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버리려고 한 날
술 냄새를 푹푹 풍기며 책상에 앉아
창밖의 어두움을 바라본다
술자리에서 뱉어낸 말들은
공기 중에 흩어진 지 오래고
마셔낸 술은 오줌으로 내보낸 것 이외에는
지금 내 몸속에서 피와 함께 흐르고 있다
왜 사냐고, 왜 살아야 하냐고
묻는 친구의 질문에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빈 술잔을 멍하니 쳐다보며 있었다
친구에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도와 차도 어딘가에
배고픈 비둘기들을 위한 식사를
넉넉하게 준비해 두고 왔다
책상에 앉아 마지막 한 개비의 담배를 피운 뒤
천천히 책상서랍을 열어
작은 약통을 꺼내는 내 손길이
차디찬 바람에 오돌오돌 떨리듯 떨리고 있다
이제 와서 두려운 것인가?
나의 삼십 년 인생이 오늘로 끝이구나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온다
태어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지만
떠나는 것만큼은 내 스스로 결정하려고 한다
약통을 열어 약통 속에 가득 들어 있는 알약을
책상 위에 떨어뜨린다
촤르르르
알약이 떨어지는 소리가 내 귓가에 울린다
책상 위에 흩어진 수십 알의 알약을 보고 있자니
나는 이제 진짜로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심장이 묘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이제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어,
더 이상 이렇게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약을 한 움큼 집어 입안에 털어 넣고
우걱우걱 씹는다
미리 떠다 놓은 컵의 물을 들이켜서
입안에 남아있는 약의 찌꺼기를
목구멍 안쪽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졸음이 밀려온다
약기운이 슬슬 효과를 발휘하나 보다
버틸 수 없게 된 나는 침대에 몸을 누이고
눈을 꼭 감은 채
두 손을 가슴에 가지런히 올린다
평화스럽게 잠든 모습으로 발견되고 싶다
마지막 모습이 추하게 보이고 싶지는 않다
환한 빛이 점점 사그라들면서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고
내 몸을 흔드는 손길에
한참을 저항하다가 결국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킨다
여기가 어디지?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떠서 바라보니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야, 이 녀석아
간밤에 배가 고프면 냉장고에서 뭐라도 꺼내서 먹지
원기소를 도대체 얼마나 먹은 거야?
하루에 9개까지만 먹으라니까
어이구, 내가 너 땜에 못 산다, 못 살아
속은 괜찮아?
나는 간밤에 무엇을 한 것인가?
방을 나가며
술을 먹어도 곱게 드세요, 라는
어머니의 외침이
오래도록 방안에 울려 퍼진다
원기소란 말이지?
내가 지난밤에 먹은 게 영양제인 원기소란 말이지?
갑자기 뱃속이 꿀렁꿀렁거린다
과하게 섭취한 영양제가 그만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202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