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자작가 JaJaKa
Sep 06. 2023
늦은 주말 밤, 10시를 막 지난 시간이었을 거예요.
아내는 소파에 앉아 처처칭한이 쓴 ‘잠중록’을 읽고 있었어요. 외전을 제외하면 총 4부작인데 3편인가 4편을 읽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저는 진즉에 다 읽어서 어떤 내용인지 이미 알고 있었어요.
‘잠중록’에서는 중국 당나라시대를 배경으로 멋있고 똑똑하고 인물도 출중하고 매력적인 남녀 주인공을 비롯해 다양한 캐릭터의 등장인물들이 나옵니다. 주인공이 아닌데도 등장인물들이 참 매력적이에요.
제가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 중에 재미나게 볼 게 있는지 훑어보다가 마침 한 영상을 찾아서 아내에게 같이 볼까? 하고 물어보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어느 부분을 읽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내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가 되어 있더군요.
그 모습에 저의 장난기가 또 발동을 했지요.
“어찌 말랑말랑 해? 야한 장면이라도 나온 거야?”
제 말에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 한쪽 입 꼬리를 올리더군요.
“뭐래. 그런 장면은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나오거든.”
“에이, 얼굴이 발갛게 상기가 되었는데 뭘. 괜찮아.”
“그런 내용이 나오기는 해? 나 기대하게 만들어 놓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내가 안경을 쓰고서 시간을 확인하더니 읽던 책을 덮습니다. 더 읽고 싶고 뒷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시간이 늦어서 그만 읽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보입니다.
“이 책을 쓴 작가가 나이가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남녀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를 참 간질간질하게 잘 쓴 것 같아. 나는 이런 서로 주거니 받거니 티티카카가 되는 소설이 좋더라. 자기도 한번 써봐.”
“으응? 내가?”
“왜에? 자기도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고런 센스는 또 있잖아.”
아내가 책을 내려놓고 소파에서 일어나 거실에 앉아 있는 제 옆에 와서 앉습니다.
그리고는 제 얼굴을 가만히 쳐다봅니다. 방금 전에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생각이 났던 것일까요?
갑자기 왜 못마땅한 얼굴을 하는 것인지. 뭔가 아쉽다는 표정을 왜 짓는 것인지.
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내가 뜬금없이 한쪽 볼을 쓱 내밀면서 저에게 말합니다.
“여기 내 볼에다가 뽀뽀 좀 해봐.”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녀의 눈빛이 저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너라도.’
‘너래두.’
소설 속의 잘 생기고 매력이 넘치는 주인공에게 안겨 뽀뽀세례를 받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으니 정말 어쩔 수 없이 너에게 내 볼을 내민다는 듯이 저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을 본 제가 순순히 뽀뽀를 하고 싶었을까요.
저도 자존심이 있고 가오가 있는데.
“됐거든. 딴 데 가서 알아보셔.”
아직도 소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는지 어쭈? 이런 꼼장어 같은 게? 하는 표정을 짓던 아내가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정말 별꼴이야, 하는 제 표정을 봤는지 천천히 현실 속으로 돌아오더군요.
어색하면서도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제 팔에 자신의 팔을 슬슬 문지르고는 아내가 이 한마디를 내뱉습니다.
“나는 너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