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음의 원형이 존재한다는 견해에 대한 비판
좋음의 원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좋음의 원형이 존재한다고 말한 사람들은 우리 친구들이다.
친구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것은 껄끄럽다.
그럼에도 진리를 건져내려면 친구조차도 버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며,
철학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친구와 진리 둘 다 소중하지만,
진리를 더 존중하는 것이 더 신성한 일이기 때문이다.
좋음을 포괄하는 원형은 없을 것이다.
좋음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방식은 무수히 많다.
1. 신이나 지성이 좋다고 할 때처럼 실체와 관련하여
2. 미덕이 좋다고 할 때처럼 성질과 관련하여
3. 적당한 것이 좋다고 할 때처럼 양과 관련하여
4. 적절한 때가 좋다고 하는 것처럼 시간과 관련하여
5. 적절한 위치가 좋다고 하는 것처럼 장소와 관련하여
마찬가지로 그 밖의 다른 것과 관련해서도 사용된다.
따라서 이 모든 것에 적용되는 단 하나의 보편적인 좋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명예와 지혜와 즐거움이 왜 좋음인지에 대한 설명은 서로 다르고 구별된다.
따라서 하나의 원형에 대응하는 공통적인 좋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모든 좋음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어떤 하나의 좋음,
또는 모든 좋음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있는 어떤 하나의 좋음이 존재하더라도.
그러한 좋음은 인간이 실현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음은 분명하다.
반면, 우리는 지금 인간이 실현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좋음을 찾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