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와 나의 이야기 10-6
반짝이는 무지개 조각(a glittering fragment of the rainbow), 숨쉬는 보석(a breathing gem), 불타는 마법의 홍보석(a magic carbuncle of flaming fire)...나보다 앞서 벌새의 아름다움에 빠진 사람들의 뛰어난 묘사능력 앞에서 나는 불꽃놀이, 오로라, 크리스마스의 전등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다가 할 말이 없어 머뭇거린다.
사이 몽고메리의 책 <버달러지(Birdology)>에 의하면, 고대 멕시코인들은 벌새를 "태양 광선(rays of sun)", "낮별의 머릿단(tresses of the day star)"이라 불렀고, 도미니카 공화국의 사람들은 "윙윙대는 꽃(buzzing flower)"이라 불렀으며, 포르투갈 사람들은 "꽃 뽀뽀쟁이(flower kisser)"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들의 반짝이는 깃털들이 케라틴, 즉 인간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말의 발굽, 코뿔소의 뿔, 물고기나 뱀의 비늘, 독수리의 발톱 등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게다가 에메랄드와 루비빛도 색소 때문이 아니라 미세한 털들을 부풀려 빛을 반사시켜 만드는 것이며, 모든 털의 심지(깃대)는 피부 아래 근육에 닿아 있어서 털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인간이야 어쩌다 춥거나 무서우면 털이 바짝 곤두서는 정도밖에는 할 수 없는데, 벌새는 깃대 하나하나를 무수히 많은 손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깃털로 이루어진 벌새의 깃털옷은 벌새의 피부와 한몸이며, 필요에 따라 얇고 가벼운 방수복에서부터 전투용 갑옷까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비록 단벌신사이지만, 집도 없이 사계절을 버틸 수 있는 비밀이 그 한 벌의 깃털옷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더울 땐 시원하게 열어주고, 추울 땐 꼭꼭 여며 따뜻한 공기를 가둬줌으로써 체온도 조절한다. 짝을 유혹해야 할 땐 빛을 활용하여 반짝이 의상으로 갈아입고 춤추었다가, 자신과 새끼를 보호해야 할 땐 그늘 속에 숨어 눈에 띄지 않는 잿빛 생명체로 변신한다. 몸 크기가 작으니 자연이 만들어낸 작은 틈이나 조금 두꺼운 이파리 밑에 숨으면 웬만한 자연재해는 피해갈 수 있다. 어찌보면 집이 없는 게 아니라 세상 모든 곳을 자신의 집처럼 사용하는 단벌신사인 것이다.
우리집 뒤뜰 나팔꽃벤치('토마토 벤치'에서 개명)에 앉은 벌새들을 관찰해보면, 깃털을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특히 기나긴 철새여행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 되면 더 오랫동안 꼼꼼이 깃털을 다듬고, 성능을 실험한다. 온몸의 털을 다 부풀리고 세웠다가 눕혔다가 방향을 돌렸다가 하느라 벌새의 모양이 펭귄에서 다스베이더로, 다시 백조나 학처럼 바뀌어간다. 옷을 빨 수는 없지만, 깃털이 낡아 너덜너덜해질 무렵이면 때를 맞춰 순서대로 털을 갈기도 한다.
처음엔 집도 절도 없는 불쌍한 단벌신사처럼 생각했던 벌새가, 보면 볼수록 나보다 고등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어렸을 땐 부모님이 함께 계신 곳이면 그곳이 어떤 곳이든 나의 포근한 집이었는데, 출가한 후 떠돌다보니 나는 영원히 집을 잃은 느낌이다. 부모가 원했던 자식으로서의 내 옷을 벗고, 진정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 입기까지 20년도 넘는 세월이 걸린 것 같은데, 벌새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자신의 옷을 분명히 알고 입는 것만 같다.
어떤 집에 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어차피 몇년 살지도 못하는 집에 많은 돈을 투자하여 영원히 내것으로 소유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집에 갇히고 만다. 힘들게 집을 마련하더라도, 빚을 갚으며 집을 유지하기 위해 건강을 갈아넣으며 고달프게 일해야 한다. 집을 만드는 순간 인간의 거주 공간은 줄어들고 제한되는 반면, 집 없는 벌새는 집 밖이 모두 자기 집이어서 세상을 다 소유한다. 작디작은 벌새가 감히 이 세상의 절반 거리를 날아다니며 여름 집과 겨울 집을 구분한다는 건, 그만큼 벌새의 소유가 광활하다는 뜻이다. 나도 그러면 안 될까? 집 안도 내것이지만 집밖도 내것일 수는 없을까? 살아있는 동안 집 하나를 얻기 위해 지나치게 수고하지 말고, 최대한 작은 집을 소유하며, 최대한 집밖에서 시간을 보내며 좀더 넓은 공간을 누려보자고 결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