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약자도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나는 한강에서 자주 산책을 했는데, 어렸을때부터 지금도 종종 간다. 어릴때는 여름에 한강이 넘치기 일쑤였고, 한강물도 너무 더러웠는데, 2000년대부터는 한강이 꽤 깨끗해졌다. 최소한 한강에 빠져도 몸에서 냄새가 나거나 피부병이 생기지는 않는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한강물은 그렇게 더럽지 않다. 색은 좀 별로긴 한데. 하지만 강변에서는 절대 입수하지 않도록 하자. 아무데서나 낚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강바닥에 낚시바늘이 미친듯이 많이 있다.
한강변은 요새 너무 좋아져서, 낮이건 밤이건 많은 사람들이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는 좋은 공간이 되었다. 나는 이제는 자주 가지는 않지만, 가끔 아는사람과 한강을 따라 몇킬로씩 걸으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강을 따라 걷다보면, 이제 그만 걷고싶을 때면 지하철역이 나오기 때문에 편리하다.
어느 해인가, 외국에서 오래 지내다가 한국에 왔을 때, 나는 친구와 한강을 걸었다. 여전히 한강변은 아름답긴 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여태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이질감. 그게 뭔지 곰곰 생각하다 보니, 아 그 넓고 긴 강변을 걷는데, 장애인을 한명도 보지 못한 것이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오래전에 지은 아파트였지만, 꼴에 한강변에 있다고 사는 사람들은 꽤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오래된 집이니 계단만 있고 휠체어용 램프가 없어서, 몇년전에 램프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있어 표결을 했는데 (이걸 표결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돈들어간다고 부결시켰다가 몇년 뒤에 결국 짓게 되었던 적이 있다. 아파트에 장애인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주민중에 장애인이 있음에도 시가총액 수천억짜리 아파트가 고작 몇백만원을 장애인을 위해 쓰기싫다고 거부했던 것이다.
한강과 장애인용 램프. 이것이 한국이 장애인을 대하는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장애인이면 집에나 있어라" 라는 인식이 깔려있으니 한강에 나오기가 힘든 것이고, "장애인은 비용일 뿐" 이라는 생각을 하니 램프설치가 아까운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떠드는 애국심이니, 민족이니, 사회니 하는 것들은 강자의 재산과 권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시부족이라도 사회를 만드는 유일한 이유는, 혼자서도 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강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약자라 할지라도 사회속에서 살아가며 기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못한 사회란 그저 강자의 기득권만을 지켜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한국인들은 인종차별이나 조직내 차별을 너무나도 싫어하고, 그런 사건들에 대해 광분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신경쓰지 않는 차별이나 불공정함에도 격렬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오히려 사회적 약자, 특히 장애인들에 대한 암묵적이거나 드러나는 차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당신도 장애인이 될 수 있으며, 당신의 자녀가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사회를 일종의 보험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제 쌍팔년도 수준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차별은 수정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