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를 그리는 것은 정말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카톡 카톡" 울림과 함께 열어 본 메시지 함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알림 글
그리고 도착한 립스틱 선물!
어느 날 느닷없이 예쁘게 포장되어 온 립스틱을 보면서
나는 아이들 어렸을 때가 생각났다.
때는 여름.. 음력 6월의 뜨거운 어느 날 내 생일이었다.
여름 땡볕에 얼마나 뛰어놀았는지
새까맣게 땟국물 쫄쫄 흘린 두 녀석이 멈칫멈칫 들어오더니 조그마한 뭔가를 건네준다.
"뭔데?"
'엄마 선물" 하면서 쑥스러운 듯 몸 꼬며 건넨 것은 립스틱이었다.
"어? 립스틱?"
"이걸 니들이 샀다고?"
"어떻게 이걸 살 생각을 했어?"
"니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이걸 샀어?"
"햇님아랑 같이 샀어요."
둘이 용돈 모아서 샀단다.
작은 아들은 말을 배우면서 형을 햇님 아라 불렀다.
어린 발음으로 '형님아' 부르는 소리에 아이친구 엄마들은 큰아들을 햇님으로 알고 이름을 참 예쁘게 지었네 하며 같이 햇님이라 불렀다 한다.
그렇게 아들들에게 받은 립스틱의 포장을 열었는데 아직 한 번도 발라본 적 없는 봄처럼 화사한 체리빛의 핑크립스틱이었다.
"와 예쁘다."
"아들들이 사 온 립스틱을 바르니 엄마가 너무 예뻐졌네."
"어떻게 이렇게 예쁜 색으로 골랐을까?" 했더니
두 녀석이 싱글거리며 손짓하며 입 모아 설명하는데
"화장품 가게의 아줌마께서 엄마는 어떻게 생기셨니?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 엄마는 예뻐요.
우리 엄마는 나이 많은데요. 그래도 젊어요."
뜨든뜨듬 말하는 두 문장의 조합으로
"그럼 이 색이 엄마에게 어울리겠네?" 하며 골라주셨단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제일 예쁜 사람
아이들에게 엄마는 언제나 젊은 사람
그때 아들들은 초등학교1학년 3학년이었고 나는 우리 아이들만 엄마를 그리 생각하는 줄 알았고 철없는 엄마는 본인이 정말 예쁜 엄마인 줄 알았다.
아이들이 중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 시골공방으로 이사 와서 살기 시작했고..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 하게 된 이사로 공방 한편에 잠자리를 만들고 둥근 식탁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밥을 먹기도 했다.
그럴 때면
"우리 캠핑 온 것 같아요." 하며
낯설고 어설픈 상황에서도 개구쟁이들처럼 장난치며 재미있어하기도 했다.
차근차근 생활은 갖춰져 갔고
해마다 아들들은 나 모르게 생일축하 준비를 했다..
두 녀석이 서로 망 봐주며 엄마 모르게 살금살금 케이크를 나르고 꽃을 나르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평소와 다른 몸짓과 행동으로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체 못 본 체하면서 두 녀석이 벌이고 있는 어설픈 짓거리를 창문 너머 곁눈질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숨겨둔 케이크를 꺼내와 불을 붙이며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줄 때 감동받은 듯 연기도 했었다.(모른 체한 것은 연기, 가슴 찡한 감동은 진짜! )
무슨 일이든 두 녀석은 껌딱지였다.
아니 동생이 형의 껌딱지였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형이 뭐라 하면 무조건 따라 하고 같이 붙어 다녔으니...
대학을 갈 무렵 큰 아들이 독립해 나가자
작은 아들은 외로움인지 허전함인지 형이 없는 빈 공간에서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보였다.
항상 모든 것을 형 따라 하는 녀석에게 갑자기 형이라는 방향키가 없어졌으니..
큰아이가 독립해 나가고 처음으로 맞이한 내 생일 아침이었다.
일어나니 작은아들은 보이지 않고
밥을 차려놓고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아들은 가끔 내가 없는 공방으로 내려가서 혼자만의 뭔가를 하기도 했기에 또 그러려니 하면서 어서 밥 먹으러 오라 재촉했다.
"엄마 다 돼 가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밥 먹고 해야 할 일들 때문에 마음이 바빴고,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할 무렵
문을 열고 아들이 손을 둬로 감추고 들어온다,
그러면서
"엄마선물" 하며 삐죽 내 민 그것은 돌돌 만 종이였고
생각지도 못했든 행동에 펴본 그것은 커다란 A3용지에 그린 시화와
삐뚤빼뚤 작은 하트로 가득 채운 '엄마사랑해요' 글을 쓴 편지였다.
가슴이 찡했다.
생일 선물을 살 돈이 없었든 아들은 얼마나 고민했을까?
저 시화 한 장을 그리기 위해 시를 찾고, 엄마 몰래 새벽같이 일어나 공방으로 내려가서 그것을 써 내려갈 때 그 내용을 다 이해했을까마는
그 긴 시를 행마다 색연필 바꿔가며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것도 모자란 마음으로
작은 하트를 빼곡히 그려 넣은 편지를 썼을 생각 하니..
일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화가 나려든 마음이 너무 미안했다.
풍족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안쓰럽고
그럼에도 예쁜 마음으로 커 줌도 고마우면서 가슴 아팠다.
그날부터 심순덕 님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와 하트 가득한 "엄마 사랑해요"는
빛이 바래도록 공방 한가운데 벽을 차지하고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선물을 할 생각을 했어?"
"생일선물 사고 싶었는데 돈이 없었어요."
"미역국을 끓이고 싶었는데.... 제가 더 크면 꼭 배워서 미역국 맛있게 끓여드릴게요"
"그래 꼭 끓여줘 엄마가 기다릴게!"
"근데요 저 하트 그리는데 진짜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손가락 엄청 아팠어요."
"어휴 그랬어?"
천천히 밥 먹으며 이야기는 두런두런 이어졌다.
아이들은 커서 어른이 되었고
이러저러한 날이면 또 이러저러한 선물을 준다.
선물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기쁘고 즐겁지만
아이들이 커면서 해 준 그 선물들만큼 감동스러울까?!
아이들이 자라서 독립해 나간 후..
자식과 부모가 사는 길이 서로 달라서
서운함과 배신감이 드는 상황이 생길 때 있었지만..
가슴 깊숙이 넣어둔 기억의 창고 속에서 어린 그것들을 꺼내는 순간,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충분히..
그리고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용서도 됐다.
가끔 그 기억의 창고를 들여다 봍때면 아이들이 나에게 준 많은 선물 속에서
좀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음이 더 많이 안아주지 못했음이 보여 마음이 아팠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