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해지는 사랑과 전쟁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은 "죄와 벌" 을 처음으로 읽었었는데, "아 이런 생각을 19세기에 했다고?" 라는 느낌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근데 어디가서 아는척하기가 참 쉽지 않은게, 도스토예프스키 이름 발음이 너무 어려워서였다. 러시아 친구한테 나 니들 소설 읽었다고 자랑하는데 '도프토스키..' 뭐 이래서 좀 민망했던 기억이. 그래서 이번에는 한 10분간 발음 연습을 했다. "도스토, 예프스키" 로 끊어서 예전 한국 전화번호처럼 3 글자 먼저 외우고 다음 4글자 끊어서. 이제는 잘 말할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는 한방에 외워졌는데, 투르게네프나 도스토예프스키는 잘 안외워졌다. 그래서 톨스토이가 제일 유명한가.
"황금의 제국"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언급되는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 박경수작가의 "황금의 제국" 이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내용과 "황금의 제국" 에서 이복동생에게 그 책을 권하는 여주인공의 상황은 별로 상관이 없기는 하다. 드라마속의 여주인공의 상황은 "형제의 난" 에 가깝고,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의 형제들은 이복형제들임에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라는 제목을 보면 "유명 가문의 형제들이니 피터지게 싸우겠구나" 싶을 수도 있는데, 그들은 서로를 참으로 아끼고 사랑한다.
아마도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우리가 이복형제고 지금 형제들끼리 저모냥 저꼴이지만, 우리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처럼 서로 사랑하며 살자" 라는 의미로 책을 권해주지 않았을까. 물론 이복동생이 배신하자, 여주인공은 빌려줬던 카라마조프 책들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왕좌의 게임"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은 "얼음과 불의 노래" 이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 으로 유명한 그 책인데, "얼음과 불의 노래" 는 철저히 인물중심으로 챕터가 짜여져 있다. 챕터 제목이 주요인물 이름이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도 챕터마다 사실상 각 등장인물들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각 인물들은 각자의 목표가 있고, 각자의 갈등이 있다. 이런 어찌보면 "세계관" 을 만드는 일을 19세기에 했다는게 상당히 인상적이고, 물론 이전에도 그렇게 쓰여진 소설들은 있겠지만, 이렇게 인물 위주의 하나의 완결된 작품을, 물론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미완의 1부이지만, 썼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무라카미하루키가 본인이 궁극적으로 쓰고 싶다는 "종합소설" 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라고 바로 와닿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가 하나의 세계에서 진행하는데,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특히 마지막부분의 재판은 이건 뭐 한국 법정드라마들 (은 원래 쓰레기지만) 은 쌈싸먹는 수준의 전개와 치밀함을 보여준다. 남은 떡밥이 없다.
"살인마"
본작의 천재 살인마 스메르쟈코프는 "죄와 벌" 의 주인공과 비슷한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으나, 좀 더 사악하고 의존적이다. 어떤 사람은 "죄와 벌" 주인공이 본작의 둘째아들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표면적으로나 배경으로는 그래보이지만 실제로는 완벽히 버려진 자식인 스메르쟈코프와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냥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가슴 따뜻한 사랑과 전쟁"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은 다들 미쳐날뛰는데 이상하게 따뜻한 느낌이 많이 든다. 셋째아들 알료샤 외에는 다들 어디 나사들이 하나씩 빠져있거나 고집들이 센데, 어딘가 따뜻한 구석들이 있다. 강렬한 사랑도 있고, 집착도 있으나 뭔가 '그럴만해'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심지어 스메르쟈코프의 살인조차도 "이반은 나를 이해해줄 것이고, 나는 이반과 나를 위해서 살인을 하겠다" 라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은데, 이반이 이해하지 못하자 자신의 마지막 복수인 "자살" 을 해 버린다. 논쟁의 여지야 당연히 있겠지만, 스메르쟈코프의 심정을 생각하니 좀 왜곡되었지만 "공감받기 원하는 인간의 따뜻한 마음" 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릴 때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를 읽는데, 마지막에 대놓고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라고 명확하게 써놓은 것을보고 약간 황당했었던 기억이 있다. 맞는말이긴 한데, 보통 문학이면 위대한 개츠비처럼 "조류를 거스르며 거슬러 올라가는 어쩌구 저쩌구" 처럼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싶어서 좀 희안했는데, 아마도 그 때부터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좀 길지만, 틈틈히 읽다보면 막장드라마 보는 기분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다.
E.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