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시 눈 뜨면서 엄마의 화단에 앉아 잠 깨든 어릴 적부터 나는 꽃을 좋아했다.
5남매를 키우면서 층층시하 시집살이도 매섭게 하셨든 엄마의 꽃밭..
그 꽃밭을 보며 나는 자랐고 엄마의 꽃들은 참 예뻤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도 친구집 화단에 피어있는 꽃을 보고 있었으며
길 걷다 쪼그리고 앉아 돌틈에 핀 작은 꽃을 보느라 다리에 쥐가 나는 줄 몰랐었다.
어린 나도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든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 할 무렵에는 오전반 오후반이 있었는데 내겐 그렇게 등교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었다.
40여 년이 지난 동창회에서 어느 친구가 그때의 기억을 얘기하는데
"학교 마치고 오는데 너 혼자 학교 간다며 오고 있더라.
'와 이제 학교 오노!'
'너 이제 큰일 났다.'며 다들 시끌시끌 한 마디씩 하는데,
씩 웃으며 아무 말 없이 뒤돌아 집으로 가더라. 그 모습이 좀 충격이었어."
나의 성격이 그랬나 보다.
급한 것 같으면서 느긋하고 욕심이 많은 것 같으면서 무심하고 지난 일에 연연하지 않는...
가끔 생각한다.
유년시절의 이러한 성향들이 지금의 내가 살아올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결혼하고.. 아들들을 낳고..
그리고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린 것 같다.(학교 다닐 때 상을 꽤 많이 받았다)
만들기도 좋아했다.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 금방 익히고 잘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맏이였든 나는 동생들 공부를 가르치면서 컸었기에 가르치는 것도 잘했었다.
무엇을 할까? 깊은 고민을 할 무렵, 막내 여동생이 배우는 중이라며 도자기를 하나씩 가지고 왔었다.
여동생을 통해 배우는 곳을 알게 되었고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었다.
그때 동생도, 도자기선생님도, 모든 사람들이 그랬었다.
도자기로 돈 벌기는 힘들다고..
하지만 가진 것 많이 없고 다른 기술도 없었든 나는
그저 공방을 오가며 도자기를 만들었고..
배운 지 6개월 만에 문화센터에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수강생들의 작품을 구워주고..
내 작품도 구워오고..
그것만으로 생활이 안되었기에
많은 고민 끝에 공방을 열게 되었다.
때는 lmf를 지나면서 경기가 지독히 나쁜 시절이었다.
당시 인근 진례는 도자기 집성촌으로 150여 군데 공방이 있었는데
한해 절반이 문을 닫고 문을 여는 악순환이 계속되든 시절이었으니..
전공도 하지 않았고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얕은 실력을 이유로 누군가 말했었다.
망한다고.....
그것도 곧 망한다고.....
내 눈을 보며 내 얼굴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함께 밥 먹으며 거의 매일 친하게 어울려 놀았든 여고동창 내 친구였다.
세월 흘러...
우리 공방에서 시에서 주관하는 팜파티가 열리든 날..
인사말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열심히 도자기를 만들며 뚜벅뚜벅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곧 망한다는 얘기까지 들었지만
여기서 망하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 가족들은 어찌 되었까요?
나는 망할 수가 없었습니다.
망할 수 없어서 밤낮없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는 안 망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어떤가요?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겠지요?
격한 격려의 박수를 받으며 단상을 내려왔다.
그리고 그날 처음 내가 나를 뿌듯해했다.
공방을 하면서 생업으로 도자기를 만들었기에 끝없이 상품디자인을 했다.
다다익선..
다품종 소량생산..
백화점 박람회 축제장등 판매장에 나가면 사람들이 둘러싸고 줄을 지어 섰었다.
특이한 도자기..
예쁜 도자기..
이야깃거리 많은 도자기..
열심히 판매를 위한 디자인을 하다 보니
상품디자인이 되었고
그 상품이 작품이 되어 출품도 하게 되어 나가는 곳마다 상을 거머쥐고 돌아왔으며
나에게 상복이 터졌다고들 부러워했다. 어느 지자체에서는 대상을 받기도 했다.
"푸른 도시로 의 여행" 제목에 걸맞은 작품으로 대상을 받은 날..
스스로 칭찬하며 자축을 했다.
'수고했어 도비! 넌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무엇인가를 새롭게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커피 열풍이 전국을 휩쓸 때..
도자기와 카페를 목표로 커피공부를 했다.
커피생두 드립커피 모카포트 생소한 커피용어들을 접하며 드디어 커피를 볶기 시작했다.
건강에도 관심이 많았던 시기라서
검게 태운 커피가 아닌 낮은 온도에서 볶은 옅은 갈색의 건강한 커피 만들기에 도전하기도 했지.
직접 볶아서 신선하고
낮은 온도에서 볶아서 건강한 커피 특유의 신맛 단맛..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맛있어했지만..
입맛이 똥맛인 나도 깔끔한 맛, 목젖에서 올라오는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커피를 가스불에서 볶아보고 숯불에서도 볶다가 드디어 커피 볶는 가정용 로스트기도 덜컹 장만하기도 했다.
뭔가에 빠져있을 때 나는 그것에 투자하는 걸 망설이지 않는 성격이기도 했다.
코로나가 거의 끝나 갈 무렵..
부산 문화회관에 가곡의 밤을 보러 갔었다.
가끔은 삑사리도 나오는? 뭐지? 했는데 출연자들 대부분 70을 넘나드는 고령의 아마추어들이란 사회자의 설명에 다시 보니
아! 감동이었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을 부르는 소프라노 할머니의 고운 모습에 나의 10년 후를 생각하며, 나도 아름다운 드레스 입고 우아하게 저 무대에 서보자! 마음먹었다.
그때는 위드코로나전이라 배울 곳 없어서
악보 프린트하고 유튜브 들으면서 아침저녁 목청껏 소리 지르며, 성악가다운 소리는 아니지만.. 한곡 한곡 곡명 늘려가며 연습했다.
그 실력으로 친구와 터키 여행 중 호텔의 높은 발코니에서 이스탄불 시내를 향해 목청껏 생각나는 대로 가곡을 다 불렀었다.
내가 언제 이 하늘 아래서 우리말로 우리 가곡을 부를 수 있겠는가! 하면서.....
가곡은 아직도 혼자 부르기로 진행 중이라 별 진전이 없지만...
모르는 것보다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 하며 시시때때로 소리 지른다.
아아아아아~~
어느 날 후방추돌로 교통사고가 났었고
이유 없는 후유증과 통증의 스트레스로 건강에 자신이 없어지고 모든 일에 무기력해질 무렵 수영을 배우게 되었다.
수영을 하면서 건강은 물론 생활의 활력과 삶의 의욕을 되찾게 되었으며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그리고 내 나이 63세 되는 날..
나는 스스로 퇴직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 나를 위해 살아보자.
하고 싶은 것 다 해 보자!
무엇이 하고 싶을까?
생각하다 교육 박람회 때 어느 학교의 부스에 설치한 드럼세트!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와 자신 있게 드럼을 치든 어린 여학생의 멋진 모습을 기억해 내고
그래 드럼을 배워보자!
배우는 순간 바로 잊을 만큼 어렵지만..
익숙해지고 숙지하는 것에 젊은 나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급할게 뭐 있겠나!
배우는 것에 만족하며
언젠가 필인도 가볍게 소화하는 멋진 드러머가 될 날을 꿈꾸며 오늘도 스틱을 두드린다.
지난여름
유난히 비 많고 무더웠든 날들...
무엇인가 할 거리 찾다가
유튜브를 해 보기로 했다.
아들 찬스 써 가며 동영상 편집기 찾고
어설프게 동영상 찍고
편집하고 유튜브 올리고..
콘텐츠 찾는다며 그 뜨거운 날 햇살아래서 촬영하고 편집하며 여름이 어찌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심취했었다.
유튜브 영상을 만들다가 가만 생각해 본다.
앞으로 메타버스시대가 되면
가상의 공간에서 일상이 이루어질 시대가 온다 하니
내가 가꾼 정원과 내가 만든 도자기로
가상의 현실에서 도자기카페를 열고, 그곳에서 아리아를 부르며 가상의 손님을 맞고, 드럼을 치고, 커피를 내리고, 도자기를 빚고 있는 내 모습....
상상이 현실이 되는 그날!
생각만 해도 전율이 쫘악 흐르면서 마음이 마구 간질거린다.
이제 영어공부도 하고 있다.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의 공방을 찾는 사람들은 다문화 세계인이겠지?
가상의 세게에선 당연히 자동번역으로 의사소통되겠지만
"Well come."
"It's a nice day."
아리아로 노래하듯 소통할 수 있다면 내 인생 진짜 정말 완전 대박일 거야!
요즘 글쓰기공부도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구석구석 트레킹여행을 하고 싶어서 시간 날 때마다 여행을 다닌다.
글쓰기를 하면서 하는 여행은 또 다른 눈과 마음으로 그것을 보게 되더라는...
시간이 모자랄 만큼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요즘은 그 좋아하는 멍 때리는 시간도 없다.
이 모자라는 시간이 여유로워질 때면 또 다른 하고픈 것을 찾아내겠지?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