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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Jun 20. 2023

번지점프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이면 우리나라에 아직 번지점프가 들어오기 전이 아닐까 싶다. 그 해에 나는 뉴질랜드의 남섬에 위치한 퀸스타운이라는 도시에서 번지점프를 했다.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에 위치한 뉴질랜드의 8월은 겨울이었다. 왜 그렇게 번지점프가 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20대의 패기와 도전정신이 나를 퀸스타운으로 이끈 게 아닐까 싶다.     


나는 퀸스타운 시내의 한 예약센터 바깥에 붙어 있는 43미터 번지점프와 기념 티셔츠, 번지 점프하는 장면을 찍은 비디오테이프 이렇게 패키지로 해서 당시 뉴질랜드 달러로 100달러짜리 패키지를 예약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비어 있는 한 카운터에서 예약을 하게 되었고 정확하게 100불을 지불했다. 내가 알기로는 위의 패키지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것은 다음 날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도시로 들어오는 초입에 있는 강의 다리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 번지점프를 예약한 사람들을 태운 지프차는 이상하게도 산을 향해 달려갔다.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가는 지프차 안에서 나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잘 못 탄 거 아닐까? 이 차가 아닌 다른 차를 탔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나를 도대체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그렇게 30분 가까이 달려 도착을 한 곳은 산 정상 부근이었다. 운전사는 군데군데 눈이 덮인 그곳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차에서 내려 둘러보니 계곡과 계곡 사이에 아주 긴 다리가 보였고 그 다리의 중간쯤에 번지점프대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왜 내가 여기로 왔는지 이해를 못 한 채 서 있다가 얼른얼른 내린 사람 순서대로 체중계에 올라 몸무게를 재라는 말에 얼떨결에 몸무게를 쟀고 직원 중의 한 명이 내 팔뚝에다가 펜으로 내 몸무게를 적었다.     


나는 어리벙벙했다. 내가 번지점프를 뛰어야 할 곳은 43미터가 아니라 가장 긴 번지점프대가 있는 산 정상으로 102미터라고 했다. 102미터?

그때도 나는 내가 줄을 잘못 선 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 설명을 해주었는데도 내가 알아듣지 못하고 번지점프라는 말에 그냥 예약을 했었나 보다. 100달러라는 말에 가격 얘기만 듣고 아무 생각 없이 예약신청을 한 것이었다.      


나는 내 차례가 가까워오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멋진 자세로 뛰어내릴 생각으로 손을 앞으로 뻗고 다이빙하는 자세를 연습했다. 앞사람들이 한 사람씩 뛰어내리면서 질러대는 비명소리에 나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저 사람들이 뛰어내리면 내 시선은 자동으로 계곡 사이에 흐르는 물 위로 반동으로 다시 튀어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저 입을 헤벌리고 바라볼 뿐이었다. 사람들이 질러대는 비명소리가 계곡 사이에서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내 앞의 여자분이 뛰어내리고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뒤에서 멋지게 뛰어내리는 연습을 한 나는 발에다가 로프를 묶고 번지점프대 앞으로 조금씩 이동을 했다. 마지막 발판 앞에 서자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고 저 밑에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작게 보이던지. 흰 눈에 덮인 산자락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졌다.   

   

옆에서 나를 붙잡고 있는 직원이 나에게 뭐라고 말을 걸었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가 내 어깨를 툭 치며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 쪽을 보고 손을 흔들라고 해서 손을 흔들었다. 아마 그곳이 비디오를 찍는 장소였나 보다. 그리고 나에게 하이 맘, 이라고 하라고 해서 나도 얼떨결에 하이 맘이라고 말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 이후에 그 직원이 숫자를 셌다. 쓰리, 투, 원... 그리고 나는 제로를 기다렸다. 제로라는 말이 나오면 아까 뒤에서 연습을 한 대로 멋지게 뛰어내리려고 했다. 제로를 왜 안 하는지 궁금해서 그를 살짝 돌아봤을 때 그가 내 등을 툭하고 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대로 떨어졌다. 멋지게 다이빙을 한 것이 아니라 양손을 버둥버둥 거리며 어어어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계곡으로 떨어졌다. 그건 번지점프가 아니라 떠밀려 떨어진 것이었다. 반동으로 다시 튀어 오르자 그때야 정신을 차린 나는 내 얼굴을 덮은 당시에 유행이었던 검은색 가죽점퍼를 손으로 잡아당기고 주위의 풍경과 공중에 떠 있는 자유를 만끽했다. 아주 잠깐 동안.     


다른 사람들이 마저 번지점프를 하고 나서 우리는 처음에 타고 온 지프차를 타고 예약센터 건물 앞에서 내렸다.

나는 진이 다 빠진 상태여서 얼른 패키지에 포함된 기념 티셔츠와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 숙소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돈을 더 내란다. 내가 따져 묻자 직원이 말하기를 내가 뛴 번지점프는 높이가 높아서 가격이 비싼 거라고 했다. 네가 말하는 패키지는 저 현관문 앞에 있는 다른 카운터라고 했다.   

  

이런, 젠장. 내가 줄을 잘 못 선 것이었다. 아니 제대로 영어를 이해 못 한 것이었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얼마를 더 내야 하냐고 묻고는 추가로 돈을 더 지불하고 기념 티셔츠와 비디오테이프를  받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비디오테이프는 사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 영상이 찍혀 있을 줄이야.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산꼭대기에서 번지점프를 했다고, 얼마나 아찔한지 심장이 쫄깃했지만 정말 공중을 나는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자랑을 했다. 그때만 해도 번지점프를 한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을 때여서 관심이 컸던 것 같다. 그때 촬영한 번지점프 영상을 사가지고 왔다는 말에 가족들이 주말에 다 같이 보기 위해 모였다.    

 

비디오테이프가 돌아가고 난 뒤 얼마 뒤부터는 어이구, 어머어머, 쟤 뭐니?,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영어로 엄마한테 인사를 한 거야? 왜에? 아이고 쇼를 해라 쇼를 해, 저걸 번지점프라고 한 거야? 양손을 바둥바둥 대며 떨어지는 모습이라니. 사람 얼굴은 어디로 사라지고 가죽점퍼랑 배꼽만 보이냐? 이걸 돈 주고 사 왔다고?라는 말이 가족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뛰어내리는 장면에서는 모두가 껄껄껄, 낄낄낄, 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배꼽 나온 거 보라며 정말 얼마나 크게 웃던지 내가 보기에도 참 민망스러웠다. 몸이 아래로 떨어지다 보니 가죽점퍼가 쓱 내려가 내 얼굴을 덮어버려서 얼굴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고 위에 입은 티마저 흘러내려서 배가 다 드러난 영상이 나올 줄이야.  

   

떨어지는 모습도 가관이었지만 순식간에 사라진 얼굴과 반동으로 튀어 올랐을 때는 가죽점퍼를 한 손으로 잡아당기고는 다른 한 손으로는 비디오가 촬영되는 곳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럽던지...

이런 영상이 들어있었으면 절대 구입하지 않았을 텐데.     


가족들에게 커다란 웃음을 안겨 준 영상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때는 내가 원하는 대로 뛰지 못해서 다시 뛰겠다고 직원에게 요청을 했었다.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공짜로 번지점프를 시켜준다고 해도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을 할 것이다. 괜한 데 에너지를 낭비할 생각이 없다. 혈압이라도 오르거나 심장이라도 거칠게 뛰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지금은 그저 옛날에 번지점프를 한 추억만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

물론 멋지게 뛰어내리지 못해서 아쉬움이 크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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