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자작가 JaJaKa
Sep 21. 2023
어느 날부터인가 부엌 창문 쪽에서 말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지나가는 말벌이려니 했었죠.
근처 어딘가에 말벌 집이 있나 보네, 확실히 주위에 녹지가 많으니까 말벌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말벌들은 이른 아침에 주로 많이 보였습니다. 다른 시간대에도 날아다니기는 했지만 아침이 밝고 난 이후의 시간에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더군요. 아침식사를 하면서 부엌 창문을 바라볼 때면 거기에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눈이 있는 것만 같았어요.
만약에 방충망이 없었다면...
처음에는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말벌이 보이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한 마리만 보이던 것이 어느 날은 여러 마리가 붕붕 날아다녔어요. 때로는 방충망 앞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마치 경계의 눈초리로 노려보는 듯이 쳐다볼 때면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창문만 열지 않으면 방충망이 있으니 안전하겠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말벌이 거실로 날아들어 왔습니다. 분명 모든 창문이 닫혀 있었는데 어떻게 말벌이 들어왔는지... 지금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갑작스러운 말벌의 출현에 혼비백산한 저와 아내는 우왕좌왕하면서 서로에게 어떻게 좀 해보라고 서로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말벌이 거실 창을 부딪치며 천장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닐 때 저는 저도 모르게 이 소리를 외쳤지요.
“뻐꾹 뻐꾹 뻐꾹”
몇 살 때부터인지 모르지만 벌이 나타나면 외치라고 누군가에서 들었을 이 말을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벌만 나타나면 자동으로 외치는 소리인지라 저도 모르게 “뻐꾹 뻐꾹 뻐꾹”을 외치며 벌의 움직임을 관찰하다가 얼른 파리채를 집어 들고 제 몸을 보호했습니다. 아내는 저를 방패 삼아 제 뒤에 서 있었을 거예요.
아내는 저에게 어떻게 좀 해보라고 하고, 저는 아내에게 당신이 좀 어떻게 하면 안 되겠냐, 고 했죠. 벌은 특히 말벌은 누구에게나 무섭긴 마찬가지잖아요. 특히 저는 말벌에 그것도 땅벌에 쏘였던 경험도 있는지라 말벌을 좀 무서워하거든요.
말벌은 소리 내어 날아다니고 이러다가 어느 누구 하나가 말벌에 쏘일 수 있는 상황으로 치닫자 어쩌겠어요, 제가 나섰지요. 아내를 지키겠다는 일념하나로 있는 용기 없는 용기를 다 끌어 모아 저는 말벌을 향해 발걸음을 떼었어요. 그리고 조심스레 파리채를 치켜들고 말벌에게 천천히 다가갔어요. 말벌은 유리창에 부딪치면서 무서운 기세로 제 앞에서 왔다 갔다 했어요.
제가 타이밍을 포착해서 말벌을 향해 파리채를 휘둘렀는데 약간 빗맞았는지 바닥에 떨어져서 꼬물꼬물 움직였습니다. 다시 날아오르기 전에 재빨리 어깨를 들어 올리고서 파리채를 휘둘렀어요. 정타로 맞지 않았는지 말벌은 대자로 뻗지 않고 계속 움직이며 꼬랑지에서는 그 무시무시한 벌침이 들락 날락 하는 것이 보였어요.
아내가 제 뒤에서 얼른 한 대를 더 내리친 다음 휴지에 싸서 휴지통에 버리라고 하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얘가 혹시 페로몬이라는 물질을 발산시켜서 다른 동료들을 부를지도 몰라.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그런 내용을 본 적이 있는 것 같거든. 그러니 얼른 얘를 밖으로 내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
제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는지 아내가 그럼 얼른 말벌을 밖으로 내보내라고 하더군요. 아직 죽지 않은 말벌은 여전히 꼬랑지에서 위협적인 침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저는 파리채를 이용하여 말벌을 얼른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는데 자꾸 미끄러지면서 뜻대로 잘 되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다른 녀석들이 올까 봐 얼른 서두르려고 하는데 마음이 급하니 몸 따로 마음 따로라고.
보통 이런 모습을 보면 아내가 답답해하면서 저에게 자기가 할 테니 뒤로 물러나 있으라고 하고는 본인이 나서서 하는데 눈앞에서 버둥거리는 말벌이 무섭기는 무서운지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제 뒤에 서서 제대로 좀 하라고 중얼거리기만 하더군요.
어찌어찌해서 말벌을 파리채 위에 올리니 아내가 잽싸게 방충망을 열어 주어서 아직 죽지 않은 말벌을 밖으로 내보내고 얼른 방충망을 닫아버렸죠.
그러고 나서 무슨 큰일을 한 것처럼 힘이 빠져서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어요. 혹시나 있을 다른 말벌들이 공격에 대비하며 시선은 거실 창에 고정되어 있었지요.
아내는 저에게 무슨 남자가 이리 힘이 없냐고 하는데 아니 말벌 앞에서 누가 힘자랑을 할 수가 있겠어요.
일단 말벌이 보이면 그 자리를 피해 얼른 도망치는 게 맞지 않나요?
그 일이 있은 후 저희는 마트에 가서 새로운 파리채를 구입했습니다. 폭이 넓고 훨씬 더 유연하게 휘두를 수 있는 파리채로 말이죠. 그전에 있던 파리채는 모양만 그럴싸하게 보일뿐 폭이 좀 좁고 유연성이 떨어지던 파리채였거든요.
그리고 며칠 뒤 드디어 말벌 집의 위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말벌들이 자주 보이는 것이 가까운 곳에 말벌 집이 있을 것으로 추측은 했지만 그리 가까이 있는지는 몰랐어요. 세탁실 창문 밖 난간에 말벌이 집을 짓고 있었어요.
TV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말벌 집을 가까이서 보니 더 징그럽더군요. 말벌들도 배출을 하는지 말벌 집 밑은 말벌들이 배출한 것으로 보이는 까만 분비물이 쌓여 있었어요.
집을 지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지 크기는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TV에서는 축구공이나 농구공만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고 핸드볼공만 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크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어요. 그냥 놔둬야 하나, 아님 우리의 안전과 다른 이웃들의 안전을 위해 제거를 해야 하나.
아내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하니 119에 신고를 하라고 하더군요. 곧바로 아내가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위치가 뜨는지 어느 지역에서 전화를 했는지 바로 아시더라고요. 그리고는 바로 출동을 하셨습니다. 저희는 바로 출동을 하시리라 생각을 못했거든요.
얼마 후 소방관 두 분이 말벌 집을 제거하기 위해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저는 양파 망 같은 것을 머리에 쓰고서 오실 거라 생각했어요. 왜 TV에서는 벌의 공격을 피해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하잖아요.
그분들이 말벌 집의 위치를 물어보시고는 보호 장비 없이 바로 말벌 집 제거에 들어가셨어요. 생각보다 말벌 집이 작다고 말하시고는 에*킬라 같은 살충제를 방충망 사이로 뿌려댔습니다. 두 분이 동시에 뿌려대니 말벌 집에 있던 말벌들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허둥대었습니다. 물이 떨어지듯 뚝뚝 말벌 집에서 엄청난 양의 살충제를 뿌린 액체가 떨어져 내렸습니다.
세 통에 가까운 살충제를 뿌린 후에 어느 정도 됐다 싶은지 방충망을 열고 쇠막대기를 이용하여 말벌 집을 떼어내려고 하는데 그때 말벌 집 근처에 남아 있던 말벌이 어디선가 나타나 두 소방관에게 달려들어 깜짝 놀라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말벌 집을 제거한 후 두 소방관은 유유히 사라지셨습니다. 아마 다른 출동을 위해 바삐 가셨겠지요. 정신이 없어 두 분께 시원한 음료라도 드리지 못한 것이 나중에야 생각이 나더군요.
그 후에 몇 마리의 말벌이 말벌 집이 있던 자리를 맴돌면서 왔다 갔다 하더니 더 이상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벌 집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그 흔적만이 남았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땅벌이라고 불리던 (땅에 집을 짓는 말벌을 땅벌이라고 한다고 하더라고요) 말벌에 허벅지를 쏘인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집에까지 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가 않습니다. 아이들하고 산에서 밤을 따다가 쏘였거든요. 허벅지가 퉁퉁 부어오르고 통증이 엄청났었던 건 얼핏 기억을 합니다. 그때 아마 엄마가 제 허벅지에 된장을 철퍼덕 발라주며 가만히 있으라고 했었어요. 된장 냄새가 심하게 났지만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된장을 허벅지에 바르고 누워서 벌에 쏘인 고통에 아마도 엉엉 울었을 거예요. 그 후의 기억은 나지가 않네요. 당시에는 웬만해서는 병원에 가지 않던 때라 병원에 갔었는지 아니면 물파스를 바르면서 부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는지.
말벌 집은 제거가 되었고 지금은 말벌 집이 있었다는 흔적과 말벌들이 배출하고 간 까만 분비물만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