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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Jan 23. 2022

현관문 밖에서

글을 쓰고 있다가 현관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 글 쓰는 것을 멈춘다. 앞 집 아이가 어린이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시간인 모양이다. 아이 엄마의 반기는 소리와 아이의 쫑알대는 소리가 들린다. 늘 같은 시간이니 굳이 시계를 보지 않아도 몇 시 인지 나는 안다. 대략 2시 30분가량 되었을 시간이다.

      

앞 집 아이는 이제 세 살쯤 된 것으로 아는데 아이 엄마가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그 시간을 함께 봐왔기 때문에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조막만 한 갓난아이 시절부터 유모차에 태우며 산책을 할 때 가끔가다 마주치면 그때마다 아이의 모습은 무럭무럭 자라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큰다고 하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그렇게 작은 아기가 이제는 어린이집에 다닐 만큼 자라서 하루가 다르게 말을 배워서 말을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신기하게 느껴진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불과 5시간도 안되어서 만나는 모녀상봉인데 매일매일의 반응이 다르다. 오늘은 어떨지 잠시 글 쓰는 것을 멈추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오늘은 아이 엄마의 ㅇㅇ아, 하며 아이를 부르며 아이를 반기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이는 오늘 평상시와는 다르게 조용히 집으로 들어갔으리라 상상이 된다.

     

물론 매일매일의 반응이 오늘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은 그렇지가 않다.      




어떤 날은 오늘과 다르게 아이의 칭얼대는 소리와 그에 맞물려 아이 엄마의 짜증이 섞인 커다란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어서 집으로 들어가세요,라고 말하는 아이 엄마의 소리와 엄마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복도를 뛰어다니는 아이의 발소리가 들린다.    

  

몇 번을 말해도 똑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아이 엄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어느새 커지고 어서 집으로 들어가, 엄마 말 안 들려?라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 엄마의 목소리에 이어 아이의 투정을 부리는 소리가 어느 정도 이어지는 날도 있다.


어떤 날은 아이 엄마와 아이가 기싸움을 하는지 서로가 지지 않고 버티면서 오랫동안 실랑이가 이어지기도 한다. 아이의 우는 소리에 아이 엄마는 전혀 반응하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 버리기도 한다. 아마 더 이상 오냐오냐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이가 이제는 커서 안아주기가 힘든데도 계속해서 안아달라고 보채서 버릇을 고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아이는 통통하게 무럭무럭 자라는데 비해 아이 엄마는 점점 말라 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날은 그새 아이가 많이 보고 싶었는지 아이 엄마가 환한 목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아이도 어떤 날은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아이 엄마랑 실랑이를 벌이며 소리를 지르다가도 어떤 날은 엄마를 외치며 반갑게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 엄마도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정답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반갑게 모녀상봉을 하는 날에는 나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지고는 한다.

     

물론 현관문을 열고 내다보지 않았으니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나 대화만으로 나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는 한다. 특히 조용히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면 앞집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더욱더 크게 들리기 때문에 잠깐 동안 나는 아이 엄마와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고는 한다.     

 

잠깐 동안의 상상만으로도 어떨 때는 아이 때문에 많이 웃겠구나 싶다가도 아이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그 아이는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는가 모르겠지만 그 아이는 엄마의 사랑과 아빠의 보살핌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가끔, 아니 자주 우리는 우리가 저절로 컸다고 생각을 하는지 머리가 컸다고 엄마에게 대들거나 아빠의 말을 흘려듣거나 부모님을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고는 한다.      


우리가 작디작은 생명에서부터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가기 까지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이 없었으면 그게 가능이나 했을까. 내가 성장해서 커 갈수록 부모님은 그에 비례해서 점점 더 늙고 연약해져 간다는 사실을 가끔은 잊고 지내기도 한다.      


어느 날은 앞집 여자아이가 아이 아빠에게 오빠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직 아빠와 오빠를 혼동해서 부르는 가 싶었다.      


앞집에서 매실 청을 담갔다고 한 병을 나눠 주길래 우리는 답례로 초콜릿을 건넸다. 아이가 거실에서부터 현관까지 쪼르르 달려 나와서 두 손을 허리춤에 걸치고서 엄마의 손에 들린 봉투를 보며 엄마를 향해하는 말이, 과자야? 과자야?라고 우렁차게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기도 하고 사내아이 같아 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저만큼 자랐을까.  

    

아이들은 매일매일 조금씩 자란다고 하던데 얼마 동안 못 보다가 보면 어느새 훌쩍 자라 있는 것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그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는 물론이고 우리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가끔은 깜빡하고는 한다. 조금씩 자라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시간은 조금씩 흘러가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가 그리운 시간이다. 따뜻한 차도 괜찮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오후의 시간에 따뜻한 커피나 차가 생각이 난다. 특히 글을 쓰다가 머리가 무거워질 때 더욱더 커피나 차 한 잔이 그리워진다.      


커피 한잔을 타서 자리에 앉는다. 커피 향이 진하게 나지는 않지만 나는 호호 불어가며 커피를 조금씩 마신다.      

커피를 마시며 앞쪽으로 멍하니 시선을 보내지만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는 한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차를 마시며 어떤 주제로 글을 쓸지를 고심하기도 한다.  

    

잠깐의 여유, 그 시간은 내게 햇살이 비치는 들녘처럼 풍요로움을 준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를 지나서 저녁을 향해 조금씩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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