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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Jun 11. 2023

첫 단편소설의 감상평은

2019년 9월 초 우리나라를 향해 올라오는 태풍 링링의 크기나 진행방향을 알고자 나는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였다. 역대 가을 태풍이 우리나라에 많은 피해를 입혔고 이번 태풍은 서울 및 수도권 쪽으로 방향을 잡고 올라온다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태풍이 몰아치던 주말 아침에 긴급재난메시지가 울렸다. 서울에 가장 근접하리라고 예상되는 시각에 외출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창밖을 통해 바라본 하늘은 뭔가 거대한 것이 몰려오는 것처럼 잿빛이었고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태풍이 점점 다가올수록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휘청휘청거렸고 굳게 닫힌 창문너머로 거세게 부는 바람소리가 공포스럽게 들렸다.    

  

볼일을 보러 잠시 집 앞에 나갔다가 엄청나게 불어대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제대로 세워 놓지 않은 입간판들이 거센 바람에 흔들리며 금방이라도 흉기가 되어 날아다닐 것처럼 위험천만하게 보였다. 왜 외출을 자제하라는 긴급재난메시지가 왔는지 알 것 같았다.  

    

태풍이 서울과 수도권을 지나 위쪽으로 올라갔다는 기사를 읽었던 오후에도 여전히 바람은 불고 있었지만 바람의 세기가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흔들리는 나무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내일이면 태풍이 언제 지나갔냐는 듯이 청명하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북상하는 태풍으로 거세게 바람이 불던 주말 오후 아내는 내가 첫 번째로 완성한 단편소설을 읽었다. 본인 말로는 날씨 때문에 딱히 할 것도 없고 조용히 집중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의 자신감은 얼마 가지 못했다.      


내가 생각한 시간보다 오랫동안 글을 읽고 있는 아내를 보러 잠시 서재에 고개를 들이밀었을 때 나는 내가 쓴 소설을 열심히 집중해서 읽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아닌 모니터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내를 보았다.


나는 그 모습에 적잖이 실망감을 느꼈다. 얼마나 재미가 없고 형편이 없었으면 얼마 되지도 않는 고작 26페이지 밖에 안 되는 나의 첫 단편소설을 읽으며 졸고 있는지......      


아내의 졸고 있는 모습은 읽고 나서 재미없다고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이보다 더 잘 쓸 수 있지 않냐고 말하는 것보다 나에게 더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남편이 완성한 첫 단편소설 보며 졸고 있다니......     


아내의 졸고 있는 모습에 적잖이 실망한 나는 조용히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태풍으로 인해 거세게 휘몰아치는 창밖의 풍경처럼 내 안에도 섭섭하고 서운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런 줄 모르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아내는 단편소설을 다 읽었다고 나에게 감상평을 말하려고 거실에 나왔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언성을 높였다.      


어떻게 졸 수가 있냐고. 졸리면 차라리 읽지 말지 왜 굳이 읽겠다고 해놓고서는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냐고.

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처음으로 완성한 소설이고 페이지도 얼마 되지 않는데 설사 내가 쓴 소설이 지루하고 재미없더라도 조는 건 정말 보여주지 말았어야 할 모습이 아니었냐고.     

 

나는 아내에게 화를 내며 나의 섭섭한 감정을 쏟아냈다. 결국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앉아 있던 그녀의 울음보를 터트리고야 말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반성을 했다. 조금 더 너그러이 생각을 했어도 됐는데 뭐가 그리 섭섭하고 서운하다고 화를 냈는지. 내가 쓴 글이니 만큼 기대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을 읽는 상대방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재미없거나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을 텐데. 아내가 졸고 있는 것을 봤더라도 못 본 척해주어도 되었을 텐데.

      

그날 저녁 기분이 풀어진 우리 두 사람은 나의 단편소설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그런 주제를 선택해서 그런 스토리를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녀가 물었고 나는 대답을 했다.

아내는 내가 쓴 에세이만 읽다가 처음으로 단편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다소 낯설어했고 조금은 혼란스러워했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며 수고했다고 다음 글이 기다려진다는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다음에는 더 재미있게 쓰도록 노력할 테니 당신도 글을 읽다가 조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 줘. 알았지?


그대 덕분에, 그대를 위해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는 거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고마워!     




     

지금으로부터 거의 4년 전인 2019년 가을에 쓴 글입니다.

예전에 썼던 글을 꺼내어 다시 읽어보니 최근에 쓴 글과는 또 다른 느낌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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