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남자_4화(완결)
2020년 8월에 쓴 단편소설입니다
by 자자카 JaJaKa Mar 9. 2023
“이렇게 비가 오는데 어떻게 오셨어요?”
그가 민주의 말에 평상시의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우산을 쓰고 뚜벅뚜벅 걸어서 왔습니다.”
민주는 그의 말에 순간 얼음이 된 것처럼 멍했다가 정확히 3초 뒤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하니 더 웃기게 들렸다. 민주가 주방에서 키친타월을 가지고 와서 그에게 얼굴이나 젖은 바지 밑단을 닦으라고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그는 그 말을 하고는 대충 쓱쓱 하고 물기는 닦아내고 평상시처럼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라고 말했다.
이 빗속을 뚫고 커피를 마시러 오다니. 그가 달리 보이던 순간이었다.
그는 늘 앉는 자리에 앉아 커피를 홀짝 거리며 마시다가 혼잣말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역시 커피는 비 오는 날 마시는 커피가 맛있어.”
그 말에 민주는 그가 커피의 맛보다는 커피를 마시는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커피를 몇 모금 마신 그는 평상시처럼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고 민주는 그가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잔잔한 음악으로 바꾸어 주었다.
비는 그 후에도 약 1시간 가까이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퍼부었고 그녀의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도 없었다. 그는 조용히 책을 읽었고 민주는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며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밖은 비록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있는 카페 안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팝송이 비 오는 날의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마치 두 사람이 있는 가게 안과 밖이 다른 세상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세차게 내리던 빗방울이 잦아들기 시작했고 어느덧 내리던 비가 멈추었다. 비가 멈추니 길거리에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비가 그치기만을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비가 그치자 그도 책을 가방에 집어넣고 일어나 다 마신 잔을 반납했다. 잘 마셨다고 말하며 나가는 그에게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을 한 민주는 축축하게 젖은 그의 바지 밑단과 신발에 계속해서 눈이 갔다.
그날부터인가 책 읽는 남자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민주는 가게 문을 닫고 퇴근을 하는 길에 집으로 향하다가 그녀도 모르게 발걸음을 돌려서 맛있다고 알려진 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드릴까요?”
인상 좋아 보이는 직원의 말에 민주가 진열장을 쭉 훑어보다가 물었다.
“뭐가 맛있나요?”
“파는 입장에서는 다 맛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네요. 그것보다 어떤 맛을 좋아하시는지 말씀을 해주시면 제가 권해드리기가 좀 더 수월할 것 같은데요.”
“커피에다가 같이 먹을 건데 음...... 뭐가 좋을까요?”
“커피에다가는 다 잘 어울려요. 그 어떤 것을 선택해도 맛있을 거예요. 커피의 쓴 맛과 마카롱의 단 맛이 아주 잘 어울리거든요.”
“그런가요? 그럼 골고루 하나씩 10개만 포장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돈을 계산하고 포장된 마카롱 상자를 들고 나오는 민주의 등 뒤로 직원의 말이 들렸다.
“맛있게 드세요. 또 오시구요.”
민주는 손에 든 마카롱 상자를 바라보며 집을 향해 걸어갔다. 마치 경미가 조언한 대로 마카롱을 산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렸지만 경미의 말을 따라서 산 것은 아니다. 그냥 그녀가 갑자기 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산 거였다.
다음날인 일요일 민주는 평상시처럼 늘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해서 가게 문을 열고 청소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스피커에서는 그녀가 좋아하는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녀는 가게 문을 활짝 열고서 시원한 바깥바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끔 했다. 청소를 마친 그녀가 오늘의 첫 커피를 만들어 의자에 앉아 커피 향을 맡으며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셨다. 오늘 그녀의 카페를 찾은 손님들이 맛볼 커피는 또 어떤 맛으로 기억이 될까.
그녀는 커피를 다 마신 후 컵을 싱크대에다가 가져다 놓은 후 자연스레 냉장고 쪽으로 시선이 갔다. 아침에 그녀가 출근을 하면서 가지고 온 마카롱 상자가 냉장고 안에 잘 있는지 확인해 보려다가 이내 옅은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돌렸다.
가게 출입문을 닫으면서 바라본 하늘은 참 맑고 푸르렀다.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이 민주의 눈에 보였다. 화창한 날씨만큼 그녀의 기분도, 오늘의 매상도 화창할 것만 같았다.
민주가 가게의 출입문을 닫고 주방으로 걸어가다가 벽에 걸린 거울에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조금 부은 자신의 눈이 비치자 거울 앞으로 한발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젯밤은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침대에서 뒤척거렸다. 괜히 마카롱을 산 것은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일어나면서 잠을 설쳤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살짝 부어 있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만히 만져보던 민주는 얼굴을 톡톡하고 치고는 다시 일에 집중하자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자신을 향해 씨익, 하고 웃어주었다.
오전에 몇 명의 손님이 커피를 사러 왔다가 갔고 민주는 또 다른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며 시계를 쳐다보았다. 12시를 조금 지나자 조금 있으면 책 읽는 남자가 올 생각을 하니 이제는 그가 주말에 오지 않으면 이상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의자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그가 들어오고 있었다. 남색면바지에 카키색 폴로셔츠를 입고서 가방을 멘 채로 민주 앞으로 걸어오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늘 그렇듯 그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계산을 하고 나자 늘 그가 앉는 그 카운터 자리에 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커피가 나오기 전 가만히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던 그에게 민주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건넸다.
“맛있게 드세요.”
민주가 건넨 커피를 한 모금 맛보던 그가 가방에서 오늘 읽을 책을 꺼내고 있을 때 민주가 냉장고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어 그 안에 들어있던 마카롱 세 개를 접시에다가 담아 포크와 함께 그의 앞에 내밀었다.
“저, 이거...... 아는 사람한테 선물 받은 건데요. 혼자 먹기에 양이 많아서...... 커피랑 함께 한번 드셔보세요. 커피랑 먹으면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가 조금은 놀란 눈으로 민주가 내밀고 있는 접시를 받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갈등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접시를 건네받았다.
“마카롱이네요. 맛있어 보이기는 한데......”
“드셔보세요. 혼자 먹기에 너무 많아서 그래요.”
그가 마카롱이 담긴 접시를 내려놓으며 민주를 쳐다보았다.
“선물 받으신 것을 제가 먹어도 될지.”
“괜찮으니 드셔보세요. 제가 먹어보니 맛이 괜찮더라고요.”
“네에, 그럼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접시 위에 놓인 포크 대신에 손가락으로 마카롱을 한 개 집어든 후에 눈으로 살짝 살펴보더니 이내 입에 집어넣었다. 오물오물 씹던 그가 갑자기 환하게 웃으면서 민주에게 말했다.
“정말 너무 맛있네요.”
민주는 그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녀의 가게를 온 이후에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이었던 그가 그렇게나 환하게 웃다니.
그런데 그가 이를 드러내놓고 웃는데 그의 앞니 위아래에 큼지막한 고춧가루가 한 개씩 끼어 있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점심으로 무엇을 먹고 왔길래 작은 것도 아니고 굵고 커다란 고춧가루 두 개가 그의 앞니에서 그가 웃을 때마다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다른 마카롱을 하나 더 집어서 먹더니 그것도 너무 맛있다며 웃는데 다시금 그 큼지막한 고춧가루가 낀 앞니가 그녀의 눈앞에 드러났다.
민주는 갑자기 무언가에 놀란 듯 화들짝 고개를 돌렸다. 커피머신 앞으로 간 민주가 아무리 고개를 흔들어도 그녀의 눈앞에 그의 앞니 사이에 낀 큼지막한 고춧가루가 선명하게 보일 뿐이었다.
민주는 문득 한 친구가 말해주었던 일화가 생각이 났다. 그녀의 친구가 한 남자와 사귀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남자가 밥을 먹고 난 후에 일부러 하지는 않았겠지만 큰 소리로 트림을 끄윽 하고 난 뒤에 이어서 딸려오던 그 냄새, 위장으로부터 올라온 그 역겨운 냄새를 맡고 나자 일순간 그 남자에 대한 모든 정나미가 다 떨어져 나갔다고 했다. 그녀의 친구는 그 후에 그 남자와 헤어졌다고 했다. 그의 얼굴만 봐도 그 역겨운 냄새가 계속해서 어딘가에서 나는 것 같았고 그런 남자와 키스를 하고 스킨십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가 없더라는 거였다.
민주가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보았을 때 그는 마지막 남은 마카롱을 손으로 집어 그의 입에다가 넣고 있었다. 민주와 눈이 마주친 그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맛있다고 또다시 이를 들어 내놓고 웃었다. 다시 민주의 눈에 그의 앞니 위쪽과 아래쪽 사이에 낀 큼지막한 고춧가루 두 개가 보였다. 민주는 못 볼 걸 보았다는 듯이 얼른 고개를 다시 돌렸다. 그는 민주의 마음이 어떤지도 모른 채 여전히 마카롱을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그녀는 그 순간 느꼈다. 그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던 것들이 점점 작아지고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을. 그에 대해 알고 싶었던 마음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민주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눈 녹듯이 사라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마카롱을 다 먹었는지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면서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민주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면 왠지 그의 앞니에 낀 커다란 고춧가루만 보일 것 같았다.
민주는 왠지 앞으로 주말이 오더라도 이제는 가게 출입문을 보며 책 읽는 남자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기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의 등 뒤에서는 책장을 넘기며 연신 호호 불면서 커피를 마시는 소리가 여전히 들리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