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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Feb 17. 2021

장 재원과 쇼생크 탈출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간수와 협상을 통해 맥주를 얻어낸 주인공과 동료들이 맥주를 마시며 말한다.

“우린 마치 자유인처럼 앉아서 햇빛을 받으며 맥주를 마셨다. 마치 우리들의 집 지붕을 고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영화를 통해서 보통 간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지만, 저 장면을 볼 때 나는 저것이 정확히 어떤 기분인지 알 수가 있었다.


지금이야 술살이 내 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한때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나와 반대로 술 좋아하는 동생이 나가서 소주 한잔 하고 오자 그러면, 마지못해 나가서 소주 한잔 하고 오는 정도? 그 당시에 나는 술자리에 가면 술을 싫어하지만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하곤 했다. 너도 나도 그 얘기를 하면서 안주빨을 세우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수능 끝나고 처음 먹어본 술은 레몬소주였다. 달달한 레몬소주는 멋지게 생긴 임페리얼 양주병에 들어있었다. 소세지 야채볶음을 시켜놓고, 옆에 양주병을 세워놓으니 성공한 도시남자가 된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마디 하고 짠~. 무조건 원샷하고, 머리에 털면서 계속 잔을 비워갔다. 그 무렵 술자리는 항상 신났다. 공부만 하지 않으면 술이 없어도 신났는데, 술까지 있으니 그게 오죽할까?


신입생 환영식 때 마시는 술은 기선 제압용이었다. 선배가 한잔 하라고 할 때 소주잔이 아닌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따르는 그런 기백. 선배의 기선은 제압했지만, 그날 처음으로 필름이 끊겼고, 다음날 아침 선배들이 사주는 선지 해장국을 먹고 집에 돌아갔다. 다시는 술을 안 마실 거라는 지키지 못할 맹세를 하면서.


이런 내가 바뀐 것은 군대에서였다. 군대 두 단어만 들으면 뒤로 가기를 누르실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약간 두렵기는 하지만, 썰을 풀어본다.

건축과라서 시설대에 들어갔는데, 일당 300원에 온갖 노가다를 다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때리지는 않았지만 많은 갈굼이 있었던 우리 부대에서는 신병에게 물을 못 마시게 하는 전통이 있었다. 여름이라 그냥 서있기만 해도 목이 마른데, 노가다 현장에서 물을 못 마시게 하다니... 그 전통은 한 일 년쯤 뒤에 신병이 일하다가 탈수로 쓰러지면서 없어지긴 했지만. 군대란 참...


여튼 그날은 꽤 큰 현장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어 있었다. 신병이었던 나와 내 동기는 눈치 보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고참들보다 배는 힘들었다. 일이 웬만큼 마무리될 때쯤 중대장이 현장을 점검하러 왔다. 결과물이 만족스러웠는지, 수고했다며 차 트렁크에서 엄청 시원한 맥주캔(330ml)한 박스를 꺼냈다. 사람이 많아서 한 사람당 한 캔 정도씩만 돌아갔다. 고참들은 신이 나서 맥주캔을 까고 있는데, 나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물이나 음료수가 아닌 맥주를 가지고 온 중대장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손에 들린 맥주캔은 시원했고 날은 덥고 목이 말랐기에 원효대사 해골 물 마시는 심정으로 맥주캔을 깠다. 마지못해 한 모금 목에 넘기는데, 얼음처럼 시원한 그 갈색 액체가 내 목을 타고 들어가서 몸안의 모든 갈증 기를 없애주었고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처음으로 맥주를 원샷 한 나는 그때 알았다. 아, 이 맛에 맥주를 마시는구나. 사회였으면 한잔 더 마실수 있었겠지만, 거기서 더 마실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덥고 지친 최악의 컨디션에 엄청나게 시원한 맥주, 거기에 딱 아쉽게 주어진 한 캔. 인생 최고의 맥주였다.


쇼생크 탈출의 저 장면을 볼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유가 없는 상황에서 마시는 맥주 한잔. 그 한잔이 주는 해방감을. 그 후로 나는 그 한잔의 맛을 다시 찾기 위해서 맥주를 마신다.

아직은 살만 찌고 있지만,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현아. 오늘 저녁에 맥주 한잔 할게~ 아직 그 맛을 찾지 못했어.

노동이 빠졌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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