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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ijai Dec 25. 2018

혼자 여행 하기엔 아직은 너무 심심하다

스위스에서 느낀 점 들

나이는 29. 여자 사람. 15년간 오래 같은 곳에서 살며, 4년간 같은 직장에서 꼬박꼬박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이번 땡스기빙 휴일을 맞아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바로 내년 2월, 나의 삼십 살 생일을 맞기 전, 생애 처음으로 나 홀로 여행을 떠나보자는 것. 계획은 단순했다. Google Flight을 검색해 가장 싸게 나오는 곳으로 떠나자.




기대 반 걱정 반, 검색을 시작했지만, 마음에 드는 곳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약 한 달을 앞두고 시작한 여행 계획은 무모하고 현실성이 없어 보이기만 했다. 게다가 친한 친구들 중 가장 가까운 두 명이 결혼을 하는 이 연말, 맡은 것도 돈 나갈 데도 많은 이때 혼자 일주일씩 떠나는 건 좋은 일일까?


그러나 올해 나를 위한 시간을 꼭 내고 싶었다. 그리고 어딘가 새로운 곳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지는 유럽. 유럽이어야만 했다. 아직 한 번도 안 가봤으니까! 그러다가 떠나게 된 세 자매의 여행. 나의 언니들이 합류하게 되었고, 목적지는 스위스가 되었다. (나 혼자 여행은 이미 물 건너갔다) 친한 친구, 현이 바로 취리히에서 음악을 공부하며 살고 있었다. 방을 내주겠다 했다. 적당히 안정적이고 적당히 낯선 여행지로 지금 나에게 딱이었다.


일주일간 경험한 스위스는 이 시점 내게 마침 꼭 필요했던 새로움과 신선한 충격을 선사해 주었다. 그래서 내가 일주일간 스위스를 경험하며 느꼈던 점들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적어보았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여러 가지 들:


1. 유럽은 또 다른 새로운 세계. 나름 서양권 문화에서 꽤 오랜 시간 살아온 나이니, 얼추 비슷한 경험을 하고 오지 않을까? 적응할 것도 없겠다.라고 뭉그려뜨린 나의 바보 같은 생각은 납작해졌다. 우선, 현과 내가 떨어져 있는 그 먼 거리가 피부로 금방 와 닿았다. 긴 비행시간은 정말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도착하고 나니 공항에서부터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일주일간 그 낯설고도 다른 문화권의 스위스 도시들을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는, 그곳에 자리 잡고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나의 친구 현이가 새삼 대견하고 대단해 보였다.


2. 아시안을 별로 웰컴 하지 않는 느낌. 중간에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들린다는 스위스 인터라켄이란 곳을 삼 일간 아지트로 삼아 근처 지역을 여행했다. 사전 정보가 부족했다. 인터라켄은 산으로 둘러싸여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다시 가라면 정말 갈까 의문이 들만큼 너무 관광지스러운 곳이었다. 한국사람들과 중국사람들 밖에 보이지 않았던 곳. 다른 문화 차이 때문일까? 비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몰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인지, 그곳의 고유의 멋을 느끼는데 때론 방해가 되었다. 여러인종이 다양하게 섞인 엘레이와 비교 불가할 만큼, 백인계가 우월하게 많은 이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래 내가 아시안이지,라고 자각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꽤 있었다.


3. 사람들이 조용하고 예의 바르다.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가장 조용한 분류. 거의 어른 세대가 주인데 그래도 꼬맹이들과 청소년들은 제법 생기 차고 활발한 친구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친구 현은, 스위스계 인물들 중 big personality를 찾기는 힘들다고 했다. 이 왁자지껄한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자기의 목소리를 낮추고 적당히 평범한 기준에 맞추며 살아가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어릴 때 천진난만하고 시끄러운 에너지는 어른이 되어가며 모두 잃어가는 것인지.


4. 여행을 떠나는 목적지가 어디냐가 여행 자체에 큰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스위스는 혼자 여행하기는 외롭고 쓸쓸하다. 나에게는 그랬다. 조용한 도시 속 아무도 나에게 쉽사리 말을 걸어오지도 않고, 그저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침묵 여행하기엔 딱이다. 조금은 외롭게 느껴졌다. 나를 쉽게 받아줄 것 같지 않은 곳을 일주일간 여행자로 시간을 보내는 건 그렇게 나쁘지 않지만, 유럽에 살고 있는 나의 지인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5. 현에게도 듣고, 내가 직접 보며 느낀 점은, 유럽 사람들은 환경보호를 중요시 생각하고, 또 새것보다 오래된 것을 잘 보존하고 오래 고쳐 쓴다는 점. 미국에 오래 살다 보니, 나 또한 새로운 제품에 쉽게 혹하고 고장 난 것을 쉽게 버리는 빠른 소비습관에 물들어 있었다. 오래 고쳐 쓴다는 것은, 그만큼 잘 가꾸고 관리한다는 뜻 이므로,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태도가 아니다. 그러한 삶의 태도와 정신을 동경하게 되었다.  기차 안에서 만난 스위스 사람 대부분은 모두 시간에 바랬지만 정결하게 관리된듯한 깨끗한 옷들과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이는 낡은 가방을 메고 있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외 여러 가지 생각 노트들:


내가 살고 있는 엘레이는 나에게 적격인 곳이다. 날씨도 느긋하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적당히 어울려 사는 이 느린 대도시. 그래서 나는 추운 곳이라면 딱 질색인데, 이번 여행을 통해 추운 계절을 겪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 눈이다!!!)

straight to the point- 미국 사람들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잘 이어나가는 재주가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금방 쉽게 친근함이 느껴질 정도. 그렇지만 스위스 사람들은 다르다. 용건과 목적을 더 중요시 여긴다. practical 하지만 동시에 정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새로운 나라에서는 그 나라 말을 꼭 배워야 한다!는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 인사말 정도는 기본적인 예의이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좀 어려웠다. 스위스는 공용어가 프랑스어, 독어, 이탈리 어등 여러 가지라 너무 헷갈렸다. 내가 수줍게 건네는 말을 잘 알아듣는 건지 아닌지, 인사를 건네도 시큰둥한 반응에 내가 정확히 발음을 하는 건지... 더 소심해진다.

물이 깨끗하다. 엄청! 수돗물을 마셔도 된다. 그러나 생활 습관상 물병을 사마셨다. 스위스는 에비앙 값이 싸서, 1일 1 에비앙을 하다니!

빵이 너무 맛있다.. 유럽이 다 그런가? 그렇다고들 하고, 유명한 빵집은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정말 어디든 맛있을 것 같다. 이번에는 심지어 평범한 동네 마켓인 migros, coops 등에서 산 빵들을 맛보았는데. 크루아상. 우유. 유제품. 치즈. 와인. 모~두 맛나다.

한국처럼 겨울엔 거리에서 군밤 파는 노점상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유럽 여기저기에서 파는 듯. 맛은... 평범하다.

히터 시스템이 잘 돼있다! 마치 한국처럼. 그래서 밖에서는 꽁꽁 싸매고 다녀도, 기차나 건물 안에만 들어가도 훈훈하게 뎁혀진 공기에, 금방 재킷을 벗어야 한다.

돌아갈 집이 있기에 여행은 할만하다. 그래서 멀리도 떠날만하다. 돌아올 곳이 있는 사람에겐 방황도 괜찮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왜 적었지? 아마 열심히 사는 현을 보며 느낀 것일 듯)

나이 들어서도 가족과 추억을 쌓는다는 건 멋진 것.

잘생긴 사람이 많다. 정확히는 잘생긴 남자들. 그러나 좀 차가움.

겨울이라 그런가,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도시 속 교회 종소리가 귀에 달게 들리고, 묵직하게 울퍼 지는 이 소리는 이 역사 깊은 도시를 더욱 운치 있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많은 매력적인 경험들을 거리의 담배냄새가 깎아 먹는 것 같다.  비흡연자로써, 유럽 사람들이 펴대는 엄청난 담배량은 가히 엄청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와 자연, 모든 것을 가진듯한데, 그래서 건강한 장수 라이프도 거뜬히 꿈꿔볼 만 한데, 이렇게 담배로 깎아먹다니...

추운 나라로 여행 갈 땐 유단포를 가져가는 건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큰언니가 톡톡히 덕을 보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확실히 느낀 건, 우리 자매도 나이를 gracefully 먹고 있다는 것이다. 여행 중 순간의 빡침과, 좌충우돌 해프닝도 때론 겪었지만, 그것을 큰일로 보지 않고 그냥 웃어넘기는 마음의 여유를 나이와 함께 덤으로 얻은 것 같다. 예전이라면 마치 세상의 끝인 것처럼 패닉을 했을만한 일이었는데도. (가령 공항에 가고 있는데 여권을 안 가져왔다던가...) 그래서 나는 나이를 먹는 게 좋다.



친구를 보며 느낀 점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따뜻하게 만들었던 건, 그곳에서 우리 세 자매를 맞이해줬던 현이의 세심한 환대였다. 현이는 그곳에서 지휘를 공부하며, 멋진 사람들과 교류하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유럽에서 자리를 잡아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잘 곳을 내주고, 또 편한 여행이 되도록 첫째 날 공항에 나와 맞이해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심지어 초코렛과 스낵도 챙겨 왔다. 참 많은 고마움을 느꼈다. 이번에 현이를 일주일간 지켜보며 느낀 것들:

당당함은 사람을 멋지게 만든다.

대접받는 건 따뜻한 것. 꼼꼼한 배려는 감동이라는 것.

매일 자기가 하는 것에 정진하는 것.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현이의 책상에 쌓인 악보와 매 페이지마다 깨알같이 적혀있는 그녀의 분석과 글씨를 보며 느낀 감동이다.



떠나면 느끼는 것들:


여행은 늘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잠시 자신에게 익숙한 곳을 떠나 주변 환경을 바꿔주는 것은 인간에게 주기적으로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낯선 곳으로의 초대는, 불편하지만 나에게 새로움을 불어넣어 준다는 면에서 유익하다. 여행을 통해 잠시 타임오프를 갖는다는 것 좋은 점이다. 아니면 아예 나의 머릿속 생각을 끄고, 잠시 내 일상을 망각하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이번 여행은 새로운 곳으로 떠났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지만, 함께한 나의 언니들과 나눈 시간들이 무엇보다 값졌다. 결혼 후 각자의 가정을 꾸린 언니들과 언제 또 이렇게 셋이 여행을 떠날지 모르겠다. 또 각자의 특유의 캐릭터와 전문 분야가 있기에, 여행 중 겪는 여러 가지 난관들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잘 해결할 수 있었다. 가령, 큰 언니는 길눈이 매우 밝기 때문에 이동경로나, 알맞은 시간에 맞춰 정확한 기차 플랫폼을 찾아 도착하는 일까지 도맡아 리드했고, 그 때문에 많은 면에서 의지를 했다. 둘째 언니는, 세 여자가 여행 중 각자 긴장되고 예민해지는 순간을 특유의 유한 성격으로 쉽게 완화시켜주었다. 푸근히 기댈 수 있는 털털한 언니가 다리 역할을 하며 우리 셋의 조화를 이뤄주었다. 나는 총무역할을 맡아서 실질적인 리서치와 경비 등을 잘 짜주었다.


여행 내내 생각했다. 혼자 갔으면 참으로 고생이었겠다. 결론은 무모하게 혼자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보다, 충분한 리서치 그리고 그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새로운 길을 떠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 떠났다면 또 혼자만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었겠지만, 나의 타이밍은 이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다음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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