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자작가 JaJaKa
Jan 26. 2023
얼마 전 예금이자가 5%를 넘어섰다는 말에 조금씩 흩어져 있는 돈을 모아 정기예금으로 묶기 위해 모처럼 아내와 시간을 내어 은행에 갔다.
최근 들어 은행을 방문할 일이 많지 않다. 은행에 한번 가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은행에 볼 일을 보러 갈 때면 1시간쯤은 기다릴 생각으로 간다.
우리 차례가 되어 은행 창구로 향했다. 컴퓨터를 보고 있던 직원에게 정기예금을 하려고 왔다고 하니 반기는 얼굴이다. 얼마를 할 건지, 어느 기간만큼 할 건지를 물으며 이율을 설명해 주었다.
은행에다가 한 2년? 3년? 넣어 둘 예정인데요,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행에서는 1년짜리 정기예금만 가능하다고 한다. 앞으로 금리가 내릴 것으로 예측을 해서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고정금리로 된 정기예금은 없다고 하고는 연계된 보험저축을 권하면서 지금부터 할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처음에는 당사자인 나를 보면서 얘기하던 직원이 어느새 아내 쪽으로 눈빛을 고정하며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얘기를 해서 가뜩이나 잘 들리지가 않는데 은행 직원의 목소리조차 나에게는 작게 들려서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옆에 앉은 아내에게, 뭐래? 복리? 어쩌고저쩌고 한 거 같은데. 그러니까 이자를 얼마나 준다는 거야?
어느 순간 당사자인 나를 빼고 두 사람의 얘기가 오고 갔다. 종이를 내밀며 설명하는 직원의 말에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했고 직원은 답하고...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마스크 위로 보이는 직원의 눈이 예쁘다고 생각하며 쳐다보다가 이내 복사기 뒤편의 벽을 바라보았다. 이번 주에는 무슨 글을 올려야 하나?를 생각하면서.
그러다 내 뒤편을 쳐다보니 기다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꽤 많이 늘어나 있었다.
잠시 뒤 직원이 두 분이서 상의를 하시고 결정을 하라고 했는데 아내는 이미 결정을 했나 보다.
나에게...
“이걸로 해. 이게 이율이 좋네.”
“응? 그냥 1년짜리 정기예금으로 하면 안 돼?”
“이걸로 해. 여기에 넣으면 이자 차이가 얼마인지 알아? 지금 한 푼이라도 아쉬운 판국에.”
나는 어리버리했다. 직원이 형광펜으로 표시한 종이 뭉치를 받아 필요한 부분마다 체크를 하고 서명을 했다. 그런데 마치 나이가 많은 사람을 대하듯 아내는 여기에다 표시하고 여기는 쓰여 있는 글씨 그대로 설명, 이렇게 쓰고 여기는 잘 들었다,라고 쓰라는 등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속으로,
‘아니, 지금 나를 딸과 함께 온 아버지 취급 하는 거야 뭐야?
나도 형광펜으로 표시된 거 보이고 그곳만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 알아.’
잘 써지지도 않는 볼펜을 들고 낑낑대며 하는 모습을 본 직원이 나에게,
“곧 끝나요. 이게 마지막이니깐 조금만 힘내세요.”
나는 속으로,
‘이보세요, 제 나이 얼마 되지 않아요. 어르신에게 말하듯 하지 마세요.’
그런데 외투도 벗고 있는 나의 이마에서 계속 땀이 났다.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보니 직원이나 아내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데 왜 나만 땀이 나는 걸까? 긴장한 것도 아닌데...
한참을 앉아 있다가 이제 다 되었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은행 밖으로 나오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별 거 한 것도 없는데 진이 다 빠진 것만 같았다. 어디라도 들어가서 커피라도 마시며 잠시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아내는 싱글벙글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급 피곤해지는 걸까?
은행만 오면 왜 이리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이러다 은행에서 길을 잃고 출구를 못 찾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