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합격한 후, 첫 오리엔테이션이 있다고 모이라는 말을 들었다. 청소년이 아니라 성인으로서의 첫 모임. 대학교 동기들, 선배들과의 첫 만남은 소개팅 이상으로 나를 떨리게 하였다. 면접 보러 가는 길에 보았던 회색의 살벌한 블록조 건물과 그 안에 자리 잡은 바이스가 달려있는 작업대들 때문에 선배라는 존재들이 더 무서웠던 거 같기도 하다. 그 안에서 막 집합을 할 것도 같고. 그래서인지,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정장을 입고 참석을 해야 할 거 같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 받은 세뱃돈을 탕진하게 만든 갈색 쓰리 버튼 정장과 굽이 높았던 금강제화 구두를 신고 학교에 갔다.
건축공학관에 들어가서 학생회 선배, 동기들과의 어색한 만남을 가졌다. 면접 보러 갔을 때 본 이뻤던 여자분이 안 보이는 걸 보니, 떨어졌거나 더 좋은 학교에 붙은 거 같았다. 남자 동기 35명에 여자 동기 5명. 고등학교 때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를 남녀 구성이었다.
강의실에서 어색하게 소개를 하고는, 전통의 라이벌 토목과 와의 축구시합이 있다고 운동장으로 나가자고 한다. 나는 정장에 구두를 신고 있는데, 축구라고? 지금이라면 정중히 거절을 했겠지만, 그때는 항상 축구 좋아하기도 할 때이고, 선배들에게도 잘 보이고 싶어서 열심히 뛰었다. 봄철의 운동장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약간 질척였고, 내 구두는 그 진창에서 열심히 뛰었기 때문에 처음의 광택은 사라지고, 진흙범벅이 되었다.
새 정장, 구두 지.못.미.
정장과 구두를 아끼지 않고 뛰어서 인지, 라이벌인 토목과를 이길 수 있었고, 그 승리감을 가지고 학교 옆에 주점으로 가게 되었다. 평상시에는 식당으로 쓰는 것이 분명한 그곳에는 4인 테이블마다 김치찌개와 밥, 그리고 소주가 세팅되어 있었다.
한참 운동을 끝마치고 배고픈 상태라 허겁지겁 밥을 먹고, 처음 마시는 소주는 짐승이 물 마시듯 들이부었다. 승리의 기운이 더해져서 술자리는 달아올랐고, 선배들도 술이 취했는지 처음에 시킨 김치찌개 이후로 안주를 시켜주지 않았다. 예전에 자기들은 숟가락을 거꾸로 해서 안주를 떠먹었다는 지들만의 영웅담을 얘기하면서... 우리는 그게 재미있고, 대학생활은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지 소주 한잔에 국물이 묻은 숟가락을 빨았고, 나는 그날 처음으로 필름이 끊겼다.
최후의 4인이라고 그 술자리에서 끝까지 남은 동기들이 있었는데, 나도 그중에 하나였다. 나의 경우에는 필름이 끊겨서 남은 건지 남겨진 건지 모를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남아서 아침에 선지 해장국이란 것도 먹어보고, 사우나도 가서 땀과 알콜을 빼면서 고등학생 때와는 여러 가지로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술 마시고 술 깨는 쓰레기 같은 삶이 대학생활이구나.
내 갈색 정장은 담배를 들고 가던 선배의 손과 만나 담배빵을 당하면서 그 날 이후로 옷장에서 나오지 못하였고, 구두는 겨우겨우 닦았지만, 축구를 열심히 한 탓인지 새 구두가 구제 구두가 되어버렸다. 이 추억도 이제 오래되어 낡았지만, 그 안에서는 반짝반짝한 새내기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