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와 나의 이야기 10-1
어디 빠질 게 없어서 벌새에게 빠지냐고 내 안의 어떤 목소리가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뭔가에 잘 빠진다'는 건 '어른이'라고도 불리는 나의 주요한 속성 중 하나이다. 나를 매혹하게 하는 대상이 없으면 삶이 재미없어지는 것 같아서인지, 나는 항상 뭔가에는 빠져 있었다.
낯선 미국에 와서 적응하던 초기, 아침마다 남편이 학교에 가고 나면 나는 혼자 멍하니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곤 했다. 전화 오는 곳도 없고, 친구도 없고, 갈 곳도 없었지만 누가 지켜보거나 혼내는 것도 아닌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습관대로 모든 행위에 나름의 명분을 부여해야 해서 텔레비전 보기를 '현지적응을 위한 영어공부 시간'으로 규정했다. 그래봤자 영어를 또렷하게 인식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인 '세서미 스트릿(Sesame Street)'이나 '바니와 친구들(Barney and Friends)', '카이유(Caillou)' 같은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들이었다. 내용이 심각하지 않고, 쉬운 단어들로 말하고, 말보다 행동이 많아서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동심으로 돌아가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영어공부라기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찾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그 중에서도 특히 우스꽝스럽게 생긴 보라색 공룡 탈을 쓴 바니와 공룡친구들이 등장하는 '바니와 친구들'이 좋았다. 생김새도 행동도 큼직큼직하고 말도 느리면서 코믹한 공룡친구들에게 점점 감정이입을 하고 애착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날인가부터 바니의 사촌으로 가끔씩 등장하는 '리프'라는 공룡에게 빠져버리고 말았다. 리프라는 이름은 '멋지다'라는 뜻의 '테리픽(terriffic)'의 중간 글자를 딴 것이라고 했는데, 그 멋진 리프만 나오면 기분이 좋고 흥분이 되었다. 리프는 다른 공룡과 달리 기분이 좋으면 머리 위 얼룩 무늬에 초록 불이 켜졌고, 내가 좋아하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나는 모든 곳에서 노래소리가 들려(I hear music everywhere)"라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리프의 머리에 불이 켜질 때마다 나까지 신이 났고, 몇 주 후에는 어린이 장난감 전문 쇼핑몰에 가서 리프 인형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 리프는 상시적으로 나오는 주인공들이 아니라 가끔씩 등장하는 조연 캐릭터여서 인형이 없었고(리프는 20년 가까이 제작된 바니 시리즈 중 마지막 몇년 동안만 등장),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리프랑 전혀 안 닮은 조악하게 만든 인형만 가끔 보였다. 귀여운 리프 인형을 구할 수가 없다고 남편에게 투덜대던 중, 조금 볼륨을 높인 내면의 목소리가 비아냥거렸다.
하다하다 이젠 빠질 게 없어서 탈 쓰고 나오는 공룡인형에게 빠졌구나!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정말 이젠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것에 빠져버렸구나! 하지만 잊지 않기로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탈 쓴 공룡 바니와 리프에게 빠짐으로써 외롭고 힘든 시절을 견딜 수 있었구나. 그렇게 보면 '빠진다'는 행위는 나만의 마약이자 구원 의식이었던 것이다. 나는 사막에 홀로 남아도 낮에는 굴러다니는 풀더미(tumbleweed)에 빠지고 밤에는 유독 빛나는 별 하나에 빠져버릴 사람이었다. 20대에는 남자배우들에게 빠졌고, 결혼 후에는 다행히 남자가 아닌 식물에 빠졌고, 미국에 가서는 영어를 요구하지 않는 자연과 새들에게 빠졌고, 유학 말기에는 새끼 손가락 만한 벌새에게 빠진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한때는 우연히 우리집 화장실에 살게 된 귀뚜라미에게 빠졌던 적도 있다. 어느날 화장실 슬리퍼 속에 들어가 있다가 내 발에 밟혀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나를 죄책감에 빠뜨리긴 했지만.
크기가 작아졌다뿐이지 붕붕거리는 날개소리와 반짝이는 깃털을 지닌 벌새 존스노우는 멋쟁이 공룡친구 리프와 다를 게 없었다. (사실 새의 선조는 공룡이긴 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무지개나 불꽃놀이, 오로라를 보는 듯한 쾌감을 주며, 솜털처럼 귀여우면서도 전투기처럼 강인하여 더욱 빠져들게 한다. 적고 보니 이 모든 표현은 그냥 '내가 빠져 있다'라는 말의 동어반복인 듯 하다.
존 스노우는 나의 '팬심'을 이해하는지, 부엌창 안에 숨어 자신을 훔쳐보는 시선을 꽤나 즐기는 눈치다. 양날개를 하늘로 쳐들고 기지개를 펴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 다시 날개를 내려 접고 나와 잠시 눈을 맞춰준다. 보통 기지개를 편 후에는 하늘을 향해 로켓처럼 휭하고 솟아오를텐데 말이다.
'흠...조금 더 포즈를 취해줄까나...'라고 생각하는 듯 두 날개를 접고 고개를 까딱거린다. 그리고 작은 발을 들어 강아지처럼 자기 목을 긁는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해서 다시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낸다.
내 마음은 좁고 갑갑한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 3그램밖에 안 되는 작은 새의 날개에 올라탄다. 새의 날개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내 마음도 0.1그램으로 가벼워진다. 새의 모든 행동을 집중하여 바라보고, 매순간 다른 각도로 반짝이는 등깃털과 목깃털을 관찰하고, 오리 모양에서 러시아 인형 모양으로 다시 백조가 되었다가 펭귄 모양으로 바뀌었다가 자기자신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러다보면 작은 새는 내 시야의 전체를 차지하고서도 더욱 확대되어 나의 집이 되고 세계가 되고 우주가 된다. 내 어깨를 짓누르던 불안과 두려움은 어느새 새의 눈동자 속 한 점 먼지처럼 사라지고 마음은 순수한 희열로 가득찬다.
존스노우는 바람이 내는 어떤 음악소리를 듣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까딱까딱거린다. 목운동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른쪽 날개를 들어올려 겨드랑이털을 부리로 정리한 후 날개 뿌리쪽을 쭉 뻗어 스트레칭을 한다. 반대편 날개로도 같은 동작을 반복하더니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두둥실 솟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온다. 사방 어느 곳에서도 경쟁자의 날개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금 이 순간의 평화를 즐기며 휴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산들바람을 타고 솟아오르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방문해야 할 꽃이 생각났는지 날개에 시동을 걸고 수직으로 솟아오른다. 우리집 지붕보다 더 높이 솟아올라 아래쪽을 살펴보더니 곧 지붕너머로 사라져버린다. 이 모든 해석이 나의 거대한 착각일 뿐임을 알면서도 나는 토요일 오후 같은 존스노우의 평화에 동승한다. 이제 눈을 감으면 하늘 높이 날아오른 존스노우의 시선으로 지상의 꽃밭을 내려다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