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평상시에는 잘 그러지 않다가 이상하게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는 날, 그런 찰나의 순간에 일은 일어난다.
아내와 점심을 먹고 길을 걷던 주말 오후 나는 어디선가, 내가 느끼기에는 분명히 내 호주머니에서 들린 것 같은 문자메시지가 왔다는 소리에 걸어가면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평상시에는 걸어가면서 휴대폰을 잘 사용하지 않던 내가 그날따라 이상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고서 화면을 확인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인지 아무것도 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시계를 보니 12시 24분이었다.
그때 내 옆에서 “자기야”라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길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잠시 동안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길바닥에 널브러진 채 잠시 멍하게 있던 나는 그제야 몸을 일으켜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내는 옆에서 “괜찮아, 다치지 않았어?”라고 큰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주위를 둘러보며 누가 본 사람이 없는지 재빨리 확인하고는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픈 것보다는 창피함이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 나자 비로소 조금씩 통증이 느껴졌다. 일단 손바닥이 얼얼하면서 벌겋게 변했고 양 무릎이 따끔거리고 쓰라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길을 걷다가 잠시 멈추어 서서 바지를 걷어 올려보니 양 무릎이 까져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니 더 쓰라린 느낌이 들었다. 이런 우이씨, 하는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왔다.
휴대폰을 확인하는 그 잠깐 사이에 보도블록의 턱에 오른발이 걸리면서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는 아내의 얘기를 들었다.
일어나게 되어 있는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게 된다고 했던가?
왜 갑자기 그때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들린 것 같은 착각을 했으며 왜 그 타이밍에 휴대폰을 꺼내어 들었고 그때 마침 보도블록의 턱이 튀어나온 길을 지나치고 있었는지......
우연이었을까?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내가 넘어지기 직전에 아내는 왠지 내가 턱에 걸려서 넘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똑바로 앞을 보고 가, 라는 말을 할 사이도 없이 내가 그냥 턱에 걸려 고꾸라졌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조금 더 빨리 얘기를 해 주던가.
사실 평상시에는 가끔씩 턱에 발이 걸려도 잠시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중심을 잡고는 했는데 그날은 그게 되지 않았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무릎에 마데카솔을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마데카솔을 바를 때 쓰라렸는지 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무릎 주위에 멍이 든 것이 생각보다 세게 무릎을 찧었나 보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게 느껴졌다. 타이밍이 참 기가 막히다는 것 밖에 달리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넘어지면서 옆구리 근육이 놀랐는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고 깨진 무르팍이 아프고 쓰리다고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는 나를 보며 아내가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까는 많이 다쳤을까 봐 걱정이 되었는데 지금은 왜 이리 웃긴지 모르겠어. 앞으로 고꾸라지며 넘어지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그 모습이 너무 웃긴 거야. 얼마나 창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허겁지겁 일어나 앞으로 걸어가는 자기 모습이 지금 생각해보니까 너무 웃겼던 것 같아.”
나는 아내의 말에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씰룩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웃기냐? 나는 아프고 쓰라려 죽겠는데?’
그나저나 깨진 양쪽 무르팍을 보며 며칠 고생하겠네, 라는 생각에 짜증이 묻어나는 손길로 뒷머리를 쓱쓱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