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와 나의 이야기 10-16
태풍이 완전히 물러가고 눈부신 햇살이 연분홍과 보라빛 나팔꽃들을 깨워낸 오늘 아침, 토마토 지지대 위 존스노우의 자리에는 어제처럼 스톤이 앉아 있었다. 존스노우가 떠났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직까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블라인드를 걷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존스노우는 지금쯤 어디까지 날아갔을까? 나는 틈틈이 루비뜨로티드 허밍버드들의 실시간 분포도를 확인하곤 했다.
미국에는 생물학자들도 많지만, 나처럼 아무 이유 없이 벌새에 미친 사람들도 많았기에 인터넷을 뒤져보면 상당히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얻을 수 있었다. 10년 이상 벌새에 빠져 있으면서도 해마다 가을이면 벌새들이 떠난다고 징징대는 사람들의 온라인 동호회도 여러 개였고, 이런 사람들이 해마다 힘을 합쳐 아래와 같은 벌새지도를 만들었다. 북미의 우측 절반을 차지하는 자주빛 새들이 루비뜨로티드 허밍버드, 즉 나의 존스노우가 속한 벌새 종류이다. 이들은 플로리다에 모여 잠시 휴식한 다음, 다시 걸프만을 건너서 남미의 멕시코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https://www.hummingbirdcentral.com/hummingbird-migration-spring-2021-map.htm
남이 찍어둔 루비뜨로티드 허밍버드 사진을 보면 '이 사람이 혹시 내 사진을 훔쳐갔나?' 싶을 정도로 존스노우와 똑같은 경우가 많다. 벌새 피더의 종류가 거기서 거기고, 벌새들은 정말 다 비슷하게 생겼다. 그러나 나의 존스노우가 특별한 건, 존스노우가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이런 지독한 착각과 짝사랑 속에서 스톤을 바라보니 존스노우가 더욱 그리워졌다.
막 면도를 마친 남자의 턱을 연상케 하는 스톤의 목에는 또 한 군데 붉은 깃털이 피어나서 마치 루비 귀걸이를 찬 듯했다. 이 청소년 벌새의 얼굴은 생애 처음으로 돋아난 흰 깃털로 인해 유독 깨끗하고 뽀얗게 보였고, 이제 막 단단해진 검은 부리는 매끈하고 유연했다. 온몸에서 아직 '아기' 티가 나는 데다, 올해 태어나서 별로 험한 꼴을 못 겪어봤는지, 나와 카메라를 별로 겁내지도 않는다. 시간이 흘러 털갈이를 하고 병을 앓거나 전투로 상처를 입고 흉터가 생기다 보면 이 완벽한 모습도 대담한 태도도 조금씩 변해가리라. 이 청소년 벌새들의 부모들은 일찌감치 각자 남쪽으로 떠났을 테고,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는 위험한 철새 이동을 오로지 자기 머리에 새겨진 지도와 본능만으로 감행해야 한다.
스톤의 방어력과 스피드가 약하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남쪽으로 이동하던 중에 잠시 들린 새들이 늘어나서인지 오전부터 대여섯 마리의 벌새들이 몰려들어 넥타를 훔쳐먹는다. 스톤은 막아보려고 애를 쓰지만 존스노우에 비해 속도도 힘도 부족하고 비행 기술도 어설프다. 내가 보기에 다른 벌새들은 스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 같다. 그래도 스톤은 나름의 방어전략을 세운 것 같다.
제일 먼저 일어나 세로형 넥타통 근처에 출근한 다음, 더 많이 자주 넥타를 먹어 충분한 에너지를 쌓아둔다.
다른 동네의 꽃을 찾아가고픈 욕망을 억누르고 그냥 하루 종일 넥타통 앞 토마토 지지대에서 근무한다.
벌레도 되도록 주변에서 잡아먹는다. 자리 비우면 불리하니까.
청소년 수컷들은 목에 붉은 깃털이 돋은 모양이 다 달라서 오히려 구별이 쉽고, 그들의 독특한 행동 양태도 더 눈에 띈다. 스톤은 호기심이 강한 편이어서 종종 부엌 창문 가까이까지 날아와서 하버링하면서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해 안 되는 게 있는지 고개까지 갸우뚱거리는 걸 보면, 신기한 강아지의 눈과 다를 바 없다. 최근에 나타난 용맹하고 잘 생긴 수컷 벌새는 내가 '에이건'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는데, 이 이름 역시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따왔다.
확실히 암컷들이 좀 더 커서 그런지, 가로형 넥타통에서 청소년 암컷 벌새들은 여유롭게 앉아서 먹는 반면, 상대적으로 몸이 짧은 편인 수컷들은 고개를 숙일 때마다 폴짝 뛰어오르면서 먹는다. 그래야 기다란 부리를 좀더 깊이 넥타 구멍 속으로 밀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목 디스크에 걸릴까봐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중 한 마리는(이 녀석 사진은 못 찍음) 특이하게도 넥타통 둘레의 발판이 아닌 넥타통 중앙을 덮은 미끄러운 뚜껑 위에 올라와서 넥타를 먹는다. 그래서 먹는 동안 발이 주르륵 미끄러지길 반복하지만 뛰어오르지 않고도 고개를 충분히 숙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가히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거실에 있다가 가끔씩 "탕"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서 부엌으로 가보면 벌새들끼리 싸우다가 유리창에 몸을 박는 것을 목격한다. 전투기처럼 상하전후좌우로 방향을 꺾어 날면서 날카로운 부리와 발로 싸우기 때문에, 정말 드잡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태풍으로 많은 지역이 피해를 입으면서 벌새피더를 달아주는 손길도 많이 줄었을 것이다. 갈길은 멀고, 먹이는 줄었는데 경쟁은 치열하다보니 상당히 드라마틱한 '밥그릇 싸움'을 목격할 수 있다.
뾰족한 부리로 상대의 등, 배를 찌르거나 눈알을 공격하기도 하고, 그걸 피하려고 하다가 발만 홰에 걸어둔 채 뒤로 벌러덩 뒤집혀 철봉을 하듯이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오기도 한다. 집중하여 보고 있으면 액션영화보다 더 재미있다. 싸움들은 주로 밥그릇, 즉 피더 주변에서 이루어진다. 스톤이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서 혼자만의 아침식사를 즐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사이 몽고메리(Sy Montgomery)의 <버달러지(Birdology)>라는 책을 보니 벌새들은 다른 벌새들을 부리로 쪼아 죽이는 게 아니라, '굶겨서' 죽인다고 한다. 다른 벌새들에게 먹이 접근권을 빼앗음으로써 점차 기력이 떨어져 죽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곧 같은 전략을 쓰는 다른 벌새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므로, 치명적인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생태 때문에 미국인들 중에는 벌새 애호가들만큼이나 벌새혐오가들도 많다.
전날부터 베이비소울과 에이건이라고 이름붙여준 청소년 벌새들이 안 보여서 혹시나 굶어죽은 건가 걱정이 되었다. 해 지기 전인 저녁 7시쯤 바깥에 나가서 벌새 먹이통을 갈아준 후 바로 앞에 가만히 서 있어 보았다. 나의 등장에 잠시 숨어들었던 새들은 가득 채워진 피더통을 확인하자 다시 붕붕거리며 날아왔다. 내 몸과 피더 사이에 30센티미터 정도 거리가 있었다. 내가 움직이지 않자 벌새들은 나를 고목나무 취급하며 마음껏 드나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속에서 목깃털 무늬로 베이비소울과 에이건의 존재를 확인했다. 새들끼리 날개를 부딪힐 때마다 가볍게 '파지직'거리는 소리도 들려서 싸움이 더 실감난다. 잠시 2차세계대전이나 영화 <덩케르크>의 세계 속으로 들어온 듯하다.
벌새들을 더 가까이 느끼고 싶어서 잠시동안 넥타통을 떼어 손에 들고 있어 보았다. 벌새 애호가들은 벌새를 눈앞에서 관찰하려고 피더가 달린 헬멧을 쓰기도 하고, 손바닥에 설탕물을 부어서 내밀기도 한다. 좋아하면 가까이서 보고 싶고, 그러다 꼭 만져보고 싶은 게 동물의 욕망인가보다. 스톤과 암컷 한 마리가 마지못해 다가와서 내가 들고 있는 피더에서 넥타를 먹었지만, 아주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톤이 내 팔 아래로 스쳐갈 때 그 가벼운 깃털이 내 피부를 스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속눈썹에 닿았을 때와 같은 느낌이랄까. 내일은 아침에 한번 더 그들 앞에서 나무 노릇을 하며 그 귀여운 모습들을 내 눈에 담아두어야겠다. 그동안은 사진 찍느라 여유가 없었는데, 내가 카메라를 들지 않으니 벌새들이 훨씬 편안해 하는 게 느껴져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