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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라 Feb 07. 2022

존스노우의 귀향에 얽힌 미스터리

벌새와 나의 이야기 17

만약 이 벌새가 존스노우가 아니라 다른 벌새라면 나는 이 벌새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험난한 여정과 끝없는 전투를 거쳐서 내 뒤뜰에 정착한 이 벌새를 존스노우가 아니라고 단정하고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새 이웃으로 받아들이긴 하되 다른 이름을 붙여주고 새롭게 정을 붙일 것인가? 


봄이 되면 금방 돌아올 줄 알았던 나의 벌새 존스노우는 5월 10일이 지나도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조지아 날씨로는 봄을 지나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이었다. 이미 4월초부터 벌새들이 나타났고 수컷 벌새들도 보이기 시작했지만, 행동양태를 보니 존스노우는 아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내 부엌 창가의 토마토 지지대에 오래 앉아 지내던 그 존스노우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게 확실했다.

    

조지아주 스테이트 보태니컬 가든의 봄꽃들과 도마뱀(붉은 목을 부풀리며 마초 디스플레이 중)


벌새소식지를 보니 루비뜨로티드 허밍버드(Ruby-throated hummingbird)들이 이미 캐나다 퀘백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수선화, 튤립, 목련, 벚꽃, 배꽃, 철쭉 같은 봄꽃들의 향연은 이제 끝나가고 있었다. 그동안은 꽃들의 수분을 책임지느라 매일 아침 일찍 조식만 먹은 후 출근하여 저녁 늦게 퇴근하던 수컷 벌새가 오늘 아침부터는 출근을 포기하고 그냥 근처 나뭇가지 위에 머물다가 15분에 한번씩 피더에 와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 방문했던 암컷을 마구 쫓아내기까지 했다. 이제 '피더당 벌새 밀도'가 높아져 여유를 부릴 수 없게 된 것 같다. 나는 슬슬 애가 탔다. 알고보면 내가 작년에 처음 피더를 달아두었던 날이 6월중순이었고, 존스노우가 나타난 건 7월초였으니 아직 충분한 시간 여유가 있었는데 말이다. 


작년에 존스노우가 처음 나타난 게 7월초였다면, 존스노우는 그 전까지 어디에 있었을까? 지금 추측해보자면, 존스노우는 봄에 다른 곳에 자리잡고 있다가 7월초 우리집에 새로 생겨난 피더가 마음에 들어서 이사를 온 것이 확실하다. 만약 존스노우가 4월~6월 사이에 머물던 장소에도 올해 피더가 걸려 있다면, 존스노우는 먼저 그곳부터 갔을 확률이 높다. 설마 존스노우가 지난 철새여행에서 운나쁘게 죽어버려서 못 돌아오는 건 절대 아니겠지! 암컷과 달리 수컷은 새끼를 키우지 않기에, 한 곳에만 정착할 필요가 없다. 


5.19

어제 오후부터 동시에 세 마리의 벌새가 추격전과 피더 쟁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소나기가 내린 직후에 더 심했다. 나는 작년보다 조금 더 용기가 생겨서, 미국 할머니들이 일러준 대로 빨간 옷을 입고 뒷문을 열고 나가서 새로운 실험을 하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본 다른 벌새애호가들처럼 손바닥에 넥타를 붓고 벌새를 유인하는 것까지는 못해도, 좀더 가까이서 그들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피더를 곧장 스탠드 고리에 걸지 않고, 내 손바닥에 얹은 채 의자에 앉았다. 미동도 않고 가만히 있으면 내가 아무리 무서워도 절박한 벌새들은 찾아올 테니까. 이전에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의 캠퍼스 아파트에 살 때는 다람쥐들의 춘궁기마다 견과류를 손에 가득 담고 나가서 배고픈 다람쥐들을 유인했다. 아파트 바로 앞의 거대한 단풍나무에 살던 다람쥐 가족은 내가 집에서 나올 때마다 쪼르륵 내려와서 내 손바닥의 견과류로 식사를 했다. 그러다가 단풍씨앗이 통통하게 부풀어 오를 무렵엔 나를 모른 체했다. 궁금해서 땅에 떨어진 단풍씨앗의 속을 먹어보았는데, 달콤하고 고소하니 맛있었다. 다람쥐들도 묵은 견과류보다는 신선한 씨앗을 좋아하고, 그건 생명과 건강 유지를 위한 본능이었다.   

 

처음엔 벌새들이 반응하지 않더니, 10여분 지난 후 용감한 암컷 한 마리가 내게로 날아왔다. 내 손바닥 위의 피더 가장자리에 앉아 설탕물을 마셨지만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 수컷은 가까이까지 접근하다가도 도저히 안 되겠는지 그냥 가 버렸다. 확실히 빨간 티셔츠 때문에 암컷은 (내 착각인지는 모르나) 나를 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암컷 벌새의 날개가 잠시 내 손바닥을 스친 것 같았다. 벌새가 넥타를 쪽쪽 빨아먹을 때 마치 벌새에게 젖을 먹이기라도 하듯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남녀구분없이 고양이나 강아지에게 밥을 먹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이유도 이것과 비슷할 것이다. 

 

내 손바닥 위 피더에 앉아 식사하는 암컷 벌새


5.22

어제까지는 수컷이 암컷에게 쫓겨나는 장면이 자주 포착되었는데, 오늘 아침부터 수컷이 다시 영역을 주장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존스노우가 도착한 것일까? 뿐만 아니라 토마토 지지대와 스탠드를 걸어둔 스큐어 위에 익숙하게 앉는 모습까지 보여서, 존스노우라는 확신이 더 커졌다. 내가 바깥에 카메라를 들고 나가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것도 그랬다. 물론 이건 모두 나의 착각일 뿐이고, 그냥 벌새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좀더 피더 가까운 자리에서 감시를 하기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 나는 혹시나 하여 DSLR로 찍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특이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돌아온 존스노우. 울퉁불퉁해진 부리 모양.

나를 아는 체하(는 것 같)고, 다시 우리집 뒤뜰 왕국을 차지하고 토마토 지지대에 익숙하게 앉아있는 모양새를 보니 존스노우인 것 같은데, 부리 모양이 이전처럼 매끈하지가 않고 어딘가 울퉁불퉁했다. 이전에는 벌새의 부리가 이렇게 자세히 나오도록 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고, 벌새의 아래쪽 부리는 벌어졌다 닫혔다 하면서 여러 모양을 만들 수 있으며, 각도에 따라 여러가지 모양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렇다쳐도 사진에 찍힌 벌새의 부리 모양은 여러 장의 사진에서 이전의 존스노우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난 가을 벌새그네로 날아들던 존스노우의 사진

사진을 보면 지난 여름에 찍힌 사진들 속에서 존스노우의 부리는 아래 위로 매우 매끈하고 균일하게 얇아보인다. 그런데 돌아온 존스노우의 부리에는 뭔가 상처와 흉터와 모양 변형이 보이는 듯하다. 나의 사진 기술이 향상되면서 이전에는 찍지 못하던 다양한 각도의 부리를 찍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봄에 돌아온 존스노우의 사진

이런 의심 때문에 존스노우가 돌아왔다고 확신하면서 마구 기뻐할 수는 없었다. 작디작은 존스노우의 발에 금속밴드를 채울 수도 없었고, 다 자란 벌새들은 너무나 비슷하게 생긴 데다 행동거지도 비슷하니까 더욱 신원확인이 어려웠다. 만약 이 벌새가 존스노우가 맞다면, 험난한 철새 이동과 남쪽에서의 새로운 영역다툼 과정에서 부리를 다쳤거나 피부병을 앓았다가 회복된 흔적일 것이다. 돌아온 존스노우의 부리 모양은 마치, 한번 부러졌다가 다시 자라나면서 아래턱쪽 부리 일부가 두 배로 두꺼워진 느낌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게 각도의 문제라면 나의 추측은 그저 억측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만약 이 벌새가 존스노우가 아니라 다른 벌새라면 나는 이 벌새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험난한 여정과 끝없는 전투를 거쳐서 내 뒤뜰에 정착한 이 벌새를 존스노우가 아니라고 단정하고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새 이웃으로 받아들이긴 하되 다른 이름을 붙여주고 새롭게 정을 붙일 것인가? 이 벌새는 거부하기엔 너무 사랑스러웠고, 그 눈빛은 너무나 익숙하고 다정했다. 나는 이미 이 벌새의 부리를 보면서 한없는 연민에 빠져들었고, 이 벌새를 존스노우라고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중에 진짜 존스노우가 돌아와 싸운다면 난 누구 편을 들 것인가? 


이게 바로 '마틴 기어의 귀향'의 주인공 여인의 갈등이 아닌가? 수년 전 집을 떠났던 남편 마틴 기어가 돌아와서(제라르 드빠르듀 분) 기쁨을 누리고 있었는데, 얼마 후 진짜 남편이 돌아와서 지금의 옆의 남자가 가짜라고 주장한다. 여인의 선택은 현재의 가짜 마틴 기어다. 왜 그랬을까? (이게 궁금하다면 영화를 직접 보세요!) 가짜라는 처음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진짜처럼 대했던 여인처럼, 나는 갈등을 하면서도 벌새를 존스노우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존스노우가 돌아왔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 벌새는 작년에 존스노우가 즐겨 하던 행동들-토마토 와이어 위에 앉아서 자리 지키기, 피더가 걸려 있는 스테인레스스틸 스큐어 위에 앉아 주위 감시하기, 나에게 익숙함을 느껴 내가 옆에 있어도 식사하러 오기, 자기가 있을 때는 어떤 다른 벌새의 식사도 허용하지 않기(한 마디로 동네 깡패)-을 모두 보여주었다.


마침내, 내게로 돌아온 나의 벌새 존스노우


오후에 옆집에 사는 한국인 친구 S와 잠시 방문 중인 친구의 어머님이 우리집에 커피를 마시러 오셨다. 내가 벌새에 빠져사는 걸 알고 있는 S가 창밖을 보다가 존스노우를 발견했고, "존스노우가 돌아왔네요! 축하해요!"라고 말해주었다. 전해에도 내가 며칠 집을 비울 때면 나 대신 피더에 넥타를 갈아주곤 하던 친구다. 내가 계속 존스노우 이야기를 꺼내자, 옆에서 듣고 계시던 S의 어머님이 질문을 하셨다. 


"그런데...아까부터 승호 승호 하던데 '승호'가 누고(누구니)?" 


그 말씀에 우리는 폭소를 터뜨렸고, 어머님께 설명을 해드리면서 나는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이 긴가민가한 새로운 벌새에게 존스노우가 아닌 '존승호'라는 한국식 이름을 붙여주기로 한 것이다. 승호라고 부르니 왠지 사촌 동생이나 친구 아들 이름을 부르듯 더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이 벌새를 '존승호'라고 부름으로써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 셈이 되고, 이 벌새가 진짜 존스노우여도 가짜 존스노우여도 상관 없게 되었다. 혹시 나중에 존스노우가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왜 내 이름을 저 녀석에게 줬어?'라고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작디작은 세계 속의 무한함을 가르쳐준 벌새 존스노우여, 너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일에서조차 나는 많은 것을 떠올리고 많은 것을 배려하게 된다. 밀당의 귀재 존스노우여, 확인할 수 없고 만져볼 수 없고 가질 수 없어서 더 반갑고 그리운 그대여, 귀환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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