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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Oct 14. 2020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2020.08.23

어린 시절 몹시 총명하고, 똑똑한 아이였을 것 같은 미화되고 보정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문득, 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씀이 기억났다.

매사에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흐리멍텅하게 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람은 태어난 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인지, 흘러가는 대로 살아지는 삶을 이어오고 있다.


대학은 적당히 점수 맞춰서 큰 노력 없이 가기 쉬운 곳을 1지망으로 삼았다가. 집안 어른의 반대로 그 대학은 원서조차 쓰지 못하였고. 컴퓨터 관련 학과를 가서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겜돌이 인생 19년의 각오는 건축업을 하시던 부유하신 친척어르신에게 건축공학과를 지원했다는 어필과 함께 다른 사촌에 비해서 2배 많은 세뱃돈을 받은 걸로 마무리됐다.


다른 동기들은 최소한 이병헌이 주연한 내일은 사랑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건축과의 꿈을 꾸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 드라마를 열심히 봤음에도 불구하고 건축과가 나오는지도 모를 만큼 관심이 없었다. 없는 관심은 학과의 부적응으로 이어지고, 대학생의 방종이 뭔지 처음 맛본 나는 끝도 없이 게을러졌다.


19년 동안 겜돌이로 살아왔다면, 대학생에게 주어지는 그 많은 시간동안 꿈을 이루기 위해 뭔가를 할만도 한데, 처음 접한 술자리가 너무 좋았는지 군대 가기 전 2년간은 정신 못 차리고 해롱거리며 살았다.


남들한테는 나는 게임을 만드는 게 꿈이라는 부끄러운 망언을 뱉으며, 꿈이 있는 멋진 사람이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힌 비운의 나님이라는 캐릭터를 유지했다.  

그나마 도전해본 것이. 게임스쿨의 등록금 약 200만원을 마련해보려고 아르바이트를 알아본 것인데, 이력서를 써오라는 말에. 너무나 어려운 서류인 이력서를 작성하지 못하면서 포기하게 되었다.      

군대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는지 제대 후 학교 등록금 및 생활비는 다 내가 벌었지만, 모든 예비역이 그러하듯 나 역시 봉인해둔 진정한 나 자신을 되찾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름 나를 컨트롤 하는 방법 하나쯤은 생겼다는 것이다. 작심삼일을 이용하여, 3일마다 한 번씩 새로운 마음을 먹는 것이다. 간혹 잊고 일주일정도만 지나도, 한 달, 일 년이 훅 가버리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마흔 넘어 새사람이 되는 게 가능 하겠냐 만은 아버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오늘도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본다.

2020년 몇번째 결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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