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통유리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그의 손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 잔이 들려있다
입천장이 델까 봐 방금 끓인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면서 천천히 커피를 들이켜고는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본다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나뭇가지들
사선으로 내리는 비 때문에 우산을 써도 내리는 비를 막기 역부족으로 보이는 기상상황
아침이지만 저녁처럼 어두컴컴한 하늘
그의 귓가에 타닥타닥 빗방울이 창문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세차게 비가 내리는지 창밖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다
폭우
그래 이런 비를 폭우라 부르지?
때마침 적절한 단어를 생각해 낸 그가 만족스러운 듯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그의 등 뒤에서 들리는 클래식 음악 소리
이게 어느 음악가가 작곡한 거였더라?
고상한 척, 세련된 척,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있는 척하기 위해 틀어놓은 것인데
정작 음악가가 누군지 모르다니
브람스? 모차르트? 바흐? 베토벤? 쇼팽?
이러다가 한 번쯤 들어본 음악가들의 이름이 다 나올 것만 같다
참, 누가 ‘브람스를 아시나요......’하고 물어본 것 같은데
누가 물어봤더라
내 주위에 있는 친구들에게 브람스를 아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새로 생긴 브런치 카페야?
브람스? 초코 쿠키 이름 같다, 아하하하~
그게 뭔지 나 알아, 그거 수입 맥주 이름이지?
이 무식한 것들,
이 말을 하고 나니 어째 자기 자신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지
그가 쑥스러운 듯 으허허허, 하고 어색한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난 듯 그가 낮게 외친다
‘브람스를 아시나요.......’
책 제목이잖아?
맞아, 책 제목이었어
그런데 무슨 내용이었더라?
제목이 브람스니깐 클래식 음악에 관한 내용이었겠지
스스로 대견한 듯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이 피아노 선율
아, 감미롭다
아마 G장조 일거야
F인가? 아님 D?
아무렴 어때
그때 갑자기 고요를 깨는 소리가 들린다
띠로리리리 띠로리리리
갑작스럽게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에 그가 소스라치게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어차피 뜨나 감나 비슷하지만
폭우가 쏟아지는 날 이른 아침에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왠지 느낌이......
그가 천천히 소파로 향한다
핸드폰 액정화면에 모르는 번호인지 이름이 떠 있지가 않다
스팸전화구나, 하고 무시하려는 그때
상대방 번호의 마지막 네 자리의 숫자에 시선이 멈춘다
1005
이 끝 번호는 민선의 번호였던 것 같은데
그가 고개를 흔든다
그럴 리가 없어
마지막으로 연락한 지 20년이나 지난 민선에게 연락이 올 리가 없었다
또한 민선이가 그의 핸드폰 번호를 알 리가 없을 텐데
띠로리리리 띠로리리리
끊어지지 않을 듯 계속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울리던 벨소리가 멈추었다
벨소리가 멈추자 거실에는 세차게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와 누가 작곡했는지 모르는 클래식 음악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의 귀에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이명 현상처럼 삐이이이, 하는 소리만 들린다
마치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