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와 명품백

벌새와 나의 이야기 10-7

by 최리라
2F2A1150-gg.jpg 내가 씨뿌린 나팔꽃에서 벌새가 꿀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마침내 이루어졌다.(사진은 못 건짐)


한창 일할 나이에 10년간 유학을 가버리고, 후반 2년은 뒤뜰 벌새나 보며 멍때리는 자에게 제대로 된 명품백이 있을 리 없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그래봤자 대단한 고가는 아님) 명품백이 몇 개 있었고 미국 중고샵에서 눈밝은 친구가 발견하여 사라고 강요해서 구매한 제품이 몇 개 있었다. 명품백 애호가인 몇몇 친구들처럼, 나도 그 예쁜 가방을 소유하게 되면 그들처럼 그 가방을 사랑하게 될 줄 알았다. 명품백 애호가들에게 벌새 피더를 달아주고 하루아침에 벌새에게 빠지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반대 현상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싸구려 가방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명품백을 옷장에 넣은 후 그것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까맣게 잊었다. 몇 안 되는 패물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할까봐 늘 숨겨두기 골몰하고, 실제로 착용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좋은 거라고 하니까 아끼느라고 더 사용하지 못했고, 명품백이나 보석에 어울릴 만한 복장과 신발도 없거니와 미국 시골 구석에서 그걸 들고 나갈 일이라는 게 생기지 않았다. 고작해야 동네 할머니께서 바베큐 파티나 부활절 팟럭에 초대하시는데, 요리 만들어 가기 바쁜 상황에서 명품백을 어깨에 걸고 손가락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낄 정신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나에게 쓸모 없는 걸 알면서도 쉽게 남에게 주거나 팔아버릴 수는 없는 게 명품백의 존재였다. 그것이 지닌 브랜드 효과를 알고, 구매가가 얼마인지 기억하고 있기에 파는 것보다는 소유하는 게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명품백과 나 사이에는 함께 만든 역사가 없었다. 명품백과 대화하는 법을 몰랐던 내게 명품백이란 그저 죽은지 오래된 생명체의 흔적일 뿐이었다. (이런다고 내가 뭐 대단한 환경주의자 그런 건 아니다)


그에 비하면 나의 뒤뜰에 찾아오는 벌새는 내가 소유하진 않지만 명품백이나 보석 이상으로 아름다웠고, 매일 내 피더에 찾아와 식사를 하면서, 나와 눈을 맞추었다. 무엇보다 벌새는 살아 있었고, 내가 잊고 있는 동안에도 자기만의 삶을 바쁘게 살아갔으며, 지구의 남반구와 북반구를 소유하듯 누비고 다녔다. 내가 설령 며칠간 개인 사정으로 피더를 걸어두지 못해도 벌새는 다른 대안을 찾을 뿐 굶어죽지 않으니, 크게 미안할 게 없었다. 벌새나 명품백이나 장인의 작품으로서(벌새의 제조사는 '하-넬') 정교하게 만들어지고 아름다운 건 마찬가지지만, 알아주고 사용해주는 이가 없으면 빛을 잃는 게 명품백이라면 벌새는 누가 알아주건 말건 햇빛만 있으면 반짝이며 무엇보다 그 기쁨을 누리고 싶은 이에게 '공짜+무한리필'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수많은 벌새 중 하나로 평범하게 태어나 주어진 시간만큼 열심히 살다가 알게 모르게 사라져가는 생명체일 뿐이지만, 바로 그런 점때문에 인간의 삶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미해보이는 그 작은 몸 속에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지상 위의 모든 생명체들과 그것을 포함하는 우주와 연결된 '신의 자식'으로서 '인간과 동류'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벌새를 관찰하면 할수록 벌새의 삶은 인간인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것 같았다. 벌새의 삶이라는 거울에 비추면 나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만족할 줄 모르며, 안전하게 살면서도 늘 불안해하는 겁쟁이가 확실했다. 길어봐야 2년 살고, 단벌신사에 집도 없는 벌새는 나를 전혀 부러워하지 않았다. 뇌 크기가 콩보다 작지만 인간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천재적인 일들을 해내는 벌새들은 어쩌면 인간보다 더 진화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햇빛에 오색으로 반짝이는 벌새 깃털의 아름다움은 나의 원초적인 미의식을 일깨웠으며, 잠깐이라도 나의 의식을 가시적이고 표면적인 세상 너머로 이끌어주었다. 불투명하고 어둡고 침침하여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의 눈은 본능적으로 밤하늘의 별과 작은 불꽃에 반응하듯이, 반짝이는 모든 존재들은 빛의 파편이고 빛은 우리 생명의 근원적인 존재와 맞닿아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의 심장이 아무런 전동장치도 없이 스스로 쿵쾅대며 혈류를 순환시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어떤 근원적인 힘-신적인 존재에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비록 우리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기에 많은 부분 나만의 독백으로 채워진다 하더라도 우리 사이에는 모종의 대화가 오갔고, 우리 사이에는 함께 한 시간만큼 역사라는 게 생겨났다.


내 인생에서 벌새와 함께 한 2년여의 시간은 어떤 관점에서는 가장 지루하고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드라마, 영화, 소설 같은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소비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잊는 행위가 아닌, 살아있는 존재와의 소통을 통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 시간이라는 점에서 가장 알찬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사느냐는 자신의 선택이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듣거나 구경만 하는 것보다는 나만의 세상 속에서 나 스스로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연으로 살아갈 때 나만의 역사가 생기는 것이니까... 그렇게 수많은 사진과 관찰일기로 남은 벌새 이야기는 내 삶의 소중하지만 이색적인 부분을 직조했고, 지금 돌아볼 때에도 여전히 살아서 반짝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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