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에 그 일은... 때는 바야흐로 봄날이 한창일 무렵이었다. 벚꽃은 그 아름다운 자태를 사람들에게 다 뽐내고 바람에 힘을 빌려 꽃잎을 이미 바닥에 다 떨구고 났을 때였다.
나는 새내기라 불리던 1학년 생활을 보내고 이제는 첫 후배를 맞이하는 2학년이 되었다. 황금 같은 대학 1년이란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나, 돌이켜보면 밤낮으로 술만 먹고 지냈던 것 같다.
비가 와서 한잔, 휴강이 되어서 한잔, 고민이 생겼다는 친구의 말에 한잔, 날씨가 너무 좋아 한잔, 오늘은 그냥 술이 당겨서 한잔.
처음 얻은 자유를 정말이지 너무나 헛되게 술과 함께 날려 보낸 1년이었다.
2학년이 되고 몇몇 신입생이라고 불리는 1학년들이 인사를 했다. 맨날 인사만 하고 다니다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받는다는 것은 처음에는 퍽이나 어색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자연스레 어, 누구라고? 아, 그러니? 나는 누구라고 해. 뭐? 이미 얘기를 들은 게 있다고? 무슨 얘기? 공부는 안 하고 술만 먹는 날라리? 아니야,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야. 등등의 말을 하게 되었다.
때로는 후배들이 밥을 사달라고 할까 봐 1학년이 수업이 있는 시간에 학생식당에 가고는 했다. 아마 우리 선배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후배가 한 명도 아니고 그 많은 인원이 얼굴만 마주치면 밥 사주세요, 술 사주세요, 했으니 나중에는 우리가 인사를 하면 수업이 있다고 얼른 후다닥 걸어갔지만 내가 보기에는 도망을 친 것으로 보였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 시절 MT를 가서 생긴 일이다. 우리 2학년만 가는 학년 MT는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흐릿한 기억 속에 3학년 학생장 선배가 사회를 보았고 엄청나게 큰 방에 빙 둘러앉은 내 주위에 1학년의 얼굴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우리가 갔던 곳은 강촌 아니면 대성리였을 것이다. 일부의 인원은 청량리역에 모여서 통일호 열차를 타고 갔고 일부의 인원은 학교에 모여서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타고 갔다.
내 흐릿한 기억을 떠올려 보면 MT 첫날 밤 엄청나게 큰 방에 많은 학생들이 모였다는 것과 우리 앞에 소주병과 안주로 보이는 과자들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이다.
잇따른 소개와 인사가 끝나고 학생장 선배는 1학년 후배들을 다 일으켜 세우고는 다른 선배들 사이에 가서 앉게 했다. 그래야 선배들 얼굴도 익히고 친목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하면서.
종이 소주 컵에 소주를 따라 한잔 두 잔 마시면서 약간씩 술이 취해지자 여기저기서 점점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방에 60여 명에 가까운 인원이 모여서 술을 마시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옆에 누가 앉았는지도 모른다. 옆에 앉은 사람이 여러 번 바뀌기도 했고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술을 마시며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어쩌면 꼬래 1년 대학 생활을 했다고 후배들에게 대학생활이 뭔지 일장연설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왁자지껄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그때, 학생장 선배가 일어나 마이크를 쥐고서는 다들 주목을 시켰다.
웬만큼 술을 마셨으니 이제부터는 단합 차원에서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을 하자고 했다. 게임에서 진 사람은 벌칙이 있다는 것을 미리 말해주었지만 술이 알딸딸해진 학생들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들렸다.
그렇게 처음 시작된 게임이 수건 돌리기였다. 추억의 게임이라 다들 아시리라 믿고 게임 설명은 하지 않겠지만 그 당시 인원이 많다 보니 수건을 돌리는 사람이 두 명이었다.
게임이 시작되었어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술을 홀짝이며 대화를 이어나가던 나는 갑자기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고서 내 앞에다가 수건을 흔드는 바람에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학생장 선배가 나를 방 가운데로 불러냈고 나는 다른 한 명이 걸릴 때까지 서 있어야 했다.
노래를 잘 못하니깐 엉덩이로 이름을 쓰거나 막춤이나 추라고 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수건이 내 뒤에 놓인 걸 왜 눈치를 못 챘지? 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그때 또 한 명의 학생이 걸려서 방 중앙으로 불려 나왔다.
소녀티를 아직 벗지 못한 1학년 여학생이 쭈뼛쭈뼛하며 내 옆에 섰다. 잘못 마시는 술을 마셨는지 양 볼에는 홍조를 띤 채로 긴장한 얼굴로 힐끔힐끔 주위를 살피었다.
“자, 무슨 벌칙을 줄까요? 생각나는 것 있으면 기탄없이 말해보세요.”
학생장 선배의 말이 들리자마자 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서로 마주 보며 노래 부르기.”
“화끈하게 춤춰라.”
“블루스 한 곡 땡겨라.”
“엉덩이로 이름 쓰기.”
야유와 함께 폭소가 이어지고 계속해서 벌칙을 말하는 말할 때마다 내 옆에 서 있던 후배는 움찔움찔 놀라고는 했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목소리를 뚫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에 일순간 고요해졌다.
“그냥 뽀뽀나 해.”
일이 초 후에 갑자기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뽀뽀해.”
“뽀뽀해.”
“야, 애들도 아니고 뽀뽀가 뭐냐? 설왕설래 있잖아. 찐하게 키스가 뭔지 보여줘라.”
“신입생한테 영원히 기억할 키스를 해줘부러.”
“애들처럼 뽀뽀는 안 돼. 키스해,”
“키스해.”
갑자기 난리가 아니었다. 그 와중에 남자 동기나 선배들은 벌칙이 이거였으면 자기가 걸렸어야 했는데 하고 아쉬워하며 술을 벌컥 들이켜는 사람도 있었다.
학생장 선배가 주위를 진정시키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모든 사람들이 벌칙으로 키스를 하라고 하는데, 준비됐냐?”
함성이 쏟아졌다. 방밖에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무슨 축구 중계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쩔 줄 몰라하는 후배에게 다가가자 거의 뒤집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라니.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가 춤이나 추겠습니다,라고 말했다가 엄청난 야유를 받아야 했다.
결국 학생장 선배의 압박과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들이 우리 두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나는 후배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물었던 것 같다.
“괜찮겠니? 아무래도 분위기가 그냥 끝날 것 같지 않은데.”
소녀 같은 후배는 홍조 띤 얼굴로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결심을 했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시간 끌지 말고 빨리 하라고 아우성이었다. 남학생들은 다음 차례는 자기가 해야 한다면서 어서 빨리 하고 자리로 들어오라고 소리를 질렀고, 여학생들은 어떻게 해, 하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면서 중요한 장면을 놓칠세라 우리 쪽을 주목했다.
그중에 내가 걸렸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크게 한숨을 쉬는 몇몇 여학생들의 음성도 내 귀에 들렸던 것 같다. 어쩌면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내 마음 때문에 환청이 들렸는지도 모르겠지만.
“알았어요. 알았습니다.”
나는 알딸딸한 얼굴로 그렇게 말을 했다.
주위에서 휘파람과 함께 엄청난 반응들이 들려와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나는 후배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순간 깜짝 놀라서 눈이 동그라진 후배는 긴장한 얼굴로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았는지 잠시 후 속눈썹을 가느다랗게 떨며 살짝 눈을 감았다.
내가 후배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자 난리도 아니었다.
어머 어머. 와아, 진짜 하나 봐? 내가 했어야 했는데. 저 놈은 무슨 복이람.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 등등.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왜 저리들 자지러지는지.
나는 한 손으로 후배의 어깨를 감싸고 나머지 한 손으로 후배의 얼굴을 내 쪽으로 돌리게 하고서는 천천히 후배에게 다가갔다.
“진짜 괜찮아?”
후배가 살짝 눈을 떴다가 내 얼굴이 가까이에 있는 것을 보자 얼른 다시 눈을 감았다.
“네.”
후배의 떨리는 목소리가 그리고 긴장해서 내뿜는 숨소리가 내 얼굴에 와닿았다.
내 얼굴이 후배에게 점점 다가갈수록 방의 분위기는 뜨겁게 타 올랐다.
휘파람을 부는 소리, 어머머 어떻게를 외치는 소리, 누구는 좋겠다를 외치는 소리, 이제 저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CC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 애 놀라니깐 너무 격렬하게 하지 말라는 소리, 입술을 먹어 버리라는 소리, 시간 그만 끌고 어서 하라는 소리 등 방 안에 울려 퍼지는 커다란 함성소리가 내 귓가를 뜨겁고 멍멍하게 했다.
잠시 후 일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내 심장이 폭발할 듯 격렬하게 뛰는 소리만이 들렸다.
이 글은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임을 알려드립니다.