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자작가 JaJaKa
Aug 10. 2023
여권을 갱신하러 구청에 갔어요. 아내의 여권 유효기간이 거의 다 되어서 새 여권으로 갱신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제 여권의 유효기간이 아직 조금 남아 있었지만 저도 이참에 새 여권으로 같이 바꾸기로 했습니다.
구청에 도착해서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차례를 기다렸어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없어서 민원실 내는 한가했습니다. 내 앞에 선 아내가 먼저 집에서 가져온 여권사진 한 장과 작성한 서류, 기존여권을 여권과에 제출을 했습니다.
서류를 받아 든 직원이 아내에게 질문을 합니다.
“사진은 언제 찍으신 건가요?”
아내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바로 대답을 했어요.
“6개월 전에 찍은 건데요.”
직원이 기존여권의 맨 앞장을 보고 나서 제출된 여권사진을 보며 웃습니다.
“그런데 10년 전 여권사진과 같은 사진이시네요. 이 사진으로는 여권을 만들 수 없으니 새로 찍어 오셔야 해요.”
어떻게 10년 전 사진을 가지고 와서 6개월 전 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듯 어이없는 얼굴로 아내를 쳐다본 저는 직원에게 당당하게 기존여권과 작성한 서류 그리고 여권사진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직원은 늘 묻는 질문인 듯 서류를 건네받음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저에게 묻더군요.
“여권사진은 언제 찍으신 건가요?”
저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을 했습니다. 이미 기다리면서 준비한 답변이었거든요.
“봄에 찍은 건데요.”
직원이 제 기존여권은 아예 열어보지도 않고 제가 제출한 사진을 흘깃 보더니 고개를 들어 제 얼굴을 쳐다봅니다. 성격이 좋은 사람인지 저를 보고 피식 웃었던 것 같아요.
“이 사진은 규격 자체가 맞지 않아요.”
“네? 규격이요?”
“이거 봄에 찍은 사진 맞으세요?”
직원이 말을 하면서 저를 쳐다보는데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어요.
‘선생님은 이 여성분보다 더 하시군요.’
제가 사실 직원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었어요.
‘그 사진 봄에 찍은 거 맞아요. 그게 이번 봄이 아니라 20년 전 봄에 찍은 것이어서 그렇지.’
집에서 여권사진을 찾아봤는데 10년 전에 찍은 사진은 어디로 갔는지 없고 20년 전에 찍은 사진이 서랍에 있길래 일단 그걸로 어떻게 될까 싶어서 가지고 갔는데 역시나 안 되더군요.
여권사진은 한 장이나 두 장만 필요한데 쓸데없이 사진을 여러 장 뽑으면서 돈을 내는 것이 아까웠습니다. 이상하게 여권사진을 찍고 돈을 낼 때는 그리 아깝더라고요.
제 딴에는 제 모습이 그동안 많이 바뀐 것 같지가 않아서, 그때나 지금이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예전 사진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새로 찍어 오셔야 해요,라는 대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제가 간 구청은 아쉽게도 즉석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원이 알려준 대로 구청 앞에 있는 사진관에 가서 여권사진을 찍어야 했어요.
가격을 물어보니 8장에 2만 원이라고 하더군요. 예전에 비해 가격이 많이 오른 것 같습니다.
당장 여권사진이 급하니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을 찍고서 보정작업을 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때 10년 전에 여권사진을 찍고 보정작업을 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보정작업을 해준다면서 저나 아내를 전혀 다른 사람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게 나야? 이게 내 아내라고? 할 정도로 전혀 낯선 모습의 인위적인 얼굴이었습니다.
10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저는 보정작업을 원하지 않는다고 있는 그대로 그냥 출력해 달라고 했습니다. 사진사가 제 말에 그건 좀...이라고 하면서 양쪽 어깨 높이를 맞추고 안경을 쓴 자국을 없애고 한두 가지 사소하게 살짝만 바꾸겠다고 하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좋으련만.
저는 사진사의 뒤에서 이제 그만, 그만 됐어요를 외쳐야 했습니다.
여권사진의 규정이 바뀌었는지 얼굴만 크게 찍은 제 사진은 정말로 뭐라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제일 먼저 느낀 것이 나는 더 이상 동안이 아니구나, 하는 거였습니다. 어쩌면 바깥온도가 너무 더워서 상태가 좀 거시기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흠...
제 사진이 출력이 되는 소리와 함께 방금 전에 찍은 아내의 사진이 모니터에 떴습니다. 아내는 화장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랬다고 하는데 모니터에는 할머니의 모습이...
사진사가 여기저기 바쁘게 보정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팔자주름도 지웠다가 다시 복원했다가 저보다 더 오래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아내는 자기 사진을 보며 당황을 했는지 보정을 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말은 하지 못한 채 모니터에 보이는 자신의 얼굴사진을 바라보며 혀를 찼습니다.
오십 보 백 보이기는 하지만 서로의 반응에서 이미 게임의 승자는 정해진 걸로 보였습니다.
4만 원을 지불하고 사진을 손으로 꽉 잡은 채 사진관을 나와 구청을 향해 걸어가던 나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사진을 잘 못 찍는 거 같아. 아니 우리 얼굴을 어떻게 이렇게 찍을 수가 있지?”
“내 사진보다 자기 사진이 더 이상하더라. 그건 알지?”
“허, 뭐래?”
“자기는 전신이 나오는 사진을 찍어야 해. 얼굴만 나오는 건... 오늘 보니 좀 부담스럽네.”
제 귀에는 마치 서로가 니 똥 굵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새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그제야 직원이 미소를 짓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새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기존여권을 없애고 지문인식을 하고 1인당 50000원을 결제하고 여권이 나오면 문자메시지로 알려주겠다는 대답을 듣고 구청을 나왔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처음 모니터에 뜬 제 얼굴사진이 떠오르더군요.
‘내 인물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사진사가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을까.’
‘너무 얼굴을 크게 찍어서 상대적으로 인물이 못나보였던 것은 아닌가.’
남은 여권사진 7장을 어찌해야 하리.
이 사진 속의 나가 정말 지금의 나의 모습인 것인가.
한 인물까지는 아니어도 반 인물은 하던 나였는데...
사진 속에
나는......
아저씨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