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여 잘 있거라

적군은 내 몸을 죽이고, 아군은 내 정신을 죽이고.

by 제이니

"스팀팩이 필요해"


헤밍웨이는 '허무주의'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20세기 미국문학을 상징하는 사람 중에 하나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드레날린 중독자인 것 같다. 강렬한 자극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뭐 결국 글도 잘 안 써지고 몸이 노쇠해 사람들에게 잊혀가면서 자살해 버렸다. 헤밍웨이의 가족 중에 자살한 사람들이 유독 많아서 자살 유전자라는 게 있는 건지, 아니면 유전적으로 우울증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자살한 그의 아버지나 헤밍웨이는 그들의 삶을 봤을 때 아드레날린 중독임이 확실하다.


무기여 잘 있거라 (Farewell to Arms)는 헤밍웨이가 전쟁터에 가고 싶어서 1차 대전에 적십자에서 활동했던 자전적 이야기인데, 헤밍웨이의 소설들은 대부분 자전적 이야기이거나, 남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많다. 말년에 글이 잘 써지지 않아서 "아 써지지를 않는다"라고 탄식했던 것도 나이가 들어 더 이상 강렬한 자극을 주는 경험이 많지 않아서였을까.



"허무하지 않은 허무주의"


우리가 영화나 소설을 볼 때, 엔딩이 좀 허무하게 느껴지면 "허무주의"라고들 하는 것 같다. 근데 이 허무주의라는 것은 사실 "모든 것은 허무하니, 현재에 충실하고 행복해져 초월인이 되어라"를 주장하는 철학임에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허무주의의 대가이시지만 개인적으로는 찌질하기 그지없었던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 보면 충격을 받는 게, 아 허무함을 느껴야 진정한 현실의 행복을 알게 되는 것이구나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단어에 너무 구속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무기여 잘 있더라는 엔딩이 허무하게 끝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내가 본 주인공은 자기 자신의 애착에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착으로 나아가며 현재의 행복에 매우 충실한 사람이었다. 마치 '내일의 죠'에서 '모든 것을 하얗게 태워버린' 것처럼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서야 느끼는 최대의 슬픔을 가진 채 사라진다. 무신론을 포기하면서까지 살리고 싶은 사랑을 잃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인생을 허무한 인생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전쟁광의 반전주의?"


작가부터가 반전주의와는 좀 거리가 먼 인물이고, 실제 1,2차 대전을 모두 참전하면서 거의 아드레날린 중독증임을 만천하에 보여준 전력이 있다. 물론 전쟁에 기여하겠다는 그의 정신을 폄하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내가 보기에는 반전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전투의 그 긴장과 끔찍함을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주인공은 자기 동료들이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죽어나가던 전투에서 다리만 다치고 생존했음에도, 전선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거의 쇼를 한다. 몇 달 뒤에 수술하자는 말에 빨리 수술해서 전선으로 가겠다고, 굳이 의사를 바꿔가면서 수술을 강행한다. 미친놈인가.


여기까지 보면 작품은 반전주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적은 싫지만, 아군은 더 싫다"


주인공은 상부의 퇴각명령에 따라, 그리고 명령에 따라 본대보다 며칠 뒤에 소수의 병력을 데리고 전군 후퇴를 하게 되는데, 생고생을 하면서 돌아간 후방에서는 "너는 본대와 같이 있지 않으니 탈영이고, 군법에 따라 즉결처형하겠다"라는 전투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아군 헌병에 질려 바로 냅다 달려 탈영을 하게 된다.


적군에게서는 몸을 다치고, 아군에게서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죽임을 당할 뻔했으니, 주인공이야말로 전쟁의 부조리함을 가장 크게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연인을 데리고 죽을힘을 다해 스위스로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연인에게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적에게서는 몸을 다치고 훈장까지 받았는데, 아군에게서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배신을 당하는 것. 이것이 전쟁에 처한 대부분 국민과 군인들의 운명이다. 전쟁광조차 부조리하게 느끼는 전쟁의 현실.



"무신론자가 하는 기도를 들어줄 리가 없지"


주인공은 전쟁 중에 간호사를 덜컥 임신시켜 버리고, 야밤의 로잉으로 호수를 건너 겨울 스포츠의 나라 스위스로 그녀와 함께 도망친다. 수십 킬로미터 노를 젓고 갔는데, 아 개인적으로 로잉머신으로 운동을 하는데, 주인공의 고통이 마음에 확 와닿았다. 심폐지구력이 부족하신 분들, 로잉머신을 추천합니다.


주인공은 무신론자이고 소위 '쿨' 한 인간이라, 뭐 집착 같은 것도 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가 '처음에는 사랑하지 않았던' 연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후 그녀가 위독할 때 "신이여 제발 그녀를 살려주세요"라고 생각하자 그의 '쿨' 한 세상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물론 신은 무신론자가 하는 기도에는 관심 없다. 유신론자가 하는 기도에도 별로 관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신은"


자신의 죽음의 위기에도 찾지 않던 "신"은 그를 살려주었으나, 사랑하는 사람의 위기에 그토록 애타게 찾은 "신"은 결국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우리가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로구나. 이것은 매우 개인적인 생각이다.




헤밍웨이의 전반적인 문체는 쉽고 간결하다. 영어를 조금 하는 사람이면 원문을 읽으나 번역본을 읽으나 읽는 시간이 별로 차이가 안나는 소설이라 원문으로 읽으면 영어공부하기도 나쁘지 않다.


다만 미국작품들을 읽으면, 그렇게 풍요로운 나라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던 작가들이, 세상을 너무 차갑게 그리는 것 같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나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척박한 러시아문학은 사랑이 넘치고, 풍요로운 미국문학에는 쿨함이 넘치니 역시 모든 이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원하는가 보다.


Farewell to Arms의 번역인 "무기여 잘 있거라"는 상당히 좋은 번역인 것 같다. Fare well 같은 표현은 셰익스피어 희곡들에 잘 나오는데 Fare의 뜻은 '살다' '지내다' 뭐 이런 뜻이니, Fare well 은 "잘 지내라"인데, "무기여 잘 지내라" 하면 좀 이상하고 "무기여 잘 있거라"는 참 잘 지었다.


E.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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