는 것이다. 공항부터 일단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국제공항의 모습이 아니다. 한국의 80-90년대 시골 고속버스 정류장 같은 분위기에 정문 앞으로 불법 영업 자가용 택시 기사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며 나오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면 비슷하다. 우리가 주로 머물고 이동하는 곳은 수도의 중심지인데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가난이 어느 수준인가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직접 보면, 우리가 이런 고상한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잦은 회의와 논쟁을 거치며 말 잔치를 하고 있는 것이 이 나라에 실질적으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당장 못 사는 나라이니 고상한 프로젝트보다는 돈이나 음식을 바로 지원하자는 접근은 이들 나라들의 성장 잠재력을 더욱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지며 실제로 과거 수많은 실패 사례들이 있다.


한국은 국제개발 ‘업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사례 중 하나이다. 회사의 60-70년대 파일을 뒤져 보면 우리가 지금 하듯이 한국에 발전소나 도로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자금을 지원했던 프로젝트 보고서들이 있다. 읽어 보면 꽤나 흥미롭다. 당시 한국도 지금 이들 국가처럼 가난하고, 정치는 위험하며 부패가 만연한, 한 마디로 ‘이 나라가 과연 성장이 되겠나?’라는 생각이 드는 국가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들 국가의 정직한 관료들은 자신들이 또 다른 한국의 신화를 이루기를 꿈꾸며 개발 계획을 짠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을 돕는다. 일부의 비판처럼, 이 과정은 때로는 꽤 정치적이기도 하다. 예컨대 우리 기구의 최대 주주인 미국과 외교적으로 척을 진 국가들에서는 우리가 프로젝트를 하기 힘들다. 최대주주께서 원치 않기 때문이다. 뭐든지 공짜는 없다.


Haiti (아이티)

1. 미국에서는 “헤이리 Haiti”라고 불려서 어디인지 알아듣지 못했던 아이티. 중남미/카리브해의 최빈국 중 하나이다. 나는 이 나라에 친환경 발전을 장려하고 태양광 발전의 비중을 높이고자 하는 프로젝트 일을 하게 되었다. 부푼 기대감을 안고 시작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1년간 제 자리에서만 빙빙 돌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처음에는 대체 왜 이리 일이 진전이 안 되는지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황당하고 답답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나라의 대통령 선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서였다 - 1차에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결선투표로 이어지는데 1차 투표가 부정선거 파동으로 얼룩지면서 결선 투표가 연기되는 등 난리를 치르느라 정부가 구성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1년 후에 대통령 선거를 다시 치르고 행정부가 조각될 때까지 관료들이 나라의 방향을 결정할 중요 결정들을 내릴 수가 없었다. 우리의 일은 정부를 돕고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것일 뿐 정부가 움직이지 못하면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안 그러면 내정 간섭이 될 것이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 아이티 곳곳에는 선거 벽보가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그런데 후보자들의 번호가 심지어 100번을 넘어갔다. 대통령 후보자 등록만 하고 실제 출마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 실제로 100명 넘게 출마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많은 후보와 정당이 난립한 모습이 이 나라 정치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잘 보여 준다.


31번의 벽보가 가장 많았고, 유력한 후보 중 하나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바나나 농장 사업가인 5번이 당선되었다
흥정만 잘 하면 훌륭한 그림을 싼 값에 살 수 있다. 다만 밖에 걸어놓고 판매하기 때문에 햇볕에 상한 그림들이 많아 아쉬웠다.


2. 아이티는 의심할 여지없는 빈국이지만 카리브해 특유의 쨍한 햇볕과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공기로 인해 날씨가 좋은 날에는 선명한 색감을 가진 아름다운 곳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길거리 곳곳에는 그림 판매상들이 있는데 이곳 환경만큼이나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감을 자랑하는 그림들을 팔고 있다. 개발만 좀 잘 되었다면 이 곳은 빈국의 이미지가 아니라 낙원의 이미지가 더 어울리는 곳이라고 느껴졌다. 카리브해의 휴양지+뉴올리언스 같은 느낌의 도시가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현실은 지역 최빈국이자 잦은 자연재해(허리케인, 수해, 지진)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받아 온 국가이다. 내가 아이티 일을 하던 당시에도 허리케인이 닥쳐서 수백 명이 죽고 몇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고 했다. 선거, 재선거 난리를 치느라 진전이 안되고 멈춰있던 아이티 프로젝트는 이제 좀 진행되는가 싶더니 이 허리케인으로 인하여 또 무기한 연기되었다. 이 나라에 배정된 예산을 우선적으로 인도적 지원과 허리케인 복구 비용으로 써야 하는 시점에 태양광 발전 같은 프로젝트는, 그것도 돈을 그냥 주겠다는 것도 아닌 빌려주겠다는 프로젝트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허리케인 때문에 시범 프로젝트로 해안가에 만들어 놓았던 태양광 패널들마저 다 날아가 버렸다. 고구마를 백 개 먹은 듯 답답해지는 상황이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한데, 지금까지 나와 팀 리더가 급여를 받아 가며 (=프로젝트 예산을 써 가며) 일한 것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하고 표류하게 되니 나도 답답하고, 팀 리더도 답답하고, 아이티 정부 인사도 답답했다. 허리케인 피해를 직접 입은 아이티 사람들은 사는 것이 얼마나 답답할까. 이렇게 자연재해가 잦기 때문에, 이 나라(+ 근처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들) 개발 계획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기후 저항력(climate resilience)을 키우는 것이다.   


3. 아이티의 수도 Port-au-prince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는 의외로 미국 백인들이 많았다. 살펴보니 우리 같은 개발은행 사람들 외에도 각종 구호단체, 봉사단체, NGO 등지에서 아이티로 향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아이티를 도웁시다'같은 티셔츠를 입고 밝은 표정으로 즐거운 활동을 하러 가는 듯한 학생들과 어른들도 꽤 눈에 띄었다. 아이티는 국제개발의 놀이터 (Development Playground)라고도 불린다. 미국과 가장 가까운 최빈국 중 하나이기 때문에 뭔가 봉사나 구호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미국인들, 특히 아이들 대학 가는 데 유용한 봉사 활동 기록을 만들어 주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방문하는 곳이라고 한다 (더욱 여유가 있는 부모들은 아예 봉사 재단을 하나 만들어 버린다는 말도 있다). 물론 다들 좋은 일을 하겠다는 목적이고, 이렇게라도 다른 세상을 보고 경험하는 것이 미국에만 살면서 다른 세상에 무관심한 것보다는 낫겠지만, 내가 아이티인이라면 이런 상황이 딱히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Port-au-Prince 거리의 풍경


4. 우리 팀에 소속된 현지인 직원은 회의 같은 자리에서 별로 말을 하지 않고 자기 의견을 밝히는 데 소극적이었는데, 인근 지역 출신이면서 프랑스인인 팀장이 어느 날 그 직원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아이티는 위계질서가 좀 있고 보수적인 나라여서 윗사람이 이야기하지 않는 한 아랫사람이 먼저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 이런 식의 설명은 주로 동아시아 사람들과 관련하여만 들어 보았기 때문에 다소 신선했다. 아이티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 중 다른 하나는 자존심이 세다는 것이었다 - 아이티는 도미니카 공화국(DR)과 큰 섬 하나를 양분하여 이웃하고 있는데 지금은 도미니카 공화국이 여러 면에서 더 앞서 있지만 예전에는 아이티가 더 잘 살았다고 한다. 그로 인한 미묘하고 복합적인 감정도 갖고 있는 듯했다.

이곳 음식은 프랑스식과 로컬 스타일이 섞인 퓨전이라기보다는, 프렌치와 로컬 Creole 스타일 음식이 따로 공존하는 상태로 보였다. 예컨대 베트남 고유 음식과 프랑스 빵이 섞인 Banh Mi 같은 음식은 보지 못했다. 호텔에서는 프랑스 스타일 음식 아니면 local delicacies라고 해서 로컬 음식 메뉴가 몇 개 추가되어 있는 식이었다. Creole 스타일 음식은 파, 마늘, 양파 그 밖의 많은 양념을 사용하여 맛이 강하고 풍부하다 (생각해 보니 프랑스 음식과는 섞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한식-프렌치 퓨전이 잘 안 될 것 같은 이유와 마찬가지). 쌀밥과 고기 튀김, 그리고 자극적이고 매콤한 양념 같은 것이 곁들여 나오는 식인데 내 입맛에 맞아서 나는 로컬 음식 위주로 먹었다. 여담이지만 이때 만난 아이티인들과 한국을 함께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는데 간단한 수요조사 이후 이들을 시청의 유명한 족발집에 데려갔다. 다들 엄청 좋아하면서 잘 먹었는데 매운 것도 괜찮냐고 물어보니 아주 자신 있게 불족발도 시켜달라고 했고, 실제로 잘 먹었다. 인종 구성이나 지리적 환경 등이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임에도 여러 가지로 한국과 유사한 면이 많다고 느꼈다.


5. 현지 슈퍼마켓 음식코너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려는데 딱딱한 미트볼 같은 것이 있어 사 먹었는데 맛있었다. 이름을 물어보니 ‘키베’라고 했는데… 가만 보니 이건 중동/레바논 음식점에서 보던 Kibbeh가 아닌가? 현지 직원인 아이티인과 이야기해 보니 아이티에 레바논 쪽 이민자들이 꽤 들어와 있는데, 이들이 돈 되는 사업은 모두 장악하고 있고 시내의 값나가는 지역의 부동산 역시 상당히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날 만난 현지 태양광 사업자들 중 하나도 레바논인이었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아이티의 주류인 흑인의 입장에서 레바논인들이 곱게 보이지는 않는 듯했다. 이건 마치 중국 화교들이 동남아 각국에 흘러들어 가 그 나라의 산업과 부동산을 장악하는 현상을 연상시켰다. 조금 더 확장시켜 보면 미국에 유태인들이 흘러들어와 아이비리그 학교와 금융계, 방송계의 주류를 차지하고, 그 이후로 인도인, 중국인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유학시절에, 농담조였지만 ‘Indian is the new Jew’라는 말도 들었다) 것도 떠올랐다. 좀 더 빠릿빠릿하고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새로운 곳으로 흘러들어 가 그 사회에서 세를 불려 가고, 그 사회의 주류에 위치하고 있던 사람들(또는 스스로 주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당연히도 그런 현상에 위협과 반감을 느끼고... 물론 한국은 이런 현상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지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헤시티쥐(Prestige) - 미국에 들어온다면 냉장고에 쟁여놓고 싶은, 시원하고 맛있는 라거 맥주였다.


나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고 아이티 프로젝트에 연결되어 세 번 정도 출장을 갔다. 그런데 초반 이후에는 내가 할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찾아야 했고, 이내 할 일이 넘쳐나는 아프리카 지역과 연결되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나의 다음 출장지는 DRC(콩고 민주공화국)으로 결정되었다.

이전 20화 19. 비즈니스 클래스의 달콤함과 국제개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