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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

배고픔이 즐거우면 모든게 행복하다

by 제이니

어릴때는 밥을 많이 먹어라 라고 이야기를 들어도 엄청 적게 먹었던 '살기위해 먹는' 상태였지만, 음식의 맛을 깨우치고 좋아하게 된 20대 이후에는 어째 점점 먹는 것이 손쉬운 낙이 된 '먹기위해 사는' 상태가 되어버렸던 것 같다. 돈이 없던 청년시기가 지나고 돈이 좀 많아지는 장년 중년에 접어들었을 때는 아예 인생의 낙 중 80% 정도가 맛있는 것 찾아먹으러 다니는 거 였기도 하다. 한해의 목표가 새로운 식당 200군데 가보기, 뭐 이런거였으니 말 다 했다. 그리고 목표는 매 해 달성했던 것 같다.


많이 먹게 되니 몸상태가 안좋아지고, 먹는 것을 포기하기 싫으니, 과도한 운동에 집착하게 된다. 일하기 전과 퇴근 후에 합쳐서 하루에 2~3시간씩 운동을 하니, 몸은 유지가 되었고 겉보기 건강은 매우 좋아졌다. 많이 먹고 많이 일하고 운동하니 인생의 퀄리티가 올라갔을 것 같지만, 몇년 뒤 부터 온갖 대사질환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결국 인간의 몸은 기계와 같아서, 많이 쓰면 많이 닳을 뿐인 것이다.



새로운 음식을 다 찾아먹다보면, 나중에는 잘 끓인 된장찌개에 밥한그릇이 제일 좋아진다. 온갖 화려한 음식을 먹어봐야 만족감이 전 만큼 크지도 않다. 어렸을 때 산과 들을 뛰어놀다가 초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배가 엄청 고팠다. 그리고 나서 먹던 짠 시골 된장찌개와 콩밥만큼 맛있었던 음식이 없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끓여주던 엄청 짠 된장찌개나 고추장찌개같은 것들은 지금으로 보면 음식도 아니지만, 하루종일 물가에서 춥고 배고파질때까지 놀다가 먹으면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 없다.


나는 요즘 배고프게 산다. 배가 너무 고파야 밥을 먹는다. 그렇지만 근육도 줄지 않고, 별로 어지럽지도 않다. 그렇게 한 지 꽤 되었음에도, 여전히 누가 셀러리 잘라 먹는 장면만 봐도 먹고 싶고 입에 침이 돈다. 항상 배고프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맛있어 보이고, 내가 가지고 있던 고집스러운 취향은 사라져 버린다.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것들에 비해 그렇게 더 좋아할 만한 이유가 별로 없었구나 싶어진다.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은 한나절의 배고픔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구나.



농업혁명 이전의 인류는 하루이틀 굶으면서 배고프다고 하던 것은 아니었다. 한나절 정도 굶어 배고팠던 것은 배고픔 축에 끼지도 못한다. 내가 겪는 배고픔이래 봤자 길어야 한나절의 배고픔인데, 이렇게 배고픔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 선조들에 대한 모욕에 가깝기는 하다. 그래서 우리의 배고픔은 즐거운 것이다. 굶어죽는 것에 대한 공포 없이 굶는, 일종의 익스트림 스포츠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배고픔에서도 우리가 수십년간 잊고 살았던 많은 삶의 즐거움과 의미를 깨닫게 해 준다.


과잉상태에서의 욕망이 인간의 감각을 무디어지게 하는 반면, 결핍에 의한 욕망은 인간의 감각을 극대화한다. 같은 것을 경험해도 훨씬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고, 다시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결핍을 찾아낼 수 있다. 결핍을 채워 나가는 과정으로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배고픔을 통해 우리는 결과와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다.


화려함은 과잉에서 나오지만, 혁신은 결핍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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