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리심장

친절한 천재도 여전히 사람을 힘들게 한다. 그것도 더.

by 제이니

넷플릭스에서 만든 일본드라마이다. 명목상의 주인공은 여성 드러머. 스토리는 어쩌다 만난 음악가들이 힘을 합쳐 멋진 밴드를 만드는 것.



나는 취미로 드럼을 치는데, 연주라기보다 그냥 두드리는 것에 가깝다. 오래전에 배웠지만 실력은 거의 없고, 내가 원하는 대로 팔다리만 움직여주면 만족하는 정도랄까. 드러머는 관객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맨 뒤에 있지만, 밴드에 있어서는 언제나 맨 앞에 있는 존재다. 잘 치면 티가 안나고, 잘 못치면 티가 확 나버리는 그런 좀 손해보는 포지션. 게다가 컴퓨터의 발전으로 가장 먼저 대체되는 포지션. 스트링계열과 달리 어중간한 사람보다 컴퓨터 음색이 훨씬 좋은 경우가 많다. 물론 끌고 당기면서 그루비하게 드럼을 치는 사람들은 당연히 따라가지 못하지만, 어느 수준까지는 가장 대체하기 쉽다고 해야하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악기. 일 수도 있지만, 리듬을 타고 만들어내면서 치다보면 사실 혼자 치는 드럼이 더 재미있을 때도 많다.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음악이 리듬이니까. 게다가 운전하면서도 손가락으로 드럼을 칠 수도 있다. 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그러지 않는 것이 좋지만.



여튼 드라마 자체는 스타일은 괜찮은데, 극의 진행이 그다지 매끄럽지 못하고 단편적이다. 솔직히 비주얼적인 측면에서도 평범하게 생긴 여주인공이 드럼을 연주할 때 땀흘리며 집중하는 모습 외에는 인상적인 씬들도 없다. 연주를 잘 하는 사람이 연주할 때는 못생긴 사람도 멋져보인다. 뭔가 일본판 '어거스트 러시' 를 보는 듯한 느낌. 음악 로드무비? 내 인생 최악의 영화중 하나가 '어거스트 러시' 이다. 개뜬금없는 엄마찾아 삼만리.


전반적인 드라마의 상태는 뭔가 작위적인 대사와 표정연기, 뭐랄까 여전히 중2병걸린 미친놈들이 잘 팔리는 일본드라마의 전형적인 클리셰라고 해야하나. 1편만 보면 흥미로웠으나, 뜬금없는 연애코드에 그 연애코드조차 어정쩡하다. 인물과 인물간의 갈등이나 그 원인들도 대개 시덥잖다. 다만 오프닝의 비주얼 아트는 꽤 아름답다. 1980년대 비디오아트나 비디오게임에 나오는, 혹은 그 시대에 8비트 컴퓨터로 그림을 그릴 때 나오는 얼라이어싱 가득한 선들과 비트 비주얼라이션의 절묘한 조화랄까.



일본 컨텐츠들의 소재나 아이디어는 매우 훌륭하다. 미국보다 더 잘 하는 것 같다. 게다가 소재에 대한 연구도 꽤 열심히 한 티들이 다 난다. 아이디어들은 언제나 좋은데, 극의 진행은 시청자를 우롱하는 것 같다. 감독이나 작가가 일부러 그렇게 만드는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의 작가들은 꽤 훌륭한 편이니까. 결국 이미 전에 써먹었던 흥행공식이랄까 감동코드를 경영자적 측면에서 우겨넣다보니 이런 작품들이 나오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그리고 여주인공이 작은 키로 맨날 슬로우모션으로 달리는데, 대체 왜 달리는 지 모르겠다.


최근 넷플릭스 덕에 소위 제작위원회들의 간섭이 적어져 '리키시' 나 '극악여왕' 같은 좋은 작품들이 나와서 일본 컨텐츠들도 좀 발전을 하나 싶었는데, 이 작품을 보고 약간 기대가 꺾였다. 일본은 역시 감동을 주는 것들보다는 꿈도 희망도 없는 삭막한 컨텐츠를 정말 잘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걸 인정을 안해주니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사람이 현세에 복을 못받지.



나도 나이가 드니 뭔가 가슴을 울리는 장면이 나오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는 한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었다. 오히려 우스꽝스럽고 불편할 뿐이다. 이런 신파는 그만 좀 했으면 한다. 현실에서도 툭하면 상대가 배려해줬다고 눈물 질질 짜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내가 인정하는 눈물은 오직 인물의 자녀가 죽었을 때이다. 하지만 요새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애들은 잘 안죽인다. 그러니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멋진 배우들과 좋은 주제를 가지고 또 한번 일본이 일본했다. 라고 정리할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그래도 여주인공이 드럼치며 보여준 표정연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음악이나 연주들은 들을만 하다. 극이 별로지 음악들은 훌륭하다. 그리고 남자 연주자중 하나의 성이 사카모토인데, 초반 극을 통과하는 시각적 주제가 빗물.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의 'Rain' 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장송의 프리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