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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수학 잘 하는 법

외우면 된다.

by 제이니

나는 고등학교 입학 할 때 "근의 공식" 을 모르는 것은 둘째치고, '근' 이 뭔지 몰라서 친구에게 물어봤던 적이 있다. 친구가 '해답' 이라고 해줘서, 아 해답을 근이라고 하는구나 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근과 방정식의 해답이 꼭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튼 그 수준의 수학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과목도 크게 잘 하지는 못했었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고, 그렇다고 친구가 있지도 않았다.


남들은 빠르면 초등학교 때 봤다던 수학의 정석 이라는 책을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누구한테 얼핏 듣고 그냥 사 봤는데, 처음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풀다보니, 별로 어렵지도 않고 어렵다 해도 잘 모르겠으면 별로 고민 안하고 해설을 보면서 이해했다. 아는 사람들이나 선생님들이 "바로 해답을 보지말고,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게 좋다" 라는 말은 남의 말 잘 안듣는 나는 가볍게 씹어버리고, 그냥 못풀겠으면 해설을 보고 이해하고, 다음문제로 계속 넘어갔다. 보다보니, 고등학교 수학은 어차피 중학교 수학에서 약간 개념만 더 넣은 재탕이었다. 나는 그냥 무식하게 그 책을 읽고 풀고, 이해안되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를 반복했다. 과외를 받은 적도 없고, 학원을 가지도 않았다. 학교 선생님들 수업은 애시당초 듣지도 않았다. 나는 남의 말 듣는게 싫었다.



세달정도 그 책만 붙들고 취미처럼 보다보니 지금의 공통수학부분 (1학년 과정) 을 다 끝냈는데, 정확히 이해 못해서 공식만 외운부분도 있고, 문제풀이도 완전한 것 같지 않아서, 수학의 정석중에 '실력' 편을 한권 사서 다시 한 한두달 정도 풀었는데, 물론 어려운문제가 나오면 바로 해설을 보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그리고 비슷하게 수2 (이과 수학) 두권을 1학년이 끝나기 전에 다 공부하고 풀었다. 물론 다른과목은 재미없어서 거의 안했고, 시험때는 교과서를 달달 외워서 해결했다. 선생님들도 솔직히 내용을 잘 모르는 것 같은 것들이 재미있게 들릴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교육은 초 후졌다. 쓰레기같은 교육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와 같이 공부하던, 정말 수학을 좋아하던 친구들과 벡터의 내적이나 외적의 의미같은걸 같이 얘기하다보면 참 즐거웠었다.



수학을 저따위로 공부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점수는 전교에서 거의 항상 1등이었는데 뭐 한국 시험이라는게 결국 다 무슨 유형이니 이딴 것에 노예가 되어있기 때문에, 많이 풀어보면 시험이 어려울것은 하나도 없다. 말했다시피 수학선생님들한테 배울 생각이 아예 없었으니, 수학시간에 그냥 딴짓을 많이 했는데, 물론 혼자 조용히 딴짓, 그러다가 한번 선생님이 열받았는지 교무실로 끌고가더니, 왜 그러냐는지는 안물어보고 지난 중간고사 성적표들을 주섬주섬 찾고서 내 이름을 찾아서 혼을 내려는 순간, 점수를 보더니 그냥 돌아가라길래 돌아온 적이 있다. 선생님이 되어가지고, 점수가 높다고 혼나야할 내가 혼나지 않는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혼나고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저런 선생님들을 한트럭은 알고있다.



한국에서 수학 점수를 높이고 싶으면 필요한것은 IQ 가 일단 100은 넘어야하고, 그 다음부터는 문제 종류를 많이, 그리고 빨리 풀면 된다. 그러니 한 문제가 안풀린다고 몇시간씩 끙끙댈 필요가 전혀 없고, 그냥 해설과 해답을 읽으면 된다. 그게 이해가 되면 그 유형의 문제는 언제든 풀 수 있다. 그게 전부이다.


하지만 수학을 잘 하고 싶으면, IQ 가 일단 140은 넘어야 하고, 그 다음부터는 문제 하나를 잡고 며칠씩 생각할 능력이 되어야 한다. 나는 머리가 나빠서 수학을 잘 하지는 못 했다. 대학교에서도 1등 했지만, 대학원부터는 줄곧 피어그룹에서 수학은 꼴찌였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것이 수학이다. 그것도 꽤 빨리 벽을 발견하게 된다. 물리학보다도 더 빨리. 내가 6개월동안 이해하지 못한 한 페이지를, 마치 도시락까먹듯이 이해하는 친구들을 보면, 좌절조차 의미 없어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수학을 잘 한다는 것과, 잘 써먹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하지만 수학점수를 잘 받는 것만으로는 절대 잘 써먹을 수 없다. 고등학교 벡터만 알아도 아름다운 현대의 3D 오픈월드 게임의 그래픽엔진을 만들 수 있지만, 행렬과 벡터 과목에서 시험을 만점 받았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수학 잘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한국에서 수학을 이용해 의미있는 제품을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학점수는 세계 최상위권인데, 수학 활용도는 거의 바닥을 기는 수준이다.



'근' 이 뭔지도 모르던 사람이 몇달만에 시험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것이 한국의 수학교육이다. 나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좀 삐뚤어진 사람이긴 하지만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수학을 잘 한다는 것은 수학점수가 높다는 것이고, 이것은 그냥 많은 문제를 그냥 이해하며 외우면 된다. 뭐 대단한 개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해가 안되면 일단 외웠다가 이해될 때까지 다시 풀면 그만이다. 물론 해설과 답을 보면서.


하지만,정말 수학을 잘 하고, 써먹고 싶다면, 해설과 답을 보고 나서 조금 더 생각해보면 된다. 요새는 AI 들이 수학개념들이 어디 쓰이는지 엄청나게 자세히 이야기 해 주니까 시간도 얼마 안걸린다. 나 때의 선생님들은 수학으로 뭘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다른 학문의 기초가 되고 어쩌구저쩌구..." 이딴 말만 앵무새처럼 떠들던 사람들 천지였으니까.


수학은 재미있는 학문이다. '근' 의 뜻조차 모르던 나도 수학은 재미있었다. 다만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때 어느 순간 그 아름다움을 수줍게 보여주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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