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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에서 피어싱도 해요?

<정재호 원장의 수술 일기>




5일 전, 젊은 여자 변호사 분이 병원을 방문하여, 피어싱을 해 달라고 하셨다.

원래 뚫었던 피어싱이 찢어져서 새로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다음 날 재판이 있어서 귀걸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찢어진 상처는 나중에 나한테 수술할 예정이니, 그 옆에 귀걸이 구멍을 먼저 뚫어 달라는 것이었다.
바쁜 전문직 환자의 시간에 맞춰 드리는 것이 의사의 원칙이라 생각하기에
서둘러서 열심히 소독하고 마취까지 하고 귓불에 구멍을 뻥 뚫어 드렸다.
많은 분들이 성형외과가 아닌 액세서리 전문점에서 귀걸이를 사면서 귀를 뚫지만,
피어싱도 성형외과 전문의가 하는 처치 중의 하나이다.  

성형외과 의사에게 변호사나 기자 분들은 상당히 신경 쓰이는 환자분들이다.
까다롭기로 따지면 학교 선생님도 빠지기 어렵다.
보는 눈이 높고 원칙과 기준이 철저한 분들이다.
의사 생활을 30년쯤 하다 보니, 첫인상으로 환자의 성품을 어느 정도 짐작하기도 하고,
직업을 비슷하게 유추하곤 한다.


내게 피어싱을 한 변호사는 변론을 마치시고, 찢어진 귓불 수술을 하려고 다시 오셨다.
그런데...
어라! 피어싱 한 곳에 약간의 염증기가 있는 것이다.
환자 분이 변론 준비로 이틀을 꼬박 못 주무셨단다.
찢어진 귓불을 수술하며 염증이 생긴 곳도 같이 처치했다.
항생제 주사와 처방도 일상적인 용량보다 좀 늘려서 처방하였다.
피어싱하고 염증 생겨 송사에 휘말리긴 두려운 성형외과 새가슴 의사의 속내이다.


2년 전쯤 외래에 앉아 있는데, 둘째 딸의 전화가 울렸다.
한참 사춘기를 겪으며 집안의 폭풍우 같은 중학교 2학년 딸이 전화할 때
나는 약간 긴장하며, 자세마저 고쳐 앉게 된다.
딸은 "아빠야?" 하더니 다른 사람에게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둘째가 건대 앞 액세서리 가게에서 귓불에 피어싱을 하려는데,
미성년자라 부모의 전화 허가라도 받아야 한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그 주인장도 내가 성형외과 의사라고 얘기를 들었는지 상당히 긴장해 있었다.


엄마한테 전화했는데 받지 않아 나에게 전화한 것이라는데...
중학생이 귀를 뚫어도 좋은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나는 어쩔 줄 몰라서
'전화를 받지 엄마는 뭐하는데 아이 전화도 안 받아?' 속으로 툴툴대며 허락을 했다.
무서운 중 2의 명령에 내 대답은 Yes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예쁜 귀걸이를 지금도 잘하고 다닌다.


나는 변호사 환자의 피어싱을 한다고 온갖 소독에 마취까지 다하면서 요란을 떨었지만,
내 둘째 딸은 만 원내고 동네 가게에서 피어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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