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라고 생각하는 것
판테온의 주인공은 한국인이다. 이제는 한국인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까지 나온다니, 미국/일본을 부러워하면서 자란 나에게는 참 세상이 이렇게 바뀐다고?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세상은 느리게 변하는 것 처럼 보여도, 순식간이구나 싶다.
나는 뇌과학을 연구하기도 해서 애니메이션 자체는 재미있게 보았다. 물론 앞뒤가 안맞는 것들도 조금 있지만, 그런거 다 따지면 논문이 되는거니까 영화에서 너무 큰 것을 '배우려고' 하지는 말자. 판테온의 주요 장치는 뇌를 스캔하면서 기존의 뇌를 없애는 기술이다. 그러니까 '내가 나' 로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방법은 유지된다. 그런데 스캔해서 데이터화하니까 복제도 되는데, 뇌를 꼭 없애야만 했니! 라고 하면 좀 할 말이 없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 그것이 기억때문일까. 공각기동대에서는 '기억' 을 조작해 정체성을 조작하거나 만들어낸다. 여기서는 그런 무시무시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고, 또 그게 중요하지도 않다. 다만 우리가 전자화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권력에 저항하고 어떻게 해방되어야 하는가, 이것이 이 애니메이션이 던지는 질문이고, 마지막에는 좀 신에게 불경스럽게 그 해답을 던져준다.
나는 내 멋대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남들이 싫어하는 열린결말을 나는 매우 좋아한다. 해피엔딩이 뭐가 좋나, 어차피 해피엔딩 이후의 삶은 어차피 등짝에 가난한 아줌마 하나 들러붙은 인생이 대부분이다. 엔딩에서 키스하며 사랑을 확인해 봤자, 그 이후에는 잘 되면 애들 라이딩 하고 있고, 잘 안되면 서로 악독한 전여친, 악마같은 전남친이 될 뿐이다.
기술이 구속된 인간을 해방하더라도, 결국 우리에게는 어떤 종류의 '신' 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 진화해야하고, 진화란 곧 죽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