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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앞에서

<정재호 원장의 수술 일기>




-앞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달리다-  


어떤 일을 하든 안전하기만 한 생산을 이루는 구조는 없다.
모든 일에는 예기치 못한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성형 수술 또한 예외가 아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기는 경우가 흔치는 않지만,
발생했다 하면 언제나 허를 찌르며 등장한다.


지난주 설날 연휴를 앞둔 금요일 저녁의 일이다.
토요일 하루 진료만 끝나면 4일 동안의 달콤한 휴식이 기다린다는 생각에
느긋해진 마음으로 평소처럼 한강변을 산책하던 중이었다.
두 시간 구간의 산책길 중 중간 지점을 통과하는데,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일주일 전에 가슴 수술한 환자 분이 열이 39도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이건 예사 일이 아니다.
수술 후 7일 째면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긴 것일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열이 나는 것 말고 환자에게 다른 자각 증상은 없었지만,
서둘러 강남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오라고 하고 나도 갈 준비를 했다.
바로 응급실과 대학 성형외과 의국에 연락을 취하고 응급실을 향하는데
한강 공원 한가운데서 차편이 있을 리가 만무하니
아무리 다급해도 한 시간은 걸어서 다시 집으로 가야 했다.
평온하던 산책길이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 코스처럼 느껴졌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가 끝없이 달리다가
네바다 사막의 모뉴멘트 밸리가 저 멀리 보이는 163번 길에서
갑자기 멈춰 서서 돌아가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찌나 답답하던지···


그 후 며칠 동안 강남 세 브라스에서 모든 검사와 CT촬영을 했다.
다행히 환자의 수술 부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열이 나는 원인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안정되게 회복되고 있는 추세이다.
재수술의 필요성은 당연히 없었다.
환자는 원인불명의 체온 상승이 가라앉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혈액의 ESR, CRP 수치가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며,
항생제를 투여하며 입원해 계시다.
혈액 검사 결과 수치는 처음 열이 올랐을 때보다 많이 정상치에 가까워졌지만,
안전을 기하기 위해 완전한 수치가 나올 때까지 입원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지진도 날씨도 완벽히 예측할 수 없다.
애지중지 돌보는 화분의 난이 언제 꽃필지,
자식 같은 고양이가 언제 밥을 먹을지도 알 수 없다.
하물며 복잡계의 인체를 사람이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설계자의 마음에 순응할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예측하지 못했던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고
최선을 다해 해결책을 찾는 일은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상황에도 핑계 대지 않고 오롯이 문제와 직면하는 일-
어렵고 외롭지만 의사라는 소명(召命)을 받았으니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최근 순직하신 윤한덕 응급 의료 센터장의 죽음을 추도하다가,
나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산책 나왔다가 한 시간을 다시 돌아가던 날의
힘들었던 발걸음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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