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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 이야기, 대봉시 스토리

by 자작가 JaJaKa

세월이 흐르면서 입맛도 변해 가는지 예전에는 잘 먹지 않았던 것들을 나이가 들어가며 먹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바로 감이다. 단순히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즐겨 먹게 되었다.


사실 예전에 나는 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게 과육이 단단한 단감이건 잘 익어 말랑말랑한 연시이건.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혹시 감을 먹으면 변비가 생긴다는 말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특별히 맛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해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여하간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먹을 기회가 생겨도 시큰둥하기만 했던 감을 언제부터인가 좋아하게 되었다. 그게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으나 마흔이 넘은 어느 날부터였던 것 같다.


깎아 놓은 단감 한 조각을 집어 먹었는데 숙성이 되어서 식감이 조금은 물컹하다고 해야 하나, 부드럽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입에서 살살 녹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들었던 느낌이 어? 감이 이렇게 달고 부드러웠나? 하는 것이었다.


단감을 먹으면서 아주 가끔 가다가는 잘 익은 연시나 홍시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희한하게도 어렸을 때는 맛보라고 줘도 잘 먹지 않았던 연시나 홍시를 말이다.


어렸을 때 엄마나 할머니가 연시나 홍시를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볼 때면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기억이 있다. 나는 물컹거리는 식감과 연시를 먹을 때 입 주위와 손 여기저기에 끈적거리게 묻는 그 느낌이 싫어서 연시를 멀리 했었다.


그런데 그 부드러운 맛이 떠오르면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건가, 하고 생각될 때가 있다. 왜냐하면 단단하거나 아삭 거리는 식감보다는 부드럽거나 말랑거리는 식감을 더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른들이 왜 부드러운 음식이나 과일을 찾으셨는지 조금씩 이해가 가면서 나도 자연스레 그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참 여기서 인터넷 지식백과를 검색해보니 단감이 잘 익어서 과육이 말랑말랑해지면 연시라 부르기도 하고 그 속살이 붉은빛을 띠면 홍시라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즉 연시나 홍시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다고 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동그란 단감이 익으면 연시가 되고 끝이 뾰족하고 크기가 큰 대봉감이 익으면 홍시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대봉감이 잘 익으면 홍시가 아니라 대봉시라 부른다고 하니 여태 내가 잘 못 알고 있었던 거였다.


그것도 모르고 아내가 “밖에 내놓은 대봉 중에 잘 익은 게 있는 것 같던데 우리 점심식사 후에 대봉 하나 먹을까?”라고 말하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안 익어서 떫은 건 대봉이라 하고 대봉이 익으면 홍시라고 한다고 몇 번이나 말해. 지금 자기는 안 익은 떫은 대봉을 먹자고 말하고 있는 거야. 알아?”라고 퉁명스럽게 대꾸를 했었다. 잘도 모르면서 말이다. 대봉이 익으면 대봉시라고 하는 것도 모르고서.

옛날 나의 기억 속에 어디선가 선물로 들어온 그 당시에는 홍시인 줄만 알았던 대봉시를 엄마가 식탁에 앉아 티스푼을 이용해서 떠먹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너도 맛 좀 보라며 엄마가 한 스푼을 떠서 건네주었건만 나는 물컹거리는 식감이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네가 아직 어려서 지금은 이 맛을 모르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면 이 맛을 알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참 달다, 하는 말과 함께 대봉시를 티스푼으로 떠먹던 엄마의 모습이 내 기억 속에서 떠오른다.


연시는 가끔 사다 드셨지만 대봉시는 연시에 비해 가격차이가 많이 났는지 본인 돈으로 사 먹지는 않았던 것 같다. 비싸 봤자 못 사 먹을 가격은 아니었을 텐데. 어쩌다가 선물로 들어올 때만 흡족한 얼굴로 대봉시를 드시던 엄마의 모습이 영상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이번 2020년 겨울이 다가 올 무렵 갑자기 잘 익은 홍시가 먹고 싶어서, 그때까지만 해도 대봉시를 홍시로 알고 있었던 터라, 산지에서 대봉감을 한 박스 주문했다. 처음에 아내는 한 박스를 주문해서 그걸 다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나도 처음에는 서른 개가 넘는 대봉감을 다 어떻게 먹지? 하는 생각에 우리한테 많다 싶으면 아는 사람들 맛보라고 몇 개씩 나눠주어야겠다, 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실온에 내놓은 대봉감이 익기를 기다리며 열흘 가까이 지난 시점에 처음으로 표면이 말랑말랑해진 대봉시를 반으로 쪼개어 티스푼으로 맛을 보았을 때 그 달콤함과 부드러움에 나와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이 맛이었구나, 엄마가 예전에 말씀하셨던 시간이 흘러 나중에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거라는 그 맛이 바로 이 맛을 말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그게 어떤 맛이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무어라고 답해야 하나.

잘 익은 홍시의 맛, 대봉시의 맛이라는 것은 아무리 세세하게 설명을 한다고 해도 수박의 겉핥기 일뿐, 결국 자신이 직접 먹어보아야 그 맛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잘 익은 대봉시의 맛이 어떤 맛인지는...... 음...... 역시 직접 드셔 보기를.




그 후에 쟁반 위에 올려놓은 대봉감 옆을 지날 때마다 눈길을 주고는 했다. 다 익은 놈이 있나? 하고 눈길을 주었다가 왠지 익어 보이는 대봉감을 손으로 만져보고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이 되면 왜 이리 조바심이 나는지. 빨리 먹고 싶은데 먹을 수 없다는 것이 더 애를 태우는 것 같다.


2주일이 지나도 잘 익지 않아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쑤시개로 대봉감을 몇 번 찔러 주면 더 잘 익는다고 해서 부랴부랴 이쑤시개를 준비해서 대봉을 찔러주었다. 대봉감 앞을 지나가면서 왜 이리 안 익어? 하며 애처럼 보채는 내 모습에 나도 모르게 멋쩍은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때가 되면 알아서 말랑말랑해질 텐데, 맛있는 것을 먹으려면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참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언제 그 많은 대봉감을 다 먹으려고? 나는 홍시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야, 혼자 다 먹을 수 있어? 나한테 먹으라고 강요하지 마, 알았지?” 하며 불평을 쏟아내던 아내가 어느새 남은 대봉감이 얼마 되지 않는다며 아쉽다는 듯 말하는 모습을 보고는 앞으로 대봉시를 계속해서 먹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나보다 더 대봉시를 좋아하는 아내의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나온다. 그대도 대봉시를 좋아할 나이가 되었구려.


실온에 내놓은 대봉감이 익기를 바라면서 오늘 저녁에는 잘 익은 대봉시를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대봉감에게 시선을 보낸다. 대봉감이 대봉시가 된 날 우리는 달콤한 맛의 향연에 그윽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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