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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책에게 읽히거나

by 자작가 JaJaKa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어느 순간 눈이 무거워지면서 글씨가 흔들려 보이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책을 읽고 있지만 머리에는 책의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다.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한 채 무거워진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리면서 조금만 더 읽겠다며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한다.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잠시 책을 덮고 눈을 쉰 다음에 다시 읽어도 되는데 굳이 단락을 다 읽으려거나 책의 뒷부분을 살펴보고 책의 내용이 끝마쳐지는 부분까지 읽으려고 욕심을 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책에게 읽히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떻게든 간신히 읽더라도 책의 내용이 기억나지도 않고 눈은 눈대로, 몸은 몸대로 피곤해져서 책을 덮은 다음에는 잠시 눈을 감고 쉰다는 것이 깜빡 잠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잠시 쉬었다가 다시 책을 읽으면 한결 정신이 맑아진 상태에서 독서를 할 수 있건만 왜 그렇게 조금만 더 읽겠다고 욕심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을 때뿐만이 아니다. 그런 일은 다른 상황에서도 일어나는데 술을 마실 때도 이런 일은 일어난다.

과거에 나의 경우를 살펴보면 내가 분명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면 술이 나를 마시고 있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절제가 요구되고 임계점에 다다르면 멈출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한다. 어디가 한계인지도 모른 채 술을 마시다가 도리어 어느 순간 술이 나를 마시게 되는 상황까지 나 자신을 몰고 가고는 했다.


내가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인지 술이 나를 마시고 있는 것인지 모른 채 술을 입에다가 들이붓고 있는 나를 참 많이도 봐왔었다.

멈추어야 할 때, 그만두어야 할 때를 몰라서 그런 것일 것이다. 그 뒤에 찾아오는 것은 어김없는 숙취와 필름 끊김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 마시지 않겠다는 다짐과 반성 등이겠지만.




이런 일은 밥을 먹는 때도 일어나는데 특히 뷔페나 내 돈 내지 않고 얻어먹는 비싼 음식일 경우에 일어나기도 한다.

뷔페에 가서는 낸 돈이 아까워서라도 서로가 격려를 하며 더 먹으라고 부추긴다. 겨우 이것 먹고 끝내냐,며 한 바퀴 더 돌고 오라고 얘기한다.


그렇게 음식이 위를 꽉 채우고도 모자라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까지 마지막 한 점의 음식을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럴 때면 내가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 나를 먹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적당한 때에 멈출 줄 알아야 하는데, 본전 생각보다는 음식 자체를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배불러서 못 먹겠다고 하면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뷔페식당을 한 바퀴 빙 돌고 와. 소화가 좀 되게. 아니면 소화제 가져온 거 좀 줄 테니 먹고 소화가 좀 된 다음에 다시 먹어. 낸 돈이 얼마인데 벌써 못 먹겠다고 하면 되니.”


이쯤 되면 내가 음식을 먹으러 온 것인지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러 온 것인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내가 음식을 먹다가 어느 순간 내가 음식에게 먹히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또한 내 돈 내지 않고 회사 비용이나 다른 사람이 사는 한우나 비싼 음식을 먹게 될 때면 우리는 제대로 한번 먹어보자는 자세로 임한다. 평소에 2인분이 한계인 사람도 욕심을 내서 3인분, 4인분을 외치며 달린다. 소화제를 먹는 한이 있더라도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을 기세로 달려든다.


허리 벨트를 풀고 튀어나온 배를 문지르며 더 이상 못 먹겠다며 뒤로 물러섰다가도 누군가 시원한 냉면이라도 시키면 그 유혹을 못 이기고 배가 터질 것 같은데도 냉면 하나 더 추가요,를 외친다.


어느 순간 음식을 먹는 일이 즐거움이라기보다 고통의 순간으로 찾아온다. 위가 그만이라고 말하는데도 꾸역꾸역 밀어 넣는 음식물로 처리가 곤란하다고 하는데도 오늘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이 마지막 순간까지 고기 한 점을 싸서 입에 밀어 넣는다.

그때쯤 되면 내가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음식을 밀어 넣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사는 음식이었어도 그렇게 먹었을까. 그렇게 식탐을 부렸을까.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책을 읽는 일은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목표를 채우기 위해서 책을 읽거나 억지로 책을 읽게 되면 그것은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에게 읽히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다 읽을 필요도 없고 100미터 달리기처럼 전속력으로 달릴 필요도 없다. 읽다가 피곤하거나 힘들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읽으면 된다.

누군가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급할 필요도 없고 꼭 어느 단락까지 읽고 나서 쉬어야 한다는 기준도 없다.

책이 잘 읽힐 때는 더 많은 시간 동안 읽으면 되고 오늘은 별로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면 잠시 책을 덮고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는 지금 책을 읽고 있다. 내가 책에게 읽히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만 책을 읽을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오늘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하나의 취미생활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 순간을 즐기고, 그 내용에 흠뻑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머리를 끄덕이기도 하고, 가슴 저 밑바닥에서 눈물이 올라오기도 하며, 머릿속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어떤 책을 읽던지 나는 책을 읽고 싶다. 책에게 읽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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